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설과 유래가 전하는 명산입니다.
신라 시대인 872년(헌강왕 3)에 도선(道詵) 국사가 정업을 닦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 하여 왕방산이라 불렀고,
왕방사지에는 30여 년 전에 청매화상(靑梅和尙)이
보덕사[지금의 왕산사]를 복원하였는바
조선 태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에 있다가 환궁하는 도중
형제의 난을 접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산에 있는 사찰을 방문해 체류하였다는 전설에
조선 태종이 어머니인 신의 왕후 한씨를 모시고
재벽동에서 살 때 이곳에서 늘 무술을 연마하였다는 전설도..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속세를 떠나
산중에 들어와 삼신암이란 암자를 짓고 은신했다 하기도..
이때 국사봉이라고 한것은
왕이 항상 이색을 생각하며 이 산을 바라봤다 하여
왕망산이라 부른 것이
왕방산으로 변했다도
. 『지승(地乘)』「영평현(永平縣)」에서는
‘포천 왕망산(抱川王望山)’으로 표기.
왕방산(王方山), 왕방산(旺方山), 왕방산(王訪山)으로 쓰이던 것을
2009년 8월 포천시 지명 위원회에서
왕방산의 한자 지명 통일 심의 회의를 거쳐
지금의 ‘王方山’으로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