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운동회 때 가장 많이 들었던 행진곡입니다.
1. 죠지아 행진곡
2. 올림피아 행진곡
추억의 가을 운동회
10월 1일 오전에 묵주기도성월 꽃꽂이를 도와주러 본당에 갔다가
이시돌 어린이집 아이들의 민속놀이 한 마당을 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쓰고 한 복을 입고 있었지만
반별로 선생님이 인도하는 대로
투호놀이, 딱지치기, 윷놀이, 사진찍기 등의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함박웃음을 지으며,,,,
옆에서는 동생들이 형과 누나들과는 별도로
자기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어머니들은 사진찍느라 바빴습니다.
아버지들도 시간을 내어 차로 데려다 주고
잠시라고 함께 한 모습을 보니
어릴적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가 생각났습니다.
요즈음 동네친구들과 골목에서 하던 놀이로 만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 오징어게임 등 6게임이 등장합니다.
어린시절에 하던 게임이 추억을 더듬게 해서 재미있지요.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국민학교 운동회에는 바쁜 농촌의 일손을 잠시 놓아두고
온동네, 가족모두가 참여하여 즐겁게 응원하고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삶의 한 모퉁이에서 청량감같던 운동회~~^^
그래서 포스팅을 해 봅니다.
가을 운동회는 농촌에 있어서
농민들도 하루 쉬는 날이었습니다.
동네 전체가 난리법석이었고
자라나는 우리들에겐 커다란 변화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마스게임이나 민속무용을 하였고,
남학생들은 기마전과 덤블링 묘기연습을 주로 하였지요.
'국민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 때 여러분은 혹 100미터 달리기에서
1등을 해보신 적 있으세요?
출발을 알리는 총성을 기다리다가 출발선에서 터질듯한 심장 고동을
느껴보지는 않으셨나요?
기마전과 차전놀이를 하면서 옷이 찢기고 얼굴이 할퀴는데도
상대편을 땅바닥에 넘어뜨린 뒤 목청껏 함성을 내지르며
짜릿한 쾌감을 느껴보신 적 분명 있으시죠~?
시골운동회는 결코 까까머리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마을대항 운동회이자 요새 말하는 지역축제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날 만큼은 손주녀석 달음박질과
노래자랑, 갖가지 민속놀이를 구경하러 풀먹인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마실을 나섰습니다.
운동장 앞쪽에 자리한 내빈석에는 면장님과 지서장님 등
지역 유지들이 천막 응달아래 폼을 잡고 앉아있습니다.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
청백군간의 응원전이 점차 뜨거워져 이른바 '삼삼칠박수'도
점점 커지고 빨라집니다.
"이겨라, 백군." "잘한다 청군" 응원기를 펄럭거리는 호랭이 같이
눈을 부라리면 아이들은 '쾍쾍' 소리를 더 지르며 분위기를 맞춥니다.
제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계주. 특히 학생과 어른으로 구성된 계주
사실 시골학교 운동회의 계주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시합종목이기도 하였다.
넘어지고 바톤을 떨어뜨리고 한바탕 웃고....
어른들 종목으로 자전거 타고 늦게 가기, 어머니 달리기 등도 있었습니다.
어른들 상품은 1등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상이 큰 건 아니었습니다.
치약, 냄비, 빗자루, 비누 등이 다였고
우리들에겐 연필, 스케치북, 공책 등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팔목에 찍히는 1등 도장으로 한 달은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기에 기를 쓰고 1등을 하려고 했지요.
오전부터 엎치락뒤치락 했던 점수도 결국은 이 계주에서 결판이 납니다.
계주 경기에 나선 아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영웅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운동회가 끝난 뒤로 내내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계주가 시작되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트랙주변으로
몰려나와 혼연일체로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마지막 승리팀이 청군이든, 백군이든 아이들에게 가을운동회 날은
늘 너무나 짧은 하루였습니다.
해가 서산에 거릴고 아이들의 그림자까지 길어지면 각자 집으로
돌아서지만, 저마다 손에는 연필 몇 자루와 월계수잎 무늬와
'賞'자가 선명한 공책 한두 권씩이 들려있었구요.
첫댓글 ㅎㅎ 동심의 추억 운동회 날 가을 운동회는 큰 행사였지요~
저는 운동회 날이 제일 싫었습니다~ㅠ.ㅠ
달리기만 하면 꼴찌를 해서 엄마가 운동회 날 밥 싸서 오기 싫다고 했거든요~
동생이 입학하고부터는 동생이 1등을 해서 밥 싸서 오기 싫다는 소리 안 들었어요
저는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 못 받아 봤고요~ㅎㅎ
4등 한 게 제일 잘했고요~
1등 달리다가 다가가면 꼴찌로 밀리고 아픈 추억입니다~ㅠ.ㅠ
딸들도 저를 닮아서 달리기를 못했는데 한이 되었는지
손주들은 생후 8개월부터 체육관 데리고 다니더니
손녀들은 릴레이 선수를 하니 한 풀었다고 한답니다.
남은 오후 시간도 즐겁게 보내세요~🍁☕
그렇군요.
저는 6년 내내 릴레이 선수였습니다.
6년 간 백군만 했는데 키가 작아서 불리했지만
빠르게 발을 놀려야만 상대를 이길 수 있었기에 온 힘을 다해 달렸지요.
운동회 마지막이 항상 릴레이 경주였기에 제일 관심있는 경기였지요.
그날의 승패도 가름할 수 있고~~
키가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따라잡을 때 터지는 함성과 기쁨을 늘 선사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달릴 때 모습이 다람쥐 쳇바퀴돈다는 말로 표현했지요.
모든 달리기는 1등을 했지만, 장애물 경기나 사람찾아 같이 달리기에서는
1등을 놓친 경우도 있었지요.
지금도 국민학교 친구들이나 스승들은
저에 대해 조그맣고 달리기 잘하던 학생으로 기억을 하지요.
지금도 가을 운동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립니다.
행진하면서 듣던 음악도 흥얼거리면서~~^^
@세잎 클로버 ㅎㅎ 대신 저희 집 구 안드레아는 운동이란 운동은 다해서 빠르고
회사 운동회 때도 릴레이 선수였는데 애들은 저를 닮아서 애들이 원망을 한답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옛날 생각 많이 나네요.
정말 추억 어린 가을 운동회 입니다.
만국기 아래 펼쳐지는 가을 운동회는 국민학교의 연중 행사였고 촌에서는 마을의 대 잔칫날 이었지요.
국민학교 학생 때도 그랬고 국민학교 선생 때도 그랬습니다.
운동회를 앞두고 밤잠을 설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가을 운동회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 였는데
세상이 변하니 점점 사라져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네요.
못살던 시대의 아련한 추억으로.......
지금도 '추억의 가을 운동회'를 보니 옛날 처럼 마음이 설레입니다.
공감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