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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전 / 작자 미상
(傳은 소설로 분류하지만, 이 작품은 수필적 요소가 다분하여 올려본다.)
세상에 만물이 하나, 둘 생겨날 때 송충이와 쉐기벌레같이 몸에 털이 있는 벌레를 통털어 모충은 300마리, 날짐승을 통털어 아우르는 우족은 3000마리가 생겨났다. 그 가운데 한 날짐승이 있었으니 성은 ‘까’요 이름은 ‘치’다.
황해도 구월산 동쪽에 한 까치 부부가 있었다.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까치 부부는 봄이 되자 알을 낳기 위해 집을 짓기로 했다. 높고 커다란 나뭇가지에 집터를 잡은 까치 부부는 부지런히 마른 풀잎과 나뭇가지들을 물어다 크고 화려한 집을 지었다.
“날 짐승들 집 중에 이보다 멋진 집은 없을 걸.”
남편 까치가 새로 지은 집 주위를 날아다니며 좋아하자 까치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우리 이 집에서 자식 많이 낳아 백년해로 합시다.”
까치 부부에게는 진시황의 아방궁이 부럽지 않았다. 까치 부부는 집 자랑도 할 겸 집들이 하기를 마음 먹었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까치 아내는 고기를 볶고, 온갖 나물로 반찬을 만들어 떡 벌어지게 한 상을 차렸다. 집들이 준비를 마친 까치는 가까이 사는 친구는 물론, 먼 곳의 친척도 불렀다. 두루미, 까마귀, 꾀꼬리, 할미새, 두견새 등 초대받은 온갖 새들이 이리 훨훨, 저리 훨훨 까치의 집으로 모여 들었다.
잔칫상에 둘러 앉은 손님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눈처럼 흰 옷을 입은 두루미가 목을 길게 뻬고 날개를 퍼덕이며 춤을 추었다. 검푸른 옷을 입은 까마귀도 두 날개를 펼쳐 너풀너풀 추었고, 황금갑옷을 뻬입은 꾀꼬리도 고운 목소리를 한껏 자랑했다. 고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두꺼비까지 와서 즐겼다. 그런데, 바삐 잔치를 준비하다보니 그만 남산골 사는 비둘기에게 초청장 보내는 것을 깜빡했다. 남산골 비둘기는 원래 심술쟁이이고, 사나워서 남에게 해꼬지를 잘 하였다. 비둘기는 화가 몹시 났다.
“괘씸한 놈이구나. 새로 지은 까치놈의 집을 뻬앗아 내가 차지해야지.”
까치의 집으로 불쑥 찾아간 비둘기는 소리쳤다.
“이놈, 까치야! 이처럼 성대한 잔치에 다른 새는 모두 초청하고 나를 뻬버리다니. 내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거야?”
까치는 초청도 하지 않는 까치가 찾아오자 가슴이 덜컹 했다. 그러나 짐짓 반가운 척 했다.
“잘 오셨습니다. 잔치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실례를 했습니다. 용서하시고, 움식과 술을 드시지요.”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비둘기를 높은 자리로 모셨다. 까치는 비둘기에게 음식을 권하고 술도 따라 주었다. 잠시 뒤에 술에 취한 비둘기가 까치에게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었다.
“오늘은 새들의 임금이신 봉황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감히 잔치를 베풀고 춤까지 추다니. 말이 되느냐?”
비둘기는 까치를 꾸짖은 뒤에 잔치에 참석한 여러 새들을 돌아보며 또 꾸짖었다.
“분별 없는 까치가 초대를 했기로소니 여기 와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는 너희놈들도 마찬가지야.”
무안해진 새들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잠자코 있던 새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하나, 둘 자리를 떴다.
불청객 비둘기 때문에 집들이 잔치는 망쳤다. 화가 난 까치는 비둘기에게 따졌다.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남의 잔치에 와서 망쳐버리느냐. 내가 차린 음식까지 먹고서, 술까지 마시고서도 남의 잔치를 망쳐버리니 네처럼 염치 없는 놈이 또 어디에 있다 말인가?”
“뭐라고, 지금 시비를 거는거냐.”
벌떡 일어선 비둘기는 쏜살 같이 까치에 달려들어 까치를 냅다 꼬나쳤다. 갑자기 당한 까지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만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아내 까치는 남편 까치에게 달려가서 울부짖었다.
“여보, 눈 좀 떠 보세요.”
그러나 남편 까치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비둘기에게 달려들면서, 목을 놓아 울었다.
“흑흑, 아무리 마음씨가 고약하기로서니 아무 잘못도 없는 착한 까치를 죽인단 말이오. 이 세상에는 법도 없소.”
“너도 남편처럼 목이 댕강 부러지고 싶으냐?”
비둘기는 서럽게 우는 아내 까치를 밀치고 돌아가려 했다.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에 새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이런 고약한 비둘기를 그냥 놔 둘 수는 없네.”
새들은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비둘기을 꽁꽁 묶어서 관아로 데리고 갔다. 군수인 보라매가 사연을 듣고 곧바로 증인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먼저 꾀꼬리에게 묻겠다. 너는 그 잔치에 참석하였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알것다. 그때 있었던 일을 소상히 아뢰거라.”
꾀꼬리가 말했다.
“까치의 집들이 초대를 받아 잔치에 참석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이 노래를 청해 한 곡조 뽑고는 바로 떠나서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꾀꼬리는 바로 아뢰었다가 비둘기가 앙갚음 할 것이 두려워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군수는 이어 두견새를 비롯하여 까마귀, 할미새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모두 모르는 일이라며 발뻼을 했다. 역시 비둘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군수는 증인들을 모두 불러 문초하였으나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고민에 빠졌다. 그런 군수를 보고 따오기가 넌지시 아뢰었다.
“사또, 풍헌을 불러 물어보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따오기의 말을 옳게 여긴 군수는 풍헌으로 있는 솔개를 불러 물어보았다.
“너는 까치의 죽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느냐.”
솔개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생은 풍헌의 직책을 맡은 지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나라에 바칠 세금을 거두어들이느라 밤낮 분주하여 까치의 집들이에 초대받았지만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혹 두꺼비를 불러들여 물어보시면 진실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군수는 즉시 두꺼비를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군수가 두꺼비를 불러들이려 했다는 말을 듣고 까치 아내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전날 밤 아내 비둘기가 여동생에게 두꺼비에게 금과 비단으로 뇌물울 주고, 남편 비둘기가 처벌을 받지 않을 방법을 알아오라고 했다. 뇌물을 받은 두꺼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며 귀띔을 해주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어. 관아에서 사무를 맡아보는 책방 구진과 기생 앵무새를 군수가 총애한다네. 그들에게 뇌물을 주어 구워 삶으면 수습이 될걸세. 그리고 각 관청의 우두머리와 고을의 여러 관리에게 뇌물 주는 것을 잊지 말게나. 그렇게만 하면 아내 까치가 아무리 종종대도 별 수가 없을 거네.”
아내 비둘기는 여동생의 말을 전해주었다. 다음 날 두꺼비는 관아에 불려갔다.
“너는 이 고을에서 나이가 제일 많고 점잖으니 사실만을 말하리라 믿네. 사실대로 고하여 보게”
두꺼비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 늙은 것이 사또 나리에게 감히 거짓을 아뢸 수가 있겠습니까. 소생이 까치네의 잔치에 참여해보니 모든 다른 새들은 초대하였으나 오직 비둘기만은 초대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침 비둘기가 지나가자, 그때서야 까치가 비둘기를 초대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비둘기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임금님이신 봉황님이 돌아가신 날이라 노래하고 춤추는 일은 안되느니라.’ 그러자 술에 취한 까치가 벌떡 일어나서 잔치 분위기를 망친다며 비둘기를 꾸짖었습니다. 남의 잔치에 왔으면 주는 음식이나 고분고분 받아먹고 갈 것이지, 초대하지도 않는 자리에 와서 묻지도 않는 말을 하고 다니느냐며, 비둘기와 까치가 싸웠습니다. 둘이 옥신각신 하던 중에 갑자기 까치가 달려들어 비둘기의 머리채를 잡아챘습니다. 그놈의 술이 원수입니다. 술에 취한 까치가 비둘기의 정강이를 걷어 찬다는 게 잘못하여 그만 높은 가지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놈의 술이 원수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비둘기가 걷어차서 떨어져 죽었다고 비둘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두꺼비의 말을 곧이 들은 사또는 두꺼비를 내보낸 뒤에 책방 구진에게 물었습니다.
“두꺼비의 말이 사실인 듯한데 네 생각은 어떠냐?”
비둘기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은 구진도 거짓말을 서슴없이 했다.
“성미 급한 까치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날뛰다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져 죽었다는 두꺼비의 말이 사실인 듯합니다.”
옆에 있던 기생 앵무새도 거들었다. 군수는 비둘기를 다시 잡아들여서 문초했다.
“증인으로 나온 새들이 모두 너의 무죄를 주장하는데, 사실인가?”
비둘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울면서 말했다.
“소생은 우연히 지나가다가 까치의 집들이 잔치에 참석하여 이 지경을 당하였습니다. 오는 화는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까치 아내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소생에게 죄를 뒤집어 쒸우는 것입니다. 사또 나리의 현명한 판단만 바랄 뿐입니다.”
비둘기의 말을 믿은 군수는 비둘기는 죄가 없다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비둘기는 으스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군수의 판결에 까치는 원통함이 뼈에 사무쳤으나 그저 죽은 남편을 안고 통곡하는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였으나 죽음을 거두고, 여러 새들의 도움을 받아서 남편의 장례를 치루었다. 너무 억울하여 아내 두꺼비는 남편의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밤낮을 빌고, 하늘에 기도했다.
세월은 물같이 흘러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아내 까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난춘이라는 양반이 암행어사가 되어서 안악 고을에 나타났다. 할미새는 3년 전에 비둘기의 보복이 두려워서 군수에게 잘못된 증언을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마침 암행어사를 찾아가 말했다.
“아이고, 어사님, 세상에 이렇게 원통하고 분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3년 전에 까치부부가 새로 집을 짓고 집들이를 하였는데. 불쑥 나타난 비둘기가 자기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발길질을 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그때 재판에서 증인들이 비둘기로부터 뇌물을 받고 거짓 증언을 하여 비둘기의 죄를 묻지 못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다시 조사를 해야겠구나.”
다음 날 아침에 관아로 간 어사는 아내 까치를 비롯하여 두꺼비 등 증인들을 잡아 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문초했다. 먼저 아내 가치에게 물었다.
“네 남편이 남의 손에 맞아 죽은 것이 분명하다면서 어찌하여 죄인이 벌을 받지 않았는가?”
아내 까치는 통곡하면서 다시 자초지종을 아뢰었다. 증인으로 나온 새들과 관아의 관료들이 모두 뇌물을 받아먹고 거짓으로 아뢰어서 비둘기가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까치 아내는 새들이 비둘기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은 사실을 낱낱이 고했다.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한 어사는 두꺼비에게 엄하게 말을 했다.
“네 놈은 금과 비단을 뇌물로 받고 거짓을 고하였으니 너도 죽여 본보기로 삼으리라.”
두꺼비가 머리를 들지 못한 체 아뢰었다.
“소생은 집이 워낙 가난하여 많지도 않은 돈을 받아먹고 국법을 어겼으니 죽어 마땅하옵니다.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어사는 두꺼비를 일단 옥에 가두고 비둘기를 다시 문초하였다.
“너는 들어라. 법전에 이르기를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라 했다. 그런데 너는 재물이 많은 것을 믿고 무고한 목숨을 죽이고도 살기를 바랐으니 가소롭구나. 세상에 너 같은 자들만 있다면 법관이라는 자들이 어찌 법을 집행할 수 있겠는가. 네 죄로 인하여 죽게 된 짓을 원망하지 마라.”
어사는 곧바로 비둘기에 사형에 처했다. 이어 책방 구진과 기생 앵무새를 잡아들여 꿇어앉히고 호령했다.
“너희는 뇌물을 받아 나라의 정치를 흐리게 하였으니 사형에 처하여 마땅하나 처지를 불쌍히 여겨 귀양을 보내리라.”
책방 구진과 기생 앵무새를 귀양보낸 어사는 두꺼비를 끌어오라 명령했다. 끌려온 두꺼비는 곤장 90대를 맞고 무인도로 귀양을 보냈다. 이어 꾀꼬리, 두견새, 까마귀를 불러 각각 곤장 30대를 때린 후에 쫓아냈다.
이때 아내 까치가 동헌에 들어와 어사에게 아뢰었다.
“소녀, 참혹한 일을 당한 뒤 죽은 남편의 뒤를 따르지 못함을 원통히 여기고 있었사옵니다. 하오니 어사님께옵서 원통함을 풀어주시니 그 은혜는 너 넓은 바다와 같습니다. 남편의 무덤 앞에 가서 제문을 지어 바치면서, 울다 혼절했다. 정신을 잃고 있을 때 죽은 남편 까치가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황천에서 부모님 모시고 잘 있소, 나중에 황천에서 다시 만납시다. 내가 이렇게 나타난 것은 당신에게 자식을 낳도록 해주기 위해서라오.”
까치 아내는 퍼뜩 눈을 떴다. 꿈에서나마나 남편을 만나니 행복해서 정신이 멍했다. 그는 알을 두 개 낳았다. 알에서 아들, 딸 까치가 태어나서 잘 자라 주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아들, 딸 까치도 장가, 시집을 가서 손자 손녀를 낳았다. 그 뒤 아내 까치는 아들, 딸, 손자, 손녀와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때는 자는 듯이 죽었다. 구름을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남편 까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