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別廉措大
虯川 全克恒
戚分交情兩得兼。
前朝大姓曲城廉。
人生此會寧非數。
旅寓相尋也不嫌。
吟罷白雲飛彩筆。
語闌明月掛雕簷。
那堪便作河橋別。
玉斝休辭酒更添。
청빈한 선비 염씨와 이별하며
규천 전극항
친척과의 우정은 두 가지를 아울러 얻을 수 있으니
고려 시대의 대성인 곡성(파주) 염 씨와의 관계다.
인생에서 이런 만남은 어찌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객지 여관에 묵을 때 서로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詩)의 읊음을 끝내니 흰 구름이 오색의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담소가 무르익을 때 밝은 달은 조각된 처마에 걸렸다.
갑자기 다리에서의 이별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옥으로 만든 잔에 술을 다시 권해도 사양하지 마시오.
[국역] 전과웅
[출처] 규천선생 문집
● 措大 조대
깨끗하고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말.
● 戚分 척분
척(戚)이 되는 관계(關係).
● 便作
갑자기, 즉시, 이내
원개(元凱)는 위진 시대(魏晉時代) 두예(杜預)의 자(字)이다. 진 무제(晉武帝) 때 두예가, 맹진(孟津)은 건너기가 험하고 배가 뒤집힐 우려가 있으니 부평진(富平津)에 하교를 건설하기를 청하였다. 의논하는 자들이 “이곳은 은(殷)나라와 주(周)나라가 도읍하였던 곳으로 성인과 현인을 거쳤지만 다리를 놓지 않은 것은 결코 다리를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자, 두예가 “《시경》 〈대명〉에 ‘배를 만들어 다리를 놓는다.’라고 한 것은 하교를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다리가 완성되자 무제가 두예에게 술을 권하며 “그대가 아니었다면 이 다리를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치하하였다. 《晉書 杜預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