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흐#비관주의#변화의믿음
비관주의자 노아(Noah the Pessimist)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금융 천재는 누구였을까요?! 주인공은 바로 노아 자신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전 세계가 청산 위기에 처했을 때 회사를 부양했습니다!
토라의 해설서에는 노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토라에는 그가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없는 고귀한 구별인 짜딕(tzaddik)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탈무드의 현자들은 그의 의로움의 정도에 대해 논쟁을 벌입니다.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인가?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 그는 타락한 당시 세대에 비하여 짜딕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성경의 거인들과 견줄 수 있었을까요?
※ 짜딕- (Tzaddik צדיק)은 사전적 의미로 전적으로 의로운 사람. 유대의 전통적 맥락에서, 동물적 충동을 정복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의로 완전히 채워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의미로 짜딕(צדיק)은 동사 צדק [TzDK]의 한 형태로, 올바르고 공정한 일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조정된 저울을 moznei tzedek 이라고 하듯이, 짜딕(Tzedek)은 모든 것을 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홍수가 시작되었고,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갔을 때, 토라에서는 그들이 "홍수 물 때문에" 방주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쉽게 알 수 있듯이, 라시의 해석대로 노아가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홍수가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믿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이 급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그는 인정하고 방주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홍수를 "노아의 물"이라고 묘사합니다. 현자들은 노아가 당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홍수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동시대 사람들이 회개하고 부도덕함과 불법, 부패의 사악한 방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전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방주를 짓고 서서 직접 묻는 질문에 대답했을 뿐,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상황을 바꾸고 세상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노아를 의로운 사람인 짜딕으로 묘사하는 토라 자체와 노아가 실제로는 믿음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성경 주석은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직접 의롭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을지도 모릅니다. “나가서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면 과연 누가 나의 말을 들어줄까요? 표범은 결코 자신의 반점을 바꾸지 않습니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희망이 없어요. 시간 낭비예요. 왜 귀찮게 하죠?”라고 노아는 마음속으로 외쳤을지 모릅니다.
노아는 비관론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이 엉망진창이라서 희망도 없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노아의 믿음 부족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베르디체프의 랍비 이츠학에 따르면 노아는 하나님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는 변화를 일으키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영감을 주고,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습니다.
노아는 자신을 너무 낮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랍비 해리스는 슐에서의 첫 연설에서 런던의 유대인 교도소 원목으로 일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도소장으로부터 긴급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날 한 유대인 죄수가 출소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는 복역을 마치고 풀려날 예정이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랍비님, 내려와서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그래서 랍비 해리스는 교도소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나서 물었죠. 자유를 원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랍비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요. 잠시 괜찮아졌다가 다시 재발해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다시 수감될 겁니다. 그냥 여기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노아가 모피 코트를 입은 짜딕을 뜻하는 이디시어 표현인 "펠츠의 자딕("a tzaddik in peltz)의 첫 번째 예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펠츠 차딕이란 무엇인가요? 추운 날씨가 오면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히터를 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피 코트를 입는 것입니다. 히터를 켜든 모피 코트를 입든 개인은 충분히 따뜻해져서 계속 활동할 수 있다는 결과는 동일합니다. 차이점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히터를 켜면 다른 사람들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만, 모피 코트를 입으면 개인은 따뜻해지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게 됩니다.
노아의 자신에 대한 비관적 시각은 결국 타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옮겨져,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는 노아에게서 배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인류를 믿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을 믿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By: Rabbi Yossy Goldman
그림: Sefra Lightstone
번역/편집: <월간샤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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