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연기법에서
유전문이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생긴다'는 생문으로, 주체인 나가 생기고.. 윤회를 보여주는 과정의 법으로 설명한다.
환멸문은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사라진다'는 멸문으로, 주체인 나가 멸해 모든 고뇌가 멸하는 과정의 법으로 설명한다.
불교를 접하면서 '12연기법'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경직되고 논리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에..
'12인연법' 하면 부드럽고 고향에 온 듯 따뜻하고 가까운 느낌이 든다.. (나만 그렇게 느끼나?)..
그런데 그런 느낌의 차이는 연기와 인연이란 언어에 내재되어 있어.. 그리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서연 : 정말 그러네요..
인연이란 말은 어려서부터 친근하게 알던 할머니 자장가 같은 느낌이구..
연기란 굴뚝에서 나오는 그 연기가 아닌 이 연기라는 말은 돌반지를 입에 넣은 듯 단단하다는 느낌?..
효진 : 그러네.. '인연'이란 말은 할머니 자장가 같다는 거..
어릴 적 무슨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내내 고생만 하다 함께 하지 못하고 한쪽이 죽어 슬피 우는 장면이 나올 때
옆에 서 있던 스님은 "이게 다 전생의 인연 때문이지.. 나무아미타불..().." 하지 않던가..
전생과 인연이란 말은 그렇듯 불교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되었다.
인연이란..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상황[조건, 제2 원인]이 결합하여 생기는 결과가 있으니..
인연성과라 하여 '인과' 라고도 한다.
꽃이 피고지는 인과는 조건이 좋으면 멋진 꽃을 피우고, 조건이 나쁘면 시시한 꽃을 피운다.
주인공인 남자와 여자는 좋은 조건[연]을 만났다면 해피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었건만..
그리고 콩 심은데 콩 나듯..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속에는 선험적으로 주체가 존재하고 있다.
인생은 희노애락애오욕 7정이라 하는데.. 7정은 주체의 삶 속에 일어나는 감정이고..
그것들은 모두 인인 주체가 어떤 연을 만나느냐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다.
서연 : 맞아요.. 내가 저 인간만 안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이리되지 않았을 터인데..
효진 : 서연님 인생은 누구랑 비교해 보아도 멋진데.. 무엇이 잘못이라는 건가요?..
서연 : 그렇게 보이는 거와 그 안은 다르잖아요.. 에효~..
효진 : ㅇㅎㅎㅎ^^.. 욕심은 인생에 촛불같아요. 낮에는 있는지 없는지 잘 보이지도 않지만.. 밤이면 잘 보이는 게..
이제 인연[이년]에서 살짝 벗어나 저년을.. 아니 연기를 생각해 보죠..
연기와 인연이 다른 점은 연기에는 인[주체]가 보이지 않는 것.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서연 : 무아!.. 말이 그렇게 보인다는 거죠..^^.
효진 : 그런데.. 바로 그겁니다!.. 연기에는 주체가 없어요.
그냥 조건인 연만 보이고.. 그 연에 의해 새로운 게 일어난다[기]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해?!.. 해서 초기 불교는 '지금 여기에 있는 주체인 나'를 보며.. 그 나를 멸하려는 수행 위주의 불교가 되었다.
하여 나를 멸한 수행자를 아라한 또는 상좌라 부르며 존경한다.
석가 부처님 당시에는 오백 오십명 아라한이 있었다 또는 오천명 아라한이 계셨다고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라한에 이르는 숫자가 줄어들어 가뭄에 콩 나듯 아라한이 나왔다.
하여 부처님을 신처럼 믿고 존경하는 일반 신도와 일부 수행자들은
무아는 이치 세계에 그도 아니되면 믿음의 영역에 놔두고..
실천은 저신의 욕심을 버리는 수행인 이타행 중심의 운동을 벌이니..
그것을 대승불교 운동이라 하는 것.
12연기법에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일어난다는 유전문은 주체인 나가 생기고..
그 나가 결국은 윤회의 주체가 되어 돌고 또 도는 세상에 제2, 제3의 나가 또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주체인 나가 생기면 그 때부터 연기법은 인연법으로 설명해도 무리가 없을 뿐 아니라 듣는 자들이 쉽게 이해한다.
단 인연법은 주체가 핵심이기에 주체가 멸하는 환멸문은 거의 논하지 않게 된다.
하여 무아를 체득한 분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시대[상좌부 불교]에 이르러서 환멸문은 설명을 거의 하지 않게 되니..
12연기를 12인연으로 설명되는 시기가 되었다.
12연기(十二緣起)는..
십이인연(十二因緣)·십이유지(十二有支)라고도 한다.
12개의 각 항은 윤회(輪廻)의 생존(生存)을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유지(有支)라고 한다.
십이지(十二支)는 ① 무명(無明), ② 행(行), ③ 식(識), ④ 명색(名色), ⑤ 육처(六處), ⑥ 촉(觸), ⑦ 수(受), ⑧ 애(愛), ⑨ 취(取), ⑩ 유(有), ⑪ 생(生), ⑫ 노사(老死)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연기(十二緣起))]
<잡아함경>은 그 전까지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던 부처님 설법과 약간의 아라한의 설법 가운데..
짧지만 핵심을 담고 있는 설법을 문자로 수집정리한 경이다.
하여 1652경 하나하나가 너무 중요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500여 년 이상 구전되어 오던 것을 문자로 정리하는 과정 속에
오리지널 대신 그 당시 문자로 정리하는 일이 드물지만 발생한다.
아주 드문 이유는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제자들은 경전이라 불리는 내용은 고도의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
일점일획이라도 건드리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해진 북방의 아함경전과 남방의 니까야는
특히 아함경전은 오리지널 언어인 범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90% 이상이 똑같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경을 전하는 부파가 다르기에 <니까야>에는 있지만 <아함경>에는 없는 내용이 있고.. 반대로
<아함경>에는 있지만 <니까야>에는 없는 내용이 있다.
서연 : 그런데 왜 여기서 불교 초심자에게 그런 전문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는 거죠?..
효진 : 아임 쏘립니다..().. 순 한국말로 말한 지금까지 내용을 이해하면 앞으로 이해가 훨~ 쉽기 때문이죠..^^..
<214. 2법경>에 나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마음을 연해 생긴다는 [심연생]은 <잡아함경>에는 전하지만..
이 중요한 내용이 남방 불경인 <니까야>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하나 문제점은 심연생이란 말과 연기와 인연이란 말 뜻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면..
<214경>에는 "안(眼)과 색(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나니, " 眼、色因緣生眼識, 라고 했는데..
'인연(因緣)'이란 말 대신에 연기법에 나오는 '연(緣)'이라고만 해야 한다는 거죠.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인연이란 주체인 나[인]를 선험적으로 인정한다고 했는 데.. 그 말 뜻은 바로 실재하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실재하는 존재는 물질이라 하듯이 마음에 의해 연기하거나 마음에 의해 조작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연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인(因)을 실재하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허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수행으로 지금 여기서 멸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반드시 '연'이라 고집하지 않고.. '인연(因緣)'이란 말을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엄밀한 언어를 원한다면 역시 인연이 아닌 연이라 말하고, 써야만 한다는 겁니다..()..
명색이라 하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과 그 이름이라 합니다.
그런데 12연기에 나오는 명색이란 마음인 식에 의해 떠오른 색과 이름일 뿐으로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지금여기서 수행으로 멸할 수 있는 게 됩니다.
앞에 인용한 12연기 가운데 나오는 명색 설명을 보면..
④ 명색:태중에 있어서의 몸과 마음을 뜻하며, 식의 대상이 되는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가리킨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연기(十二緣起))]
라고 하고 있어요.
제가 말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보이지 않나요?..
태중에 있는 몸과 마음이 명색이라면.. 그것을 수행으로 멸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죠. 멸은 이 몸이 죽지 않으면 임파시블입니다.
어느 선지식은 가을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떨어지는 순간의 나뭇잎 하나에 우주 진리가 담겨 있다고 하면..
그 낙엽에 대한 표현을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석가세존께서 가르친 12연기는 지금 여기서 일체를 멸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12인연이라 하는 순간.. "대상에 머물지 않으며 마음을 내는" 생생한 아라한은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