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재로(Al Jarreau)는 40년 가까운 음악인생동안 그래미 상의 '팝, 재즈, R&B'의 각 부문별로 수상한 유일한 뮤지션이라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창법을 가진 혁신적인 보컬리스트이자, 작곡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드러낸 싱어송라이터이다. 1940년 4월 12일,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재로는 4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재즈 보컬리스트였던 친형을 우상시하여 어렸을 적부터 형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했던 재로는 그 영향으로 재즈라는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야구, 농구 등에 열중하였고, 대학에 가서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등, 음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갈망해오던 뮤지션으로서의 꿈은 변함이 없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카운슬러 회사에서 다니면서 재로는 밤에 클럽에서 간간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후 3년을 보낸 재로는 1965년 일리노이즈 주 출신의 친구가 설립한 소규모 레이블에서 소리소문 없이 [1965]라는 이름의 음반을 내놓는다. 하지만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매되어 이 음반은 1975년 데뷔앨범을 내놓기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음반으로 남게된다. 지금도 시디로 재발매되지 않은 이 음반에는 'My Favorite Things', 'Come Rain or Come Shine' 등의 곡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재로의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강한 열망을 읽을 수 있는) 재즈적인 성향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1968년 재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음악활동에만 전념한다. 이후 그는 무려 7년 이상 무명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유명 클럽들을 전전하며 재즈 록 키보디스트 조지 듀크(George Duke)와도 함께 작업하는 등, 클럽계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로가 뮤지션으로서 크게 빛을 보게된 해는 1975년. 그 해 3월, 재로는 워너 브러더스 사와 계약을 맺고 메이저 데뷔작 [We Got By]를 내놓는다.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워넣은 이 앨범은 뜻밖에도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큰 선풍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독일음악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독일 그래미 상에서 최우수 신인(Best New International Soloist) 상을 수상한다. 1976년 두 번째 앨범 [Glow]에서는 리온 러셀(Leon Russell)의 'Rainbow in Your Eyes',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C Jobim)의 'Agua de Beber',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의 'Fire and Rain',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Somebody's Watching You'를 리메이크하여 수록하였고, 당시 최고 세션진들(기타: Larry Carlton, 건반: Joe Sample, 프로듀서: Tommy Lipuma & Al Schmitt, 베이스: Wilton Felder 등)의 참여로 특유의 예측할 수 없는 톡톡 튀는 보컬 애드립은 상대적으로 감소했지만, 상당히 잘 다듬어진 깔끔한 구성의 곡들을 담아내었다. 앨범 발매 후 베를린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재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독일의 '쉬피겔' 지는 '13년 동안 이렇게 대성공을 거둔 뮤지션은 처음'이라고 격찬했으며, 평론가들도 '완벽한 오케스트라와 같은 보이스의 소유자'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77년 첫 번째 월드 투어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 앨범 [Look to the Rainbow]를 내놓으며, 그 해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Best Jazz Vocalist' 부문을 수상한 재로는 이때부터 미국 내에서도 크게 주목받게 된다. 이 시기가 그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1978년 4번째 앨범 [All Fly Home](이 앨범으로 두 번째 그래미 상을 수상), 1980년 [This Time]과 같은 훌륭한 앨범들을 내놓았으며, 1981년에는 알 재로의 대표 곡이라 할만한 'Roof Garden', 'We're in This Love Together'이 수록된 [Breakin' Away](이 앨범으로 그래미 'Best Male Pop Vocalist'와 'Best Male Jazz Vocalist' 두 부문을 수상, 빌보트 Top 10차트에 오르기도 했다)앨범으로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인정받는 국제적인 뮤지션의 위치에 서게된다.
당시 재로의 창법은 '재즈 보컬'이라는 테두리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는 팝, R&B, 락적인 성향이 다분했다. 그는 노래라기보다는 흥얼거리는, 혹은 오물거리는 이른바 '스캣 싱잉(Scat Singing)'이라 불리는 창법으로, 유머러스한 재치와 발군의 테크닉으로 그만의 보컬 스타일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개성과 명성에 뒤따른 최고의 세션진들(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얼 크루(Earl Klugh), 스티브 갓(Steve Godd), 제프 포카로(Jeff Pocaro), 조지 듀크(George Duke), 래리 윌리암스(Larry Williams), 톰 스콧(Tom Scott),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 등)과의 호흡을 그의 음반에서 만날 수 있었다. 1980년대 들어서 재로는 [Jarreau](1983), 런던에서의 실황 앨범 [in London](1984)을 내놓았고, 1986년에는 1980년대 댄스 팝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나일 로저스(Nile Rogers, 디스코의 선구적인 그룹 쉭(Chic)의 베이시스트)가 프로듀서를 맡은 [L is for Lover] 앨범 등 좀더 팝적인 성향의 여전히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내놓으며 1980년대를 마감했다.
1990년대 재로는 대표적인 퓨전 팝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이 프로듀싱한 [Heaven and Earth] 앨범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앨범은 1990년대 감각에 맞춘 애시드 재즈와 힙합의 부분적인 도입을 시도했지만, 본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4년 본래의 R&B가 가미된 퓨전 팝스타일로 돌아간 재로는 'Live in Studio' 레코딩으로 불리는 마치 라이브 현장을 방문한 듯한 생생함이 살아있는 [Tenderness] 앨범을 발표한다.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Macus Miller)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 앨범에서 재로는 여러 팝, 재즈의 고전들('Shes Leaving Home', 'My Favorite Things', 'Summertime')을 특유의 즉흥적인 보컬 애드립으로 소화해내어 호평을 받았다. 물론 이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재로는 앨범들을 내놓았다. 1996년에는 재로의 오랜 음악적 동료인 조지 듀크와 공동으로 프로듀스한 두 곡의 보너스 트랙이 삽입된 자신의 첫 번째 컨필레이션 음반 [Best of Al Jarreau]를 내놓는다. 그리고 2000년에 들어서는 GRP 레이블에서 [Tomorrow Today](바네사 윌리암스(Vanessa Williams)와 함께 부른 'Gods Gift to the World'가 수록된) 앨범을 발표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1990년대 재로는 과거를 되짚으며, 신세대의 뮤지션들과의 호흡으로 발전을 꽤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10년이 넘는 무명가수 생활로 시작하여, 독창적인 창법으로 35년이 넘는 음악 인생을 걸어온 알 재로는 어느새 예순이 넘은 자신의 이름 앞에 '노장', '거장'이란 수식어를 부여할 수 있는 뮤지션이 되었다. 팝 보컬의 고정관념을 허문 탁월한 가성(假聲)의 소유자이자 송라이터인 알 재로의 음악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열정은 그를 오랫동안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