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경에 대해서
(문1) 조상 공양으로 독경을 올리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또 중국이나 러시아에는 독경을 올리는 관습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의 조상에 대한 공양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경을 읽어 드리는 것이 공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죽은 사람이 경(經)의 의미를 알고 있으면,
' 아 그렇구나. 나는 잘못생각했구나.'
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경(經)의 'ㄱ' 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 하는 꼴이 됩니다.
죽은 자의 영에게도 이 세상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의 말로써, 인간의 도리를 설법해주어야 합니다.
경(經)은 석가의 설법을 글로 쓴 것인데,
그것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한문화되어,
리듬을 붙인 독송의 경(經)으로 바뀐 것입니다.
경문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독경하고 있을 때에는,
방황하는 영이 그 독경의 파동(빛의 파동)에 의해 정화됩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는 독경이 공양이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스님가운데 저 세상을 알고 있는 분이면,
독경은 공양이 되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독경을 올리는 것이 공양이라고 한다면,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의 공양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질문하셨는데,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신을 믿고,
마음의 조화를 이루고 바르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리가 없습니다.
독경을 올리지 않아도, 유족들이 조화롭고 화목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설령 지옥에 떨어진 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고 반성의 재료로 하여,
깨달음의 천상계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조상에게 올리는 최상의 공양은,
지상계의 후손들이 조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2)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종교와 철학의 존재 가치가 소멸한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법은 과학입니다.
불교도 과학입니다.
조화를 설명하는 불교가 어째서 비과학적입니까?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만생만물은 순환의 법칙에 의해서 성립되고,
여기서 이탈하면 마음도 육체도 괴로워지니,
중도의 마음으로 생활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밥이 넘어가지 않고,
화가 나면 심장이 뜁니다.
중도에서 이탈한 감정 상념이 작용하면,
혈액의 흐름에 난조가 생겨, 위장의 활동도 약해집니다.
불교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훌륭한 과학입니다.
당신의 종래의 절하는 종교와, 정법을 혼동하여,
관념과 자기만족의 종교를 종교로서 보고 있는 듯합니다.
확실하게 그런 의미에서는 종교는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정법(正法), 불교의 핵심은 그런 종교가 아닌,
훌륭한 과학입니다.
정법과 숭배 종교를 혼동하지 말 것,
그리고 앞으로의 과학은,
정법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갈 것입니다.
마음이 대화 -- 다카하시 신지
(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말하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얼마나 답답합니까.
이승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경문을,
저승에서 알아 듣는다는 것은 모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