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출가와 깨달음
(문) 출가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안심(安心)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 정법은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석가시대에는 가정을 버리고 출가했습니다.
출가함으로써 인간의 실상을 보다 깊게 이해한 것은 사실입니다.
재가의 몸이면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발생하여
그것이 마음을 구속하게 됩니다.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는 사색이나,
명상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인간은 환경에 휩쓸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마음을 구속하는 여러가지 괴로움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고,
누구라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회를 떠나서 인간은 생활을 할 수 없고,
첫째로는 살아가는 의미조차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절해의 고도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면,
깨닫는다든가 깨닫지 않는다든가의 필요성이 생길지 어떨지 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자기보존으로 흘러,
이기심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사회생활이 있으므로, 고뇌나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인간을 부정하는 생각이며,
설혹 세속을 떠나 산 속에 묻혀 신선처럼 생활하여 무언가를 깨달았다 해도,
대체 그 깨달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깨달음이란 구체적으로는 개인과 전체의 연관성을 알고
개인과 전체를 보다 잘 살리는 조화로운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회생활을 떠나서 개인과 전체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을 사회에서 살리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인도시대의 출가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당시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으며,
오늘날처럼 치안이 유지된 가정생활을 영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는
독신으로 지낸다거나 출가하는 쪽으로
인심이 기울어졌던 것입니다.
특히 당시에는 승려를 정점으로 한 카스트제도가 엄격하여
산적들도 출가승을 덮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출가승은 몸에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덮칠 필요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산 속에는 먹거리가 많았고,
마을로 내려가면 마을 사람들이 곧잘 보시해 주었습니다.
옷도 한 벌이면 충분했고,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 잠을 자는 것이 가능했기에
생활의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기후는 일년 내내 따뜻하므로 생활하기가 매우 편했습니다.
그 때문에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까지도 출가했던 것입니다.
석가교단에서도 여자의 출가를 인정하여,
신변의 안전을 살펴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석가교단이 출가만을 목적으로 삼고,
자신만의 편안한 생활을 좋다고 하여,
사회생활에서 완전히 격리해 버렸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
마을이나 거리에 나가 전도하여 사람들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전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재가신앙(在家信仰)의 길을 권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평화를 기구하며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떠나서 혼자 산속에 기거하며,
깨닫는 일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은 제일 첫 번째의 목적이고,
깨달음에 의해,
두번 째 목적인 사회의 평화를 목표로 한 것입니다.
이 점을 잘못 받아들여,
깨달음을 최종 목표로 생각한다면 큰일입니다.
또한 출가해야 깨닫는다는 생각도 큰 잘못입니다.
재가(在家)에서도 훌륭하게 깨달을 수 있고,
또 재가 속에서 자신을 조화시키고,
인간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인간의 정도(定道)입니다.
기성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관 육근에 휘말리지 않는
자신을 확립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
(주; 부처님 당시에 출가 제자와 재가 제자중에서 해탈하신
분의 숫자가 거의 같다고 하는군요.)
첫댓글 차음부터 혼자 산다면 깨달음에 대한 욕구자체가 없다는 말씀이 정곡을 찌르네요.
마치 자연속에 놓여진 한마리 동물처럼 말이지요..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