하나. 완전한 견성을 얻어 마치 대낮에 색을 보듯 문수보살처럼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둘. 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대처하며, 색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발을 들어 올리고 내려놓으며, 눈을 뜨고 감는 것이 모두 밝고 뛰어나 도와 상응하는가?
셋. 이 시대의 가르침과 이전 조사들의 구절을 깊이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들을 모두 살펴 의심스러운 곳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넷. 온갖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따진 후 능히 사변을 갖추어 모든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가?
다섯. 언제 어디서든 지혜가 막힘없이 드러나 한 생각 한 생각이 모두 원만하고 어떠한 법에도 방해를 받지 않으며 어느 한 찰나에도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여섯. 일체의 순역과 호오(好惡)의 경계가 나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알아 타파할 수 있는가?
일곱. 온갖 밝은 법문이 심경 속에 있어서 하나하나 미세함을 보아 본체가 일어나는 곳을 알 수 있으며 생사의 뿌리에 어지럽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가?
여덟. 일상의 행주좌와 때, 공경히 마주 대하고 있을 때, 옷 입고 밥먹을 때, 일을 맡아 처리할 때에도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가?
아홉. 부처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중생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칭찬하거나 비방하거나,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말을 들어도 일심이 전혀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열. 온갖 지혜에 대해 들어도 모두 밝게 통하며, 성과 상이 모두 통해 理와 事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떤 법도 그 근원을 알 수 있으며, 세상에 온 어떤 성인의 말도 의문이 없을 수 있는가?
만약 실제로 이와 같이 얻지 못했다면 절대 속이는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자족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지극한 가르침을 널리 구하고 아는 사람에게 많이 물어 부처의 자성의 근원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의문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배우지 않아도 되며 망념도 사라질 수 있다. 혹 스스로 힘쓰면 선관과 상응하며, 혹 다른 사람을 위하면 방편을 열어 보일 수 있다. 설혹 법계에 두루 참여할 수 없고 널리 경전을 연구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종경록]만 세밀히 본다면 자연 경지에 들 수 있으니, 이는 모든 법의 요점이요 도로 향하는 문이다. 마치 어머니를 지켜보며 자식을 이해하듯 근본을 얻어 지엽을 아는 것이니, 벼리를 당기면 그물코가 바르게 되고 옷을 당기면 옷고름이 모두 같이 끌려온다.
첫댓글 만약 열 가지 물음 중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완전한 열반과 보살의 원력으로 정진~ 참으로 없다는 것으로 살림을 삼지 마소서~()
홍두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