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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창조주 신'을 기독교식으로
'하나님아버지'라고 읽으면 창조주 신이 꼭
기독교만의 '신' 같으시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신이 없다고 하거나
그냥 '신' 이라고 하듯이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아버지'라고 읽지 말고
'창조주 신' 이라든지 '신' 이라고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어느 종교에서
어느 관점에서 '신'을 느끼는 것은 다 다를지라도,
그래서 신들이 무지 많은 것 같을지라도,
영의세계에서의 '신'은 총체적으로
딱 '한 분' 이시다.
더 없다.
더 있으면 '신'들끼리 전쟁해서 1인자를
가르느라고 인간새우등 몽땅 다 터진다.
그러면 신들의 전쟁 때문에 지구나
우주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창조주 신' 외에 '신'이 더 있으면
그 어떤 신이든 전지전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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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아!
‘성경’은 창조주신의 온 인류적이고 전 인류적이고
전 세계적으로 창조주신께서 인간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간략하게 말씀하신
창조주신의 법전이지만 그 안에 다 들어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시스템이다.
“창조주신께서 그렇게 하셨다” 하시는 것도
전 인류적이고, “그렇게 하시겠다”도 전 인류적이고,
축복을 내리심도 전 인류적이고, 징계를 내리심도
전 인류적이다.
그런 것은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타 종파든
불신자든 그 누구든 다 해당된다.
믿든지 말든지 알든지 말든지 싫든지 좋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 모두 다 해당된다.
창조주신께서 창조하신 자는 ‘아담’이다.
창조주신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아담’이다.
성경은 창조주신의 말씀이시다.
성경은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은 죽어서 영의세계로 들어가 버린 ‘아담’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땅에서 숨을 쉬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아담’에게
“이렇게 살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
“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니 계산을 당해야 한다.
늙고 죽고”
내가 아담의 후손인지 알아도 흙이고 죽어야 하고,
몰라도 흙이고 죽어야 하고,
싫어도 할 수 없다 흙이니 죽어야 한다.
좋아도 할 수 없다 흙이니 죽어야 한다.
유대인이 “우리는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대한민국이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다.
일본이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인도가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미국이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몽땅 해당된다. 몽땅 아담의 자손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영의세계의 모습에서
부자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 품으로 갔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조상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인 것일 뿐이다.
만약 예수님이 한국에 태어나셨다고 한다면 이 때
‘단군 할아버지’ 품안에 있다고 설명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미국에 태어나셨었다면 미국의 조상의
품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 뿐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태국이든 필리핀이든 인도든
소말리아든 다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그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고 창조주신께서
창조하셨고 창조주신께서 관리하신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와서 모를 뿐이다.
하지만 그저 창조주신께서 하신다.
■신의 법전
창조주신의 성경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 수준으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파헤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 된 인간들을 이렇게 다스리시겠다고
창조주신께서 쓰신 성경을 죄인 인간들이 자기들
학식 위에 성경을 올려 놓고 요리 오리고
저리 오리고, 이렇게 파 보고 저렇게 파보고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고 한들 절대로
너희들은 모른다고 하신다.
성경에서 역사를 말씀해 주신 것은 인간들 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왜 그런 역사가
생겨났는지는 조상의 죄로부터 시작 된 것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이고,
창조주신께서 영의세계에서 아담에게 선포하신
판결 기한의 끝이 와야 인생의 결말이 나는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를 표본으로 알려주신 것은
한 가정으로부터 부족이 형성이 됐고 나라로
형성이 됐고, 각 나라가 그렇게 살고 개인이
그렇게 살고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서 그런 환난이 온 것이고
그렇게 살아서 축복이 온 것이고, 때가 되어서
징계가 끝나는 것이고를 알려주신 것인데,
창조주신이나 예수가 관련된 추상적인 말씀들을
해부할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것은 영의세계에서의 창조주신께서 주관하시는
판결문일 뿐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사람으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훤히 알 수 있는 말씀들이 있는데 그런 말씀들을
찾아 지키던지, 아니면 가정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고 사회생활에서 배우고 나라에서 배우고 하는
바르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고, 부모에게 잘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고,
법도 잘 지키고, 남도 잘 챙겨주고 살아도 성경을
거의 지키게 된다.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받고 존경 받는
사람은 거의 창조주신께도 칭찬 받는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른 칭찬 받는 사람은 곧 들키게 된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좋은 말을 해도 속이 메스껍다.
사람도 느글느글 하다. 창조주신도 역겨워 하신다.
■성경의 세가지 속성
성경의 성격을 전체적으로 보면 세가지 속성으로
나눠 볼 수가 있다.
나에게는 창조주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안다고 믿는다고 자랑삼고
떠들면 오히려 혼나는 것이 있고,
사람이 꼭 ‘실천’에 옮겨야 하는 명령과 지켜야 하는
창조주신의 ‘주의사항’도 있고,
창조주신께서 사람들의 행위로 형성된
‘창조주신의법 세계’와 ‘죄의 법’ 세계로
실시간으로 계산하시고 사람에게 내리시는
‘축복’하심과 ‘징계’ 하심의 명령말씀이 있으시다.
첫째
◆창조주신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것이 있으신데
이런 부분은 사람들이 믿는다 안 믿는다 어쨌다
저쨌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 무엇 때문에라도 변하지 않는 창조주신의
뜻이고 마음이실 뿐이다.
창조주신의 창조를 믿네 안 믿네 라는 것들,
예수가 남자의 정자도 없이 여자의 홀몸으로
태어난 것을 믿네 안 믿네 라는 것들은
나의 뜻과 믿음과 주장과 시인과 외침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녀석들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신의
역사를 못 믿네, 아이고 답답하네,
이 녀석들을 어찌할꼬!” 하시나?
절대로 그런일 없다.
“창조주신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너도 창조하셨고,
남자의 정자도 없이 사람으로 태어났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안 믿냐?
다시 이 땅에 또 올 것인데 그것도 안 믿냐? 너는?
성경에 써 있어도 안 믿냐? 너는?
저 녀석을 당장 죽여 버려라!”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오산 중의 오산이다.
“그래! 너는 그것을 믿는다고?
어디 네 목숨을 걸 수 있냐?
혈서를 좀 써볼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시인할 수 있냐?
너는?”
하는 창조주신이나?
창조주신을 미치광이 정도의 왕으로 보나?
그런 창조주신이면 발로 차버려라.
사람이 알든 말든 믿든 말든 좋든 싫든 창조주신은
그냥 창조주신의 일을 하실 뿐이다.
사람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 창조주신의 능력을
‘정자’로 제한시키는 것이고, 창조주신의 능력을
‘예수구원’으로 제한시키는 것일 뿐이다.
예수가 태어나셔서 예수의 할 일을 하고 가셨으면
가신 것일 뿐이다. 예수가 왔다 갔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실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안 왔었기 때문에
구원을 못 시키시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은 나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네 종교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너의 믿음을 테스트 해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너 하나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네 나라 하나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창조주신의 뜻일 뿐이고 마음일 뿐이다.
그리고 창조주신과 사람과의 역사기록일 뿐이다.
둘째
◆사람들이 꼭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 말씀이 있다.
“이렇게 하라” 라고 쓰여졌지만 영의세계 법으로
쓰여진 형이상학적이나 추상적이거나 해서 사람이
지키거나 행할 수 없는 말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성령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라는 말씀이다.
그런 말씀들은 우리에게 하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라는 말씀인데,
영의세계에서 창조주신께서 그 사람 영체에게
말씀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런 때를 “성령의 들을 귀가 열렸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성령의 음성을 듣겠다고 들고 뛰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께서 들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말씀들이
있는데, 부부관계, 자녀관계, 가족관계, 상전과 종 관계,
이웃관계, 나라관계, 교회와의 관계,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나의 성격이나 성품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말씀들이다.
이런 말씀들을 지키면 복을 받는 것이고,
이런 말씀들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
신약에서 많이 말씀하셨는데 남편의 말에 순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상전에게 순종하고, 종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착하고, 정직하고, 저울을 속이지 말고,
분을 내지 말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고, 험담하지 말고,
이간질 하지 말고, 아닌 척, 착한 척 하지말고 등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있다.
그런 것도 각 나라마다 약간씩 다를 수는 있는데
그 나라 법대로 그 나라 관습대로 적용이 된다.
옷을 벗고 사는 나라는 옷을 벗고 사는 대로,
옷을 입고 사는 나라는 옷을 입고 사는 대로,
어른에게 이름을 부르는 나라는 부르는 대로,
존칭을 쓰고 촌수를 따지는 나라는 그 대로,
기도를 길게 드리는 나라는 그대로,
짧게 드리는 나라는 그대로,
기도를 무릎을 꿇고 하는 자는 그대로,
다리를 뻗고 하는 자는 그대로,
그 나라 사는 방식대로 살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다 해당이 되는데 이런 잘못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징계로 계산된다.
창조주신의 영적인 말씀과 사람이 지켜야 할
육적인 말씀이 같은 구절이나 앞 뒤로 나열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우리는 창조주신과 관련된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해야 하는 말씀에 신경 써야 한다.
성경에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행위에 밑줄을
쳐봐라. 그리고 그대로 행하라.
신은 나가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데, 종교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이 최고라고 알고 있다
창조주신은 정작 네가 기도하지 않아도,
네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창조주신은
그냥 창조주신의 일을 이루신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기독교인이
기도를 드려서 그러는 것이라고 얼마나 떠들어
댔는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나도 조금 했으니까.
그런데 신께서는 신의 때에 신의 뜻에 의해서
일을 이루셨는데, 우리의 선함의 행위를 보시고
복을 주시는 것이지 무조건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처음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야 우리도 하나가
되어서 신학이든 신앙이든 선행이든 하나가
되어 정진했었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먹을 것을 주고 하는 구제와 선행을 했었다.
그래서 복을 받았다.
그러다 부유해지니 변질되어 파가 여러 개로
갈라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기독교인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신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보실 뿐만 아니라 기도드리고 있는
“너는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으신다고 하신다.
(시편 34:13~16)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지금은 기도를 많이 드리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욕을 제일 많이 먹고 사는
기독교인으로 1위를 꼽고 있다.
기독교에서 ‘의인’과 ‘악인’의 개념을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로 설정했다.
자기들은 의인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기도를 드리면 창조주신도 꼼짝을 못하고
그 일을 이루고야 마는 것처럼 설정했다.
그래서 삶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무엇을 회개해야하는지 도무지 모른다.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의인과 악인의 개념과
신께서 생각하시는 의인과 악인의 개념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아무리 “악인은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하게 해달라”고 다윗처럼 기도한들
나를 악인으로 계산하시면 내가 그물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해서 얼마나 그물에
안 걸리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시편에
그렇게 되어있다고 나도 그렇게 기도하면
큰 코 다친다.
내가 장본인이다.
나의 악인이 다 계산되고 있었다.
기도하든 말든.
(시편 141:10) "악인은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아멘.
(시편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아멘.
신께서는 전 인류의 신이시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기쁜 소리며, 슬픈 소리며,
탄식의 소리며, 소원의 소리며, 감사의 소리며,
짜증의 소리며, 원망 불평 불만의 소리며,
합당하지 않은 지껄이는 소리며, 다 듣고
계시는데, 신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계시다.
그 ‘의인’ 이라는 것은 정직한 것이고,
성실한 것이고, 착한 것이고, 바른 것이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공평한 재판을
하는 것이고, 사람으로서의 합당한 도리를
행하면서 칭찬 받고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무조건 기독교인의 공로라고 치부하지 말고,
기독교인의 기도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선하게 살고 있는 의인들의 힘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도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고,
불신자 중에도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고,
타 종파에도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는 것이다.
악인은 살인자만이 아니다.
우리 가정은 기독교 우등생이라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 보물’이라는 소리도 듣고,
‘달란트도 많다’는 소리도 듣고, ‘공 예배든 기도든
열심히 한다’고 소리도 듣고, ‘목사님 측근’ 이었고,
나름 ‘교회생활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닥 사회 봉사생활을 많이
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교회에서 잘 지내면서
기도만 충실하게 드려도 잘하는 것인 줄 알았고,
기독교인만 천국에 가고 불신자나
타 종파들은 다 지옥에 간다고 배워서,
신문사에서 기사를 발췌하면서도 기독교인이
아닌 곳에서 김치를 담가주기를 하거나 반찬을
만들어 주거나, 소외계층 어르신에 식사를
대접하거나, 이웃돕기에 발 벗고 나서거나,
각종 선행의 뉴스를 보면서,
“이래봐야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다들 지옥에
갈건데 멀” 그랬다.
나는 그런 선행을 하지도 않아놓고 말이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가신
마리아 테레사 같은 분을 놓고도 지옥에 갔네
어쨌네 했다.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손 놓고 있으면서.
어느 교회에서는 지옥에 갔다고 그러고,
어느 영성의 대가 목사는 천국에 갔다고
그러고… 아주 통탄할 노릇인 것이다.
사람이 창조주신께 “해야 하는 것”은 없다.
창조주신께서 하게 하시고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곳도,
교회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목사들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유대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천주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불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슬람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 땅에서 사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기관도 그 어떤 종교도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오직 전지전능 하신 창조주이시며
재판장이신 창조주신의 뜻으로 간다.
“기도해야 하는데, 성경 읽어야 하는데,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봉사를 해야 하는데,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데,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데,
능력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데...”
하지 말라.
그것은 개인이 종교생활에 필요한 것이지
인간주제에 신께 드리는 것은 없다.
기도하게 하신다, 성경을 읽게 하신다,
각 종교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신다,
봉사를 하게 하신다, 성령을 주신다,
능력을 주신다, 예수를 믿도록 믿음을 주신다,
예수를 사랑도 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신다,
예수가 좋다고 예수를 사랑한다고 즐거움으로
입으로 고백하게도 하신다.
사람이 창조주신께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오직 창조주신께서 먼저 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한다고 하면 오만불손이다.
셋째
◆ 신께서 축복을 주시고 징계를 주시는 판결문
이라는 것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창조주신은 말씀으로 명하시기 때문에
판결문이든 무엇이든지 “하라” “하지마라”
“그렇게 되라” “그렇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보면 꼭 우리 사람더러 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 당황스럽지만 창조주신의 판결문 명령이실
뿐이다.
네 눈이 범죄하면 빼버려라,
내 손이 범죄 하면 잘라버려라,
네가 실족하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져죽어라 라는 말씀들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벌을
내리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실수로 다치든 재수가
없어서 다치든 우연히 다치든 질병에 걸리든
사고가 나든 해가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대 왕들의 삶을 돌아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도 그들의 삶을 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이스라엘 문화로 쓰고,
창조주신의 백성을 위주로 쓴 것 같아서 우리는
잘 모르겠다.
너희들이 그냥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전능하신 ‘신’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창조주신을 안 믿고 안 섬기면 다 죽여
버리시겠다는 것이 아니시다.
하지만 일부 나라든 일부 사람이든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신께서 계시고, 신께서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알려주시고
끌어가시는 것은 있으시다.
성경은 역사공부를 하듯 분류해서 공부하고
외우고 밑줄을 긋고 하는 것도 상관은 없겠지만
신의 법전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모르겠더라도
그 안에 나오는 사람이 행해야 할 것들인
‘실천사항’과 ‘창조주신의 주의 사항’ 이 있는데
신약성경에 많이 써 있다.
이런 것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은 외우고 믿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행하라고 있는 것이다.
행할 것을 찾아라.
■떠들면 안되는것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고 나서 내가
믿는다고 하지 못할 것들이 있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태초에 있었던 일들,
창조주신께서 계시다. 창조주신께서 하셨다. 창조주신께서
창조하셨다. 천군 천사들이 있다.
창조주신께서 직접 하신 일들인 노아를 선택하시고
방주를 짓고 구원시키고 온 인류를 홍수로 멸하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모세를 선택하시고 애굽 나라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노예로 살고 있던 야곱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구원시켜 주시고,
예수는 남자의 정자도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고
창조주신의 아들이라고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태형 39대를 맞고
십자가에 매달려 말려죽으셨다,
나중에 재림하실 것이고, 기독교인들은 휴거를
당할 것이고, 기독교인들만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는 그냥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해도
이상한 것들,
그 이론에 테클을 걸만한 이론들을 함부로 믿는다
어쩐다 떠들 필요가 없다.
예를들면
“지금 내가 성령으로 잉태됐다”고 말했을때
"성경에 써있는 마리아가 남자의 정자도 없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믿겠는데 지금 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죽어도 못믿는다
이게 미쳤나? 그런 게 어딨냐? 마귀 들렸네,
귀신 들렸네”라고 하는 그런 종류들이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서로 논쟁을 벌이고,
서로 분을 내고, 단절을 하고, 폭력이 일어나고,
전쟁을 벌이고, 떠들어도 neverending 인 것들은
사람들이 신경 쓸 문제가 전혀 아닌 것이고,
사람은 자기가 처해진 곳에서 충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 신께서도 신경 쓰시지 않으시는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 생존시에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이, 창조주신의 아들이라고 살았던 예수가
귀신들린 것이라고 미친 것이라고 이단이라고
죽여야 한다고 떠들어도 다 죽여 없애버리시지
않으신 것이다.
까짓거 천사 하나만 와도 다 죽여 버리시는 권세가
있으시다는 데도 가만히 피해서 가시고 다른 곳으로
가시고 자기 할 일만 하셨다.
그런 것들을 믿는다고 예뻐하시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고 미워하시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도 전부 창조주신께서 알려주셨냐
안 알려주셨냐 이기 때문에 신경 쓰시지 않으신다.
만약 저런 사실들이 믿어졌다면 전적으로
창조주신께서 주신 믿음인데,
내가 기독교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성경에 대해서 창조주신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듣기 전에, 교육받기 전에
믿어진 것은 창조주신께서 전적으로
주신 믿음이고,
내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일대일 양육을 통해서 알게 되어 믿어지는 것은
공부를 해서 믿어지는 것이다.
둘 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이다.
역사 공부를 통해서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알 뿐만 아니라 믿기까지 하는 경우나 같은 것이다.
역사공부를 통해서 역대 왕들의 일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게다가 그 역사기록들이 믿어진다.
그런 것이 믿어진다고 그 사람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필요해서 공부한 것일 뿐이고 누구는 필요치
않고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녀서 못 배웠을
뿐이다.
내가 역사가 믿어진다고 해서 내가 한글을
창제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해전에서 일본에게
이긴 것이 아니다.
내가 역대 왕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공부했다.
그냥 공부한 것에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기까지 걸 필요는 없다.
그냥 공부한 것에 자기 목숨을
담보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바뀌지 않는 성경의 속성
성경도 마찬가지다.
너나 나나 우리가 믿으나 믿지 않으나 보았든지 보지 못했든지
그냥 창조주신의 뜻에 이루어진 것들,
나나 너나 우리의 믿음에 의해 변질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좀 안다고 좀 믿는다고 들고 뛰어도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안다고 믿는다고 증명한다고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걸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자기가 목숨을 걸고 믿든지 말든지 알든지 말든지
벌써 이뤄버리신 신의 뜻과 목적과 과정을 알려주신 것일 뿐,
지금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느냐만 남은 것이다.
그런 것은 그냥 내가 배워서 좀 이 나라의 헌법을 좀 알고
각종 법률을 좀 알고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을 믿으나 믿지 않으나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똑 같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의 헌법에 대해서 잘 아나 모르나 믿으나 안 믿으나
잘 살던지 못 살던지 똑 같다.
창조주신의 헌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것에 밑줄 치고 쓰고 외우고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매달린들 헛짓하고 있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사람이 정해놓은 사람의 헌법은 바뀔 수 있다.
문화에 따라 형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바뀔 수가 있다.
하지만 창조주신의 헌법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이 성경이라는 것을 번역을 하는데 자기네 형편대로
이 단어로 저 단어로 바꾸고 어떤 단어를 뺐다 넣었다,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고 해도 아무소용이 없다.
영의세계에서 두루마리로 날아다니면서 죄를 적발해서
징계하시는 법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도 성경을 그렇게 넣고 빼고 바꾸고 자꾸 재발행
한다고 한탄하는 종교인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꾼다고
창조주신의 성경말씀의 속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냥 창조주신의 성경말씀의 목적대로 결과대로 실행될 뿐이다.
창조주신의 성경말씀 명령들은 벌써 영의세계에서 형상화되어
운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스가랴 5:1~3)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그 운행하심은 성경이라고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사람들이 율법이라고 글로 쓰기 전부터, 창세기부터 운행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창세기 전부터 운행하셨겠지만 창세기부터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창세기로 알고 있어도 된다.
창조주신이 정말 믿어지고 성경이 정말 믿어진다면
그것은 창조주신께서 그렇게 하셨을 뿐이기 때문에
내가 믿는다고 떠들면 오히려 더 혼난다.
그런 것은 내가 믿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나의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나의 믿음으로 증명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께서 주의 뜻에 의하여 주의 뜻대로 하셨을 뿐이고,
그것을 성경에 말씀해 놓으신 것일 뿐이다.
믿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믿어져도 상관없다.
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창조주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마시나? 하면 아니다.
신의 징계가 내려지는데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단절이 일어나고 폭력도
일어나고 종교전쟁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다치고 아프고 죽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나의 종교가
최고라는 자랑을 일삼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의인’으로
생각해서 자기 잘못을 모른다.
폭탄을 품고 들어가서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그리고 자신은 자기 종교의 천국에 가는줄
안다.
■천국 구원 없다
이 땅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천국 구원 없다
▶이스라엘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이스라엘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유대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유대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천주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천주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기독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기독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불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불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이슬람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이슬람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흰두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흰두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제칠일안식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제칠일안식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몰몬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몰몬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기타 종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기타 종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무신론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무신론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이 땅에서는 종교든 선함이든 악함이든 의인이든
악인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그 무엇으로든 천국
구원은 없다.
단지 이 땅에서의 선하게 살았냐?
악하게 살았냐?의 축복과 징계만 있다.
어느 종교에 속해져 있든 어느 위치에
속해져 있든 너희들은 그저 너희들이
해야 할 일들만 잘 하라고 하신다.
너희들에게서 절대적으로 나올 수 없는
천국 구원을 주장해봤자 피와 전쟁과
죽음밖에 없다고 하신다.
■기로(岐路)
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사람이라고 하는 너는!
더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받게 되냐?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면서 살게 되냐?
더 나은 삶으로 나아지게 되냐?
더 존경받고 높은 자리로 나아지게 되냐?
재정이 풍성해지게 되냐? 행복하고 즐거워서
천국 같은 삶을 살아지게 되냐만 있다.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냐?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자기 밖에
모른다는 소리 듣고 사냐?
그래서 무시당하고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사냐?
더 가난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냐?
재정이 바닥을 치게 되냐?
슬프고 우울하고 괴롭고 눈물 나고 통곡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되냐? 만 있다.
개나 소나 누구나
‘천국 같은 삶⇦ ⇦현재 위치⇨ ⇨지옥 같은 삶’
이냐 기로(岐路)에 서 있을 뿐이다.
■그랬구나~
이런 것들을 알고 나면 우리는 그저 “아~ 그랬구나!”
“창조주신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구나!”
“아담과 하와라는 조상이 그런 죄를 지어서
우리가 이렇게 사는구나!”
“성경은 창조주신께서 쓰신 것이구나!”
“역사는 신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구나!”
“우리는 각 처소에서 맡겨진 대로 신께 예배할
사람들은 예배하고 아니면 아닌 대로 살면 되는
것이구나!”
“창조주신께서 예수라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구나!”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구나!”
“내가 죽으면 영의세계로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이구나!”
“그리고 창조주신을 만나는 것이구나!”
“그리고 또 창조주신과 천사들과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이구나!”
라고 말하면 된다.
“나는 그것을 철저하게 믿는데, 너는 그런 믿음이 없냐?”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것을 믿는다! 이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내 목숨까지 건다!” 라고 까불고 들고 뛰어도
창조주신께서는 인정을 안 하신다고 하신다.
그렇게 까불다가 정말 신께서
네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실 수 있으시다.
사람이 창조주신께 하는 것은 인정이 안 된다.
그것은 그냥 창조주신께서 하게 하신 것일 뿐이다.
■실천사항에 밑줄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라고 이 땅에서 교육을
통해 배운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 실천해야 한다.
해라 하지마라 홍익인간 전인교육 바른생활 도덕
에티켓 공중도덕 위계질서 상부상조 품앗이
win-win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 대인관계 경우
도리 성실 정직 공평 구제 선행 선함 착함 효도
등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존경하는
삶들이다.
성경에서는 무조건 사람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나?
라는 말씀을 찾아 밑줄을 긋고 외우고 나가서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4:24절) 말씀 같이
“창조주신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라는 말씀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말씀이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인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라는 말씀에 밑줄을 긋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창조주신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모습이 무얼까?
사람들에게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다”
“그 사람 참 좋다” “그 사람과 사귀고 싶다”
“그 사람을 추천합니다” 라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4:30) “창조주신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씀만 붙들고 외우고 쓰고 늘어져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인 31절 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 하라” 라는 말씀에
밑줄을 긋고 외우고 쓰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주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된다.
우리는 우리가 행해야 하는 수준은 생각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배울 생각도 안하고, 창조주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가르치고 외우고 믿는다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창조주신의 생각이고 뜻이고
방법이기 때문에 나는 몰라도 된다.
종교자들이 설교를 할 때도 신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거나, 우리는 할 수도 없는 앞 구절
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설교하고,
막상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을 본인도 행하지 않고
가르치기만 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마땅한 징계가 내려지는데
그 종교자도 그 것이 세상이 예수쟁이를
미워하는 어떤 의로운 고난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면 모를 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악하게 노하고 분내고 떠들고 비방하고 친절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서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께서 근심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근심만 하시고 마시냐?
아니다. 그 사람에게 징계를 내리신다.
성령께서 근심하실 때는 사람들도
그 사람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믿든지 말든지, 사건이 크든지 작든지 눈꼽 만하든지
어쨌든지 무조건 나의 일이 안 되고, 엉키고, 떨어지고,
눈물 나고, 마음이든 몸이든 아프고, 경제가 끊기고,
망하고, 무너지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실수하고, 매까지 맞고,
혼나고, 갇히고, 사고 나고, 죽고 하는 것에 있어서
나의 거룩하고 의로운 고난은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기를 바란다.
세상이 예수쟁이를 미워하기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살기를 바란다.
나의 마음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생각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눈길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느낌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뜻과 목적과 동기와 과정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말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행동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전부 나의 잘못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창조주신이
잘 못했다고 하는 것으로 된다.
엉터리 심판의 창조주신.
■신의 성품대로
성경을 읽을 때 “이 녀석들이 나를 떠나고”
“내 말을 안 듣고” “나를 버리고” 라는 말씀은
창조주신 본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의 올바르신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구약은 여호와 창조주신의 올바르신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신약은 예수의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름만 팔고 다니면 큰 코 다친다.
정말 ‘창조주신 이름’ 만 팔아도 되는 창조주신
같으면 이스라엘이 잘못하던지 말던지 그냥
마구잡이로 축복해 주시고, 무슨 전쟁이든
이기게 하시고 세계를 정복하게 하셔서
대장을 삼으시고,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블레셋을 들어서 바벨론을 들어서
앗수르를 들어서 공격당하게 하시고 죽게
하시고 지게 하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학살당하게 하시고 2천년가까이 나라도 없이
방황하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오냐 오냐 내새끼 이쁜 것들 하셔야 한다.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 타국이 이방인이지,
창조주신께는 모두 창조주신의 백성이고
신의 자녀들일 뿐이다.
“내 종” “내 목자” “선지자”
이 단어를 또 교회 목회자를 말하는 것으로
알면 답도 없다.
창조주신을 사랑하라는 것은 창조주신
본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의 좋으신 성품, 올바르신 성품,
선하신 성품, 정직한 성품, 공의로우신 성품,
공평하신 성품, 편벽이 없으신 성품, 긍휼의 성품,
사랑의 성품, 자비의 성품을 닮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징계와 진노와 심판은 더더욱이나
창조주신의 주권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창조주신의 진노의 성품과
징계의 성품을 닮으면 안 된다.
이 창조주신의 진노의 성품과 징계의 성품과
심판의 성품을 닮으면 나도 사람을 때릴 수가
있고 죽일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죽는다.
■사람답게 살자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
창조주신은 참 어려운 것을 시키신 것 같다.
그나마 가족은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주셔서 망정이지,
사람의 속 성품은 그냥 혼자 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죽지 않아봐서 영의세계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성경에도 영의세계는 그냥 혼자라고 하신다.
누구랑 부부로 가족으로 묶인 것이 아니라.
그런데 이 땅은 다르다.
신은 이 땅에서는 꽁꽁 묶어 놓으셨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을 다 죽여 버리고
혼자 살아도 좋다고 하는 단독적인 성품인가보다.
사람들을 부부로 묶으시고, 자녀로 묶으시고,
가족으로 묶으시고, 형제로 묶으시고, 친구로 묶으시고,
직업으로 묶으시고, 취미로 묶으시고, 문화로 묶으시고,
연예로 묶으시고, 이웃으로 묶으시고, 종교로 묶으시고,
사회로 묶으시고, 나라로 묶으시고, 세계로 묶으시고
다양하게 꽁꽁 묶어 놓으셨다.
내가 망하면 나와 연계된 사람들도 같이 힘들어지고,
내가 부해지면 나와 연계된 사람들도 부해지도록.
그 사람이 없으면 나 혼자다.
내 옆에 아무도 없고 혼자라고 느낄 때
자살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살하기 직전에 느낌을 그렇게 말한다.
너 자살하지 않게 네 옆에 다른 사람 놓으셨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잘하고 친구에게 잘하고
인사 잘하고,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말고, 침 뱉지 말고,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금연 하라고 하면
금연 하고, 금주 하라고 하면 금주 하고, 싸우지 말고
그야말로 우리가 배우고 살았던 바른생활, 도덕생활,
학교에서 배운 대로 가정에서 올바로 배운 대로
잘 사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게 선배에게 배우고, 나는 후배에게 가르치고
나는 죽는 것이다. 내 것을 잘 물려주고 죽는 것이다.
정말 기독교인이 나빠서 욕을 먹는 것인지,
기독교인을 팔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욕을 먹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반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치를 떨면서 싫어한다.
그러니 기독교인 답게 살지 말고 꼭 사람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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