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랑 총연출·구성의 「추다, 돌다, 뛰다, 날다」
고성오광대 국가무형유산지정 60주년 기념공연
원전과 변주의 아름다운 조화
9월 24일(화) 오후 7시,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대극장)에서 부산문화(대표 박흥주) 주최, 영남교방청춤보존협회(이사장 박경랑) 주관, 박경랑 총연출·구성의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놀이 「추다, 돌다, 뛰다, 날다」가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성오광대보존회 3, 4, 5세대들이 춤 고을 고성의 전통을 빛낸 자리였다. 한국의 대표적 탈춤 단체 고성오광대보존회의 민속놀이는 1964년 12월 24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올해 60돌이 될 때까지 탈놀이의 전통을 이음하며 전승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공연은 영상물과 함께 고성오광대 놀이의 역사적 활동 사항을 각인시켰다.
전국적 파급력을 소지한 오광대놀이는 낙동강 서쪽 지역의 탈춤으로 초례 밤마리 마을 장터의 광대 패에 의해 시작되었다. 고성오광대는 제1과장 문둥북춤마당, 제2과장 오광대마당, 제3과장 비비마당, 제4과장 승무마당, 제5과장 제밀주마당의 5개 과장으로 구성된다. 등장인물은 문둥이, 말뚝이, 원양반, 젓양반, 젓광대, 말뚝이, 초랭이, 종가도령, 비비, 중, 각시, 영감, 제밀주, 마당쇠 등 열아홉 명이 등장한다. 주 관심사는 양반과 파계승 풍자, 처·첩 문제 등 서민의 삶이다. 고성오광대에는 귀신 쫓는 의식 춤이 없다. 주 춤사위는 덧뵈기(탈놀이)춤이고, 주 반주음악으로 사물 타악기가 사용된다. 이 공연은 중독성을 띄고 있으며,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간행, 중종 25년)에 기술된 탈춤은 조선말 고성 지방에 이르러 정화경, 이윤희 명인을 수학한 김창후(1887~1965), 홍성락(1887~1970), 천세봉(1892~1967) 명인에게 예능을 대물림한다. 광복 후 세를 규합한 명인 셋은 발 빠르게 가야극장 낙성식 기념공연(1946년)으로 ‘고성오광대 놀이’를 갖는다. 이후 고성오광대 놀이는 탈 판의 후예들이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며 분야별 예술 장르를 모아 다양한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고성오광대놀이 초대 예능 보유자 故) 김창후 명인의 외증손녀이자 영남교방청춤의 명무 박경랑은 연희의 모든 것을 재창조하였고, 연희집단 ‘The 광대’가 시대적 흐름에 공감하는 전통연희를 보여주었다.
고성오광대보존회는 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1974년, 2019년)을 두 번이나 수상함으로써 우수 탈놀이 단(團)의 면모를 보였다. 그들은 고성오광대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선조를 기억하고 추모와 감사의 마음으로 신명의 공연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그들은 민속을 문화로,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켜 각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성오광대보존회의 이윤석 예능 보유자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영남교방청춤의 지킴이 박경랑은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적 춤 연기를 도맡아 한다. 고성오광대 이수자인 허창열, 안대천, 선영욱 등 신개념의 탈놀이 문화의 개성 있는 연희집단 단체를 만들어 각 분야에서 기하급수적 고정 팬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성오광대의 네 축의 활약은 눈부시다. 우선 박경랑이다. 고성 출신의 영남교방청춤의 명무 박경랑의 외증조부 김창후 선생은 예능보유자 지정 60주년이 된다. 할아버지 무릎 팍 위에서 어깨 짓과 몸짓을 느끼며 4세에 춤에 입문한 박경랑의 춤 나이도 60이 되었다. 박경랑은 그 뿌리를 이어 마당 계열이 아닌 교방 계열의 춤으로 독특한 춤 세계를 거침없이 구축했다. 그녀는 자유자재로 동·서양의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우아하고 섬세하게 토속적이면서도 동시대 흐름에 맞는 전통춤의 미감을 더하며 멋과 흥이 우러나는 이 시대 진정한 춤꾼으로 국내외에 영남 전통춤의 멋을 알리는 영남교방청춤 명무이다.
안대천은 연희집단 ‘The 광대’의 대표이며 고성오광대 이수자로서 전통연희의 전 장르를 변주하며 연희 열풍을 주도하는 신개념의 창작 연희자로서 유쾌한 연희 쇼로 전통연희의 가치를 고양한다. 허창열은 고성오광대 이수자, ‘The 광대’의 연희자, ‘천하제일탈공작소’ 공동대표이다. 그는 탈춤과 그 신명을 알리고, 관객과 함께 춤추며 고성오광대의 탈춤을 알린다. 딸 지우와 함께 ‘딸바보 탈바보’에서 고성오광대의 기본무인 ‘덧배기춤’을 목적에 맞게 추었다. 전통연희자, 연출가인 재담꾼 선영욱은 고성오광대 이수자, ‘The 광대’의 연희자이다. 어린이 창작 연희단체 '광대생각'의 대표자, 전통연희의 경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
이날 프로그램은 김성범(고성오광대 이수자) 사회로 시작되었다. ‘헌무’(獻舞) : 故) 김창후 선생 같은 선조 예능 보유자들, 세월을 스치면서 인연이 깊었던 스승 故) 조용배(1929~1991), 재밀주 과장의 할멈역을 맡았던 故) 이재훈(1947~2022) 선생께 감사의 예를 올리며, 박경랑 중심으로 허창열, 안대천, 선영욱이 헌무를 올렸다. 박경랑은 마당 계열의 사라진 예인들, 김창후 선생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춤에 담았다. 이어 합세한 고성오광대 이수자 3인은 인간과 문화가 하나가 되며, 선인들께 공덕의 마음으로 후대의 마음을 올렸다. 박경랑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연행, 구술의 작은 하나라도 기억해 내며,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덧배기춤’(=허튼춤) : 순서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고성오광대 전수생들의 기본무 필수과목이 되었으며, 몇백 명이 같이 추고 즐기는 장관의 춤이 되었다. 허창열은 딸 허지우와 함께 ‘딸바보 탈바보’에서 고성오광대의 기본무인 ‘덧배기춤’을 맛깔나게 추었다. 교과서가 된 부녀의 춤은 초보자를 끌어들이고 열광하게 했다. ‘문굿’ : 온갖 부정을 없애고 관객에게도 좋은 기운과 최고의 무대가 되기를 판굿의 하이라이트가 공연의 문을 연다. ‘설장고, 꽹과리’ : 판굿에서 악사들의 화려한 연주와 발림(몸동작)으로 리더인 상쇠 잽이가 상쇠 놀이와 화려한 장구 가락을 선보인다. 개인 연주 퍼포먼스로 전통연희의 진수를 가늠케 한다.
‘교방소반놀음춤’ : 교방계열의 예기무, 소반 위의 잔을 받아 마시면 ‘모든 액운을 소멸하고 건복을 불러들인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스승 조용배 선생의 권유로 창원 마금산 출신 故) 김애정 선생에게 학습하여 무대화시킨 박경랑만의 독보적인 춤이다. ‘땅줄타기’ :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공중에서 줄을 타는 고난이도의 기예이지만, 이번 공연의 광대는 땅에 줄을 놓고 있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줄을 건너는 척 능청스러운 연기와 재담 놀이로 이색적인 줄타기의 흥신을 연희한다. 고성오광대 탈춤 가운데 ‘말뚝이춤’을 동인(動因)으로 하여 머리에 꽃을 얹은 양반, 하인 말뚝이, 개뚝이의 재담이 즐거움을 더한다.
10.커튼 콜
‘소고놀이’ : 소고춤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소고 잽이의 화려한 춤사위와 상모놀이가 서민적 정취를 불러온다. ‘버나놀이’ : 남사당 놀이의 기예 가운데 하나인 버나놀이는 곰방대나 꼬챙이, 톱 등으로 납작한 접시 모양의 버나를 돌리고 날리는 놀이다. 광대의 유쾌한 재담으로 막대 위에서 뱅글뱅글 도는 버나를 광대와 관객이 주고받으며 논다. 열두발 상모놀이 : 열 두발이나 되는 긴 생피지를 단 상모를 활용해 자유자재로 묘기를 펼치는 놀이다. 상모를 다루는 광대가 등장하여 무대 위를 회전하는 끈 위를 넘나들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문순조(꽹가리), 김용훈(징·소고), 배정찬(장구), 김선희(북), 정석진(태평소)의 연주가 연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고성오광대 후예들은 전통을 어루만지고 받들어 존중하고, 역사를 기억하는 선배들은 경험과 기교를 전수하면서 상호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공연의 모습을 보였다. 고성오광대 국가무형유산지정 60주년 기념공연은 사건과 관념, 전례와 교훈, 제의와 놀이를 아우르고 있었다. 연희자들은 무대의 위·아래를 휘저으며 분주하게 관객들과 어우러짐을 유도하고 있었다. 전통 악기가 만들어내는 사운드, 광대들의 다채로운 재담, 연희자들의 조화로움이 창출한 시각적 비주얼은 고성오광대 연희법의 기본 입문 기회를 열린 형식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신명과 정제를 거듭하면서 방법의 착지를 익힌 고성오광대 놀이가 정신 수련과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를 기원한다.
글/ 장석용(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 박상윤·오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