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을 다룬 첫 장편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연출한 故김경률 감독. 그리고 그와 함께 많은 제주 사람들은 미래의 ‘제주영상도시’를 꿈꿔왔다.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비롯해 끊임없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의 비젼을 영상을 통해 나누고자 했던 이들의 의지가 지난 2월 <제주독립영화협회>를 창립으로 현실화됐다.
<제주독립영화협회>의 고혁진 공동대표에게서 故김경률 감독과 ‘끝나지 않은 세월’, 그리고 <제주독립영화협회>에 대해 들어봤다.
Q. 故 김경률 감독에게 <끝나지 않은 세월>은 어떤 작품이었나? 고혁진 공동대표: 김경률 감독을 안 것은 수년전이었지만 영화작업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가까워 졌다. 영화에 대한 서로의 견해 차이나 제작비 문제로 언성을 높였던 적도 많았지만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 큰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지난 해 봄 영화가 완성이 되고나서 첫 시사회 감독 무대인사 시간에 김 감독이 수많은 관객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눈물을 흘리면서 울먹였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Q. 김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나? 고 공동대표: 김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남달리 깊어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조차 오래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금방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일에 전념하곤 했다. 그리고 참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바로 전날에도 누구한테 받았는지 수지침 볼펜 두 자루를 갖고 와서는 하나는 나에게 주면서 피곤할 때마다 수지침을 맞으라고 했다. 자기 자신보단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천성적으로 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자루는 집에 계신 어머니한테 갖다드린다고 했던 게 김 감독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누구보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고, 진정으로 독립영화의 정신을 구현하려 애썼던 고집있는 영화인이었다.
Q. 제주 사람들에게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이 갖는 의미는? 고 공동대표: 그동안 제주 4․3은 영화를 제외한 당시 영상자료나 방송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4․3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후유장애인들에 대한 영상 및 출판, 아카이브전 등 다양한 노력들이 행해졌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전에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에서 잠시 다뤄지거나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를 통해 4.3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도는 있었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힘만으로 제작된 영화는 ‘끝나지 않은 세월’이 최초였다. 그리고 상업성을 지향하지 않고 장편독립영화로 제작된 것 역시 첫 시도였다. 물론 제작비와 여러 가지 조건의 불충분함에서 비롯된 영화적 완성도의 아쉬움은 제작진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고 그런 것들은 뒤이어 작업하는 더 뛰어난 감독들이 극복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제주 4․3항쟁에 대한 영화작업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주 최초의 장편독립영화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Q.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제작과정의 어려움은? 고 공동대표: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와 아역 배우들에 대한 연출 지도의 어려움, 연기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맞추는 작업, 그리고 사계절을 담아내기 위한 시간적, 공간적 일정조정, 열악한 인력난으로 스텝을 구하기 등이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제작비였다. 제작비가 없어서 촬영이 지연될 때쯤 주위에서 그런 상황을 알고 십시일반으로 도와서 영화를 완성해내자고 도와주셨고 많은 분들이 흔쾌히 동참 해주셨다. 문화예술단체나 개인뿐만 아니라 제주 도민들도 많든 적든 정성을 담아서 성금을 모아줬다. 그리고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 각지에서도 적지 않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그 분들 이름 하나하나를 영화 엔딩크레딧에 담아 영원히 그 뜻을 기억하고자 했다. 아무래도 최초의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라는 데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셨던 것 같다.
Q. 김 감독의 죽음이 갑작스러웠는데... 고 공동대표: 김 감독의 죽음은 영화가 완성된 후 몇 번의 상영회를 거쳐 전국 상영을 추진하던 차에 벌어진 일이라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 심약한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안 했었고 본인도 별로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그동안 영화제작과정에서의 부담과 영화를 만들면서 진 빚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 같다. 독립영화작업을 하는 영화인이라면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Q. 제주도민들에게 4.3은 현재 어떤 의미인가? 고 공동대표: 제주도 사람들 중에서 직간접적으로 제주 4․3항쟁과 연관되지 않은 가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직계가족이 피해를 당했거나 친척과 사돈에 팔촌까지 따지다보면 집안에 한 두 명의 희생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어릴 때나 나이가 좀 들어서 성묘하러 가보면 시신은 없고 묘비만 있는 헛묘들을 어느 집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그 기막힌 사연을 들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마치 광주에 가면 어느 집이나 5.18과 연관돼 있는 상황과 같은 경우이다. 그런 성장배경 속에서 제주사람들은 당연히 4.3에 대한 응어리를 풀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고, 문화예술계 역시 4․3정신을 계승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진상규명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4․3항쟁은 제주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작업을 통해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까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주 도민전체가 노력할 것이다.
Q. <제주독립영화협회>는 어떻게 창립하게 되었나? 고 공동대표: 김경률 감독을 비롯해 제주지역 영화인들이 꿈꿔온 ‘제주영상도시’를 만들고자하는 첫 시작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를 비롯해 미술, 사진 등 다른 예술 분야의 인사를 포함한 8명의 정회원을 두고 있다. 여기에 소속된 감독들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작정이다. 4월에는 김경률 감독에 대한 추모시간을 마련해, 열정으로 가득했던 고인의 흔적을 반추할 계획이다. 4일부터 7일까지 ‘영화 상영 및 다큐 상영(다인다색)' 행사가 제주여고 동쪽 간드락 소극장에서 열린다. 5월에는 영상교육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제주도 영화 인프라 구축과 발전 방향을 현실적으로 모색해보고자 창립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