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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宜堂。 在府東三十里。 縣監崔繼宗所搆。
○全湜詩:
“亭敞春容媚, 湖平鏡面開。 舊聞山簡逸, 今向習池迴。 萬慮都消去, 三公肯換來。 登臨無限意, 遲日恐先頹。”
○“春晩茅亭暖, 臺高綺席開。 閑情歌數闋, 豪氣酒三迴。 取醉渾忘返, 臨分更約來。 明朝有簿牒, 不惜玉山頹。”
○ 육의당
부의 동쪽 30리 토상호 가에 있다. 아름다운 경치는 또한 하나의 별천지이다. 현감 최계종이 지은 것이다.
○ 全湜 詩:
亭敞春容媚, 湖平鏡面開。
정자가 탁 트이니 봄의 모습이 아름답고 호수가 평평하니 거울처럼 보인다.
舊聞山簡逸, 今向習池迴。
옛적에 산간이 표일함을 듣고서 지금에야 습지의 굽이로 향하네.
萬慮都消去, 三公肯換來。
모든 근심 말끔히 사라지니 삼공의 벼슬도 기꺼이 바꾸리라.
登臨無限意, 遲日恐先頹。
올라보니 무한한 정취가 있어, 더딘 해 먼저 기울까 두렵구나.”
○
春晩茅亭暖, 臺高綺席開。
늦은 봄 띠 풀로 엮은 정자 따뜻하여 높은 대에 비단 자리를 깔았도다.
閑情歌數闋, 豪氣酒三迴。
한가한 정서로 노래 몇 곡 부르고, 호방한 기운으로 술잔을 돌렸네.
取醉渾忘返, 臨分更約來。
취하여 혼연히 돌아감을 잊었다가 헤어질 때 다시 올 약속 하노라.
明朝有簿牒, 不惜玉山頹。
내일 아침 부서의 업무 있어도 옥산이 무너짐을 애석해하지
육의당은 최계종의 堂號입니다. 경주에 가면 八友亭이 있습니다. 바로 종가가 있었던 곳으로 최계종의 손자 팔 형제의 우애가 남달랐고 문장이 뛰어나서 당시 고을 사람들이 최씨 팔우정으로 불렸던 곳입니다.
[자료제공] 육의당 최계종 후손 최태림
◎ 육의당[ 六宜堂 ]
요약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무신 육의당 최계종(崔繼宗:1570~1647)이 1619년(광해군 11)에 지은 별장으로, 그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 후손인 최해구가 소유, 관리한다.
최계종은 임진왜란 때 숙부인 최봉천(崔奉天) 및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서생포(西生浦) 수군첨절제사를 거쳐 남포현감(藍浦縣監)에 승진되었으나 벼슬을 거역한 죄로 귀양을 갔고, 이곳 별장에서 일생 동안 은거하며 지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육의당 [六宜堂] (두산백과)
◎ 최계종 [ 崔繼宗 ]
요약
조선 중기의 무신.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의 서궁유폐 사건 때 벼슬을 거역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출생-사망/1570 ~ 1647
본관/경주(慶州)
호/육의당(六宜堂)
별칭/경승(慶承)
국적/한국
활동분야/정치
출생지/경북 경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승(慶承), 호는 육의당(六宜堂)이다. 인조 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잠와(潛窩) 최진립(崔震立)의 동생이다. 임진왜란 때 숙부 최봉천(崔奉天), 형 최진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서생포(西生浦) 수군첨절제사를 거쳐 남포현감(藍浦縣監)에 제수되었으나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서궁유폐(西宮幽閉) 사건 때 벼슬을 거역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풀려나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에 그가 말년을 보낸 육의당(경북유형문화재 제263호)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계종 [崔繼宗]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