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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26장1~11절
제목 : 약속에 머무는 삶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흉년이 닥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브라함과는 달리 애굽이 아닌 그랄로 갑니다.
그러나 그랄에 거하면서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임으로써, 아브라함이 저지른 실수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1. 약속의 땅에 머물라는 명령(1~5절)
1) 흉년이 들어 이삭이 그랄로 갑니다(1절)
“[1]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첫 흉년 - 척박한 팔레스틴 지방에서 기근은 흔한 일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경험한 첫 흉년(B.C. 2090년경)은 이삭의 때에 발생하였던(B.C. 1990년경) 것보다 약100년 전의 일입니다(12:10).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 대흉년은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에 의해 야곱의 역사에서 한 번 더 일어납니다(42:5).
*창42: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한편 팔레스틴의 농사는 거의 비와 이슬에 의존 하는 바 흉년은 거주민의 생계에 막중한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랄 - '거주지'란 뜻입니다.
가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17Km 떨어진 현재의 토 아부후레이라(tell abu hureira)입니다.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 서남쪽에 위치한 풍요한 곡창지로서 약 70년 전에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20:1).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아비멜렉 - '아버지는 왕'이란 뜻으로 애굽 왕이 바로로 통용되듯이, 그랄 왕의 공식적인 칭호입니다(시34편의 표제에 나오는 아비멜렉의 실제 이름은 '아기스'입니다).
이삭이 만났던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당시의 아비멜렉은 약 70년 시차가 있으므로 동명이인(同名異人)임이 확실합니다.
이르렀더니(예라크), 문자적으로는 '가다' 입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이삭이 왕을 직접 찾아갔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영역 안으로 들어섰다는 의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2절)
“[2]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여호와(예호와) -언약의 당사자로서의 신실성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입니다.
구속사의 전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삭에게 하나님의 언약은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여호와'란 이름이 강조되었습니다.
반면 언약과 관계없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강조되는 '엘로힘'이라는 명칭이 통상적으로 사용됩니다.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애굽으로 갈 것을 예언하셨고(15:13), 이는 후에 요셉을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감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에굽의 팽배한 우상숭배로 인해 이삭의 신앙이 동요됨을 예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선민에게 있어서 애굽을 죄악과 타락의 도성이자 신앙 연단의 장소로 이해시키고 있습니다(사 31:1; 렘 42:19; 겔 23:3).
3) 그날에 거주하면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3절)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이 땅에 거류하면 -직역하면 '이 땅에 거처하라'입니다.
'이 땅'은 이삭이 머물던 블레셋 땅이 아니라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킵니다(calvin, keil, lange).
내가 너와 함께 있어 -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를 약속하신 말입니다.
선민 이스라엘과 항상 함께 하신 하나님은 후에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 거하셨으나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약속은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요 1:14).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의 이름인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란 말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마 1:23).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네게 복을 주고 -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약속하신 복은 이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22:16-18)의 재확인이자 계승으로 그 핵심은 자손과 땅에 대한 축복입니다.
이후 이러한 약속은 야곱에게도 주어졌으며(28:15) 부분적, 일시적으로 나마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영적 축복으로,
그 궁극적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 질 것이란 점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이제 이러한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자들이라 하겠는데 그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칭함 받고 있다는 점(롬 8:15,16)
(2) 성령이 그들 가운데 내주(內主)하신다는 점(갈 2:20)
(3)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보장받고 있다는 점(요3:16;5:3,10) 등입니다.
4)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4절)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네 자손을 인하여 - 본절은 '자손' (제라)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란 집합적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이 완성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3:15) 그 의미는 단수로 취급함이 적절합니다(갈 3:16).
복을 받으리라 - 직역하면 '자신들을 스스로 축복 할것이다'입니다.
이것은 재귀형으로 '천하만국 스스로가 아브라함의 씨, 즉 메시야를 통해 부여될 축복을 바랄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5절)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
순종하고(솨마) -'듣다'(3:17), '준행하다'(22:18)란 뜻입니다.
즉 들은 바대로 실천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우리의 신앙도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를 지켜, 행함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갈 5:22,23).
명령(미쉬메레트) -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계명(미츠와) - '명령하다','짐을 맡기다'란 동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명령된 율법'이란 뜻으로 특별히 법규화되거나 명문화(明文化)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율례(후카)- '새기다'란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출12:14).
시공간을 초월한 전인류가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할 불변하는 하나님의 규례와 진리를 의미합니다.
법도(토라) - '가리키다', '교훈하다'란 동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일반적인 도덕 원칙을 의미하나, 특히 '십계명' 또는 '모세 오경'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처럼 본절에서 '명령','계명', '율례', '법도'란 말들이 사용됨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율법을 제정하기 이전에도 이미 그 근본 사상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2. 아비멜렉의 책망(6~11절)
1) 아버지의 죄를 반복하는 이삭(6~7절)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하여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누이(아호트) - 문자적으로 인척 관계인 '자매'를 뜻하나 은유적으론 매우 친근하거나 유사한 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편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복 형제였던 것처럼 이삭과 리브가가 오촌지간이었다는 점에 근거할 때에(24:15) 본절에서 이삭이 리브가를 가리켜 '누이'라고 말한 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1) 사람을 기만하려 든 거짓말이며
(2)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부부 사이를 부정한 것이란 점에서 지탄을 면할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같은 잘못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범했던 것과 동일한 잘못이란 점에서(12:10; 20; 20:1-18) 우리는 부모의 그릇된 언행이 자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엡 6:4).
아리따우므로(토브) - '좋은','아름답다'는 뜻으로 외모가 보기좋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처 사라도(12:11) 야곱의 처 라헬도 (29:17) 외모가 아리따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점은 하나님께선 외모가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으로(삼상 16:7)염치와 정절, 선한 행실로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딤전 2:9,10).
*딤전 2:9,10 “[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죽일까(하락) - '죽일 의도로 때리다', '쳐죽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이삭의 근심은 한 갖 기우(杞憂)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하나님께선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3절)는 보호와 인도하심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이방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잘 드러내 줍니다.
2) 이삭을 추궁하는 아비멜렉(8~11절)
(1) 불신앙 이후에는 실패가 옴(8절)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껴안은 것(차학) - '웃다'(18:13), '희롱하다'(39:14) 등의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애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특히 본문은 그 행동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모습은 누가 목격해도 오누이 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확인합니다(9절)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 하였음이로라”
불러(카라)- '소리치다', '부르다'란 뜻입니다.
본절에서는 아비멜렉이 창 밖으로 이삭을 향해 소리쳤다기 보다는 신하를 시켜 급히 '소환'했음을 의미합니다.
(3)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10절)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뻔하였도다(키므앗) - '거의'(almost)란 뜻입니다.
이 말은 그랄 백성 중 하나가 리브가를 범하려 할 뻔했던 위기상황에까지 이르렀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죄 (아솽) -'파괴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큰 죄책'이나 '과오'를 의미합니다.
한편 본절에서 아비멜렉이 이처럼 이삭의 잘못에 대해 신중히 대처한 이유는 과거 아브라함 당시 궁정에서 일어났던 같은 종류의 사건을 잊지 아니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20:1-18).
(4) 아비멜렉이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명합니다(11절)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범하는(나가) - 본래 의미는 '만지다', '타격하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자와 함께 '눕다', 여자의 정조를 '유린하다' 는 뜻입니다.
죽이리라(모트 유마트) -직역하면 '반드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로 절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엄중한 선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삭 스스로 확보할 수 없었던 안전을 이방의 왕을 통해 확보하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삭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와 그 가족을 온전히 보존하시는 초월적인 섭리와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 및 역사의 주관자 되심을 보여 준 귀한 사건이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축복에 자만하지도, 오늘 실패에 절망하지도 말자.
부전자전인가, 이삭이 처한 위기 상황도 위기에 대한 처신도 아브라함을 꼭 닮았습니다.
땅과 후손의 약속이 또 한 번 위기를 만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서둘러 개입하셔서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시고, 축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깨우치십니다.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기근과 축복.. 이삭이 살던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 이후 다시 맞은 기근입니다.
약속의 땅에도, 약속을 받은 이들에게도 기근이 찾아오듯,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고난이 비껴가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고난은 당연하게 여기던 축복을, 삶의 조건을, 관계를 다시 보고 새롭게 보게 합니다.
순종과 축복.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기근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나안을 떠나지 않아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땅 끝에서 들려온 약속에 그는 더묾을 선택합니다.
축복의 조건은 비옥한 땅도, 인간의 지혜도 아닙니다.
순종이고 하나님입니다.
자비와 축복. 아브라함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듯이 이삭도 속입니다.
그렇게 안전은 확보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위태로워집니다.
앞선 실수를 보고 배우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약함에도 하나님은 ‘우연’(8절)을 통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기근이 가져온 위기는 말씀을 통해, 이삭의 실수로 찾아온 위기는 하나님의 섭리와 아비멜렉의 의로움을 통해 축복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위기 가운데 믿음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축복 가운데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너무나 인간적인 야곱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묵상 Point
1) 땅의 약속을 신뢰하라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이삭에겐 내려가지 말라 하신다.
아무리 기근이 심해도 이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고,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땅과 자손의 약속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성취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시 이삭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자손의 약속을 들려주시면서 순종을 요구하신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이 약속만 믿고 계속 그 어려움의 자리에 있으라는 명령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2) 자손의 약속이 위기에 처하다
순종 뒤에 곧 이삭의 불순종이 이어진다.
자손의 축복을 약속으로 받고도 축복의 통로인 아내를 넘겨주었다.
부전자전이다.
아버지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똑같이 반응했다.
오늘이 순종이 자동으로 내일의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신앙으로 우쭐할 틈이 없다.
늘 깨어 말씀을 청종하고 날마다 죽을 뿐이다.
3) 복의 자손이 화의 자손이 될 뻔하다
‘우연히’ 아브라함과 리브가가 부부임을 안 아비멜렉은 이삭의 행동을 책망하고, 백성에게는 리브가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마터면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사람이 화의 근원이 될 뻔 했다.
하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통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5절 ‘약속의 땅’에 거류하는 것을 축복의 조건으로 제시하십니다(3절).
흉년을 피해 안정적으로 물과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삭에게 지시하신 땅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흉년으로 피폐한 땅이어도 그곳이 약속으로 그에게 주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찾아오고, 핍박도 찾아옵니다.
순종하는 삶이 늘 평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럴 때 멀리 있는 애굽이 궁핍한 삶의 대안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땅인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를 얻기 위해 소돔을 선택한 롯의 결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내하며 순종한다면, 위기는 곧 복으로 바뀔 것입니다.
4절 이삭의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순종으로 얻게 될 복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혹시 믿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복을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7절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리브가를 누이라 속입니다.
그 땅에 머물라는 명령에는 순종했지만(5절), 그 땅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실 거라는(3절) 말씀은 확신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나님보다 그랄 사람들이 더 두려웠고,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처세술을 더 의지한 것입니다.
언제나 한 번 순종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순종하고 끝까지 순종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8-11절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꾸짖습니다.
때때로 이방인이 선택받은 백성보다 더 상식적이고, 윤리적일 때가 있습니다(창 12,20,26장(통합 장).
간혹 우리도 믿지 않는 자들의 상식에 미치지 못할 일들을 많이 합니다.
우리 능력과 수단으로 공동체를 보호하려고 나선 일들이 종종 일을 엉망으로 만들 때도 있습니다.
오직 위험과 실패의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시는 일을 잠잠히 행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롬 8:28).
[기도]
공동체-제 이익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참된 믿음을 배우게 하소서.
열방-인도에서는 경찰과 증인들이 매수되어 수사와 재판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와 사법부의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인도의 사법적 정의가 구현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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