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가수 송창식 님이 75년에 발표한 "고래사냥"이라는 노래이다. 노래 제목과 동명으로 1983년 출판한 최인호 작가의 소설이 있고 그것을 원작으로 84년에 제작한 배창호 감독의 영화도 있다. 영화에도 송창식 님의 "고래사냥" 곡이 주제가로 흐른다.
당시 젊은이들이 즐기던 "고래사냥" 곡에 산 노랫말을 붙인 개사곡이 있었다. 76년 연세대학교 산악부에서 지은 노랫말을 곡에 붙여 "바위 사냥"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노래다.
노랫말엔 인수봉, 선인봉 암벽에서 훈련하고 설악산에 오르며 쌓아가는 산 친구의 우정, 자연을 통한 깨달음 등이 잘 녹아 있다. 멜로디가 귀에 익은 대중가요이고 노랫말이 마음에 와 닿아 산 친구들과 어울릴 때 자주 불렀던 노래이다.
오래전(1980년대 중반) 산 노래 악보를 모으고 작사, 작곡자 등 노래의 근원을 찾을 때 확인했던 사실인데 놀라운 것은 이 노랫말을 만든 이가 당시 산악부 새내기였던 76학번이었다.
산악부는 매년 동아리에 새로 가입하는 신입 부원을 산으로 인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 순서는 어느 학교나 대부분 비슷하다. 봄 학기 개강하며 신입생 가입을 얼추 마무리하는 4월부터 산악부 훈련을 시작한다. 첫 달은 다른 곳보다 기초훈련 환경이 좋은 북한산 인수봉에서 캠핑과 암벽등반훈련을 한다. 어느 정도 기본이 다져지면 마치면 이번엔 도봉산 선인봉으로 장소를 옮겨 변화를 주며, 여름방학이 되면 설악산, 지리산을 대상으로 십여 일 이상 일정의 강도 높은 등반 훈련을 하고 겨울 등반을 대비한다.
노랫말을 가만 살펴보면 이 노래에는 그 프로그램 진행이 모두 나타나며 산악부 수련을 통하여 변화하고 깨닫는 과정까지 의미 있는 단어로 잘 그려져 있다.
"밥을 짓고 코펠(cooking set) 닦고 바위를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엥~긴다~ 해도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인수봉 엥~기던 그때뿐이네! 자 떠나자 인수봉으로~ 엥길 때는 엥기더라도… 인수봉으로~"
산악부에 들어온 첫 달,
1학년 신입 부원으로 모든 것이 서툰 탓에 두렵고 힘들었어도 주말이 오면 그래도 생각나고 다시 오르고 싶은 인수봉으로 간다는… 처음 접하는 캠핑과 인수봉을 오르며 경험하는 암벽등반을 당시 산악부 1학년은 이렇게 그렸다.
("엥긴다."라는 말은 "엉긴다."의 비속어로 "일을 척척 하지 못하고 굼뜨며 허둥거린다."는 뜻으로 쓰이던 그때의 표현이다)
얼마쯤 지나며 이번엔 도봉산 선인봉에서 등반훈련을 했던 모양이다. 2절은 선인봉 클라이밍을 주제로 예쁜 산 이야기를 썼다.
"도미 자일(seil), 굴비 자일, 정을 엮어서 바위마다 틈새마다 우정을 심어 선인봉 A, B, C에 아무리 엥겨도 보이는 건 모두가 바위뿐이네! 자 떠나자 선인봉으로~ 엥길 때는 엥기더라도… 선인봉으로~"
노랫말은 선인봉 대표적 코스인 A, B, C 루트를 대상으로 암벽등반 시스템인 빌레이 체인을 새끼줄에(seil) 꿴 생선 두름으로 재치있게 비유한다. 더욱이 선인봉 침니 루트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보이는 건 바위뿐이더라는 표현, 경험 없고 능력 모자란 새내기 때 어렵고 힘든 암벽등반을 하면서 바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에 버너를(stove) 켜고 동해 바다 푸른 물을 코펠에 담아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지으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게 전혀 없어라~ 자 떠나자 설악산으로~ 엥길 때는 엥기더라도… 설악산으로~"
3절은 여름에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서 만든 노랫말이다. 설악 정점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자연을 깨닫고 산 친구와 그곳에서 어울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뜻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산으로 바라본 자연과 짧은 등반 경험으로 깨우친 자아를 아름다운 노랫말에 담았다.
산악부에서 처음 어울린 신입 부원끼리 반년의 시간을 들여 그들의 산 이야기를 화음으로 그린 것이다. 비록 개사곡이었지만 어느 창작 산 노래보다 산악부 입문과정을 진솔하게 그린 山 詩였다.
70년대 말, 80년대 대학산악부의 캠핑과 등반훈련 때면 늘 합창하며 느낌을 함께하는 산 노래였지만 산에서 노래 문화가 쇠퇴하며 이젠 발원지인 연세대학 산악부도 잊은 노래가 되었다.
가는 세월, 산으로 자연을 알고, 등반 수련으로 자아를 찾는,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는 등산문화는 잊히고 게임과 놀이로 변모하는 등산 세태가 어쭙잖아 보여 산 노래 한 곡 빌미로 떠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