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월아
김기상
세월호
그런 철학적인 이름의 배가 있었습니다
때는 봄
승객은 수학여행을 떠나던 사월이었습니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
조류도 거칠다는 그곳에서
단원고등학교 2학년생 325명과 그 외 총 476명을 품어 안고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생존자 172명
그 중 단원고 교감 강모씨는 살아 돌아온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삶조차 오욕인 세월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꽃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날
검은색 리본을 만났습니다
좀 이른 것 아닌가
모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어
그런 기대감이라도 가져줘야 도리 아닌가
아버지보다 먼저 포기하지 말자
어머니보다 먼저 절망하지 말자
지금도 저 바다를 눈물로 퍼 올리는 그들에게
조의라니
아니다 정말 이건 아니지만
그래 이미 죽은 사람도 있잖아
그들은 그들대로 위로해야지 애도해야지
꽃 지고 새 우는 봄날
노란색 리본을 만났습니다
좀 늦은 것 아닌가
죽어도 몇 백번을 죽었을 시간
아버지의 가슴은 이미 모래밭인데
어머니의 마음은 벌써 천 갈래 만 갈래 파도로 찢어지는데
깜깜절벽 대한민국을 등지고 앉은 그들에게
희망이라니
너무 염치없는 일 아닌가
그래 아니다 아직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
당연히 그들을 기다려야지
당연히 살아서 오리란 희망으로 기다려야지
사고는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서 있는 것은 무너질 수 있고
나는 것은 추락할 수 있고
떠 있는 것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정해진 이치입니다
배가 기울어 물이 차올라도 아이들은 믿었습니다
구해 줄거야 기다려
그들은 누가 구해 줄거라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을까요
방송에서는 하루 종일 사고소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먼 바다 이야기 깜깜한 이야기
감추고 지어내고 떠밀고 도망치고
오늘 이야기가 내일엔 거짓이 되었습니다
의혹만이 세월을 날름날름 집어 삼켰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분분하게 떠도는 모든 거짓은 이 나라 정부와 정통한 소식통
공영방송이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 대한민국
미안하다 사월아
너희가 믿은 것처럼 우리도 믿었구나
우리가 믿는 것처럼 너희를 길들였구나
어이없게도 우리 모두 믿었구나
어떻게 그리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르쳤을까
미안하다 사월아
어리석은 우리에게
저 바닷속 깜깜한 바닥을 보여 주는구나
사월이 가면 오월이 온다고
그것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지
따끔하게도 꼬집는구나
사고는 재수 없어 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나는 것임을
정말 뼈아픈 사고란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죽는 것
모두의 미래를 잃게 된다는 것을
참으로 아프게도 말하는구나
미안하다 아들딸들아.
(*위 시는 5월 28일, '세월호 참사 청양 촛불문화제'에서 김기상 시인이 발표하고 낭송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