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선거일이 대략 7개월 남았다, 여.야는 총선의 시기에 들어섰다.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와중에 맞게 되는 선거라서 좀 더 맘 무겁게 다가서고 있다. 아마도 위더코로나 시대로 함께 살아아할것같다, 세계경제가 절룩거리고 세계정세는 삐거덕 거리는 때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미군철수후 아프카니스탄 수도 카불에 진입해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아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우리의 2022년은 경제적으로 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어려운 때에 맞는 총선이다. 그러니 이 선거에서 뽑을 국민은 어느 때보다 품질 좋고 유능하며 해결 능력 있는 리더들을 발탁해서 꼭 해야 할 일자리에 딱 맞는 리더급 인재를 엄선, 공급할 수 있는 선거이기를 희구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을 말 할라치면 아직도 미덥지가 않다. “우리 기업이 2류라면 행정은 3류고 정치는 4류다.” - 1995년 4월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의 평론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6년, 오늘, 기업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는데 정치는 얼마나 변했는지는 궁금하다. 여전히 4류 일까? 아니면 더 후퇴했을까? 더 나아지진 못한 것 같아 언짢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는데, 지금은 영웅들이 일하기 좋은 계제인 듯싶다. 내년이 우리에게 심히 어려운 난세로 예상되기 때문에 영웅이 기다려진다. 어디 그런 사람 없나요?
“인생에 있어서 성공을 A라 한다면, 그 법칙을 A=x+y+z로 나타낼 수 있다. x는 일, y는 놀이. 그러면 z는 무엇인가? 그것은 침묵(입을 닫아 두는 것)이다.” - 우리가 쉽게 자주 인용 하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중 하나이다. 그가 왜 “입 닫기”(keeping your mouth shut)라는 말을 썼을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침묵이나, 말 아끼기 같은 좋은 말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새해 들어 부쩍 막말, 험담, 중상, 모략 같아 뵈는 말들을 자꾸 듣다 보니 그 분의 뜻 깊은 내공을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바야흐로 입술들이 춤추는 시대에 들어섰다. 입술들만 바빠 보인다. 군무를 추듯 말(語)춤을 추어 댄다. 말, 말, 말들이 지도자 연습 하는 사람들의 입술에서 날렵하고 맵시 있게 뛰어노는 걸 본다. 선거철이 임박한 낌새를 알아차리겠다. 캘린더를 보아 아는 게 아니라 말의 섬뜩함과 말씨의 날카로움에서 느낀다. 평이하게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말들을 생각에 담아 전할 수도 있을 텐데, 부쩍 원색적이고 중상적인 말들이 입술에 오르내리는 걸 보니 그렇게 상대를 말로 사살(?)해야 할 시기가 된 모양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선거가 가장 격한 경쟁일 진대는 이기기 위해서는 가능한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겠다는 심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방법과 내용은 옳고 바른 것이라야 할 텐데 듣기에도 터무니없고 믿기에도 어처구니없는 게 많아 겁이 난다.
선거란 어느 것이든 그 모임의 리더를 뽑는 경사이다. 그러기에 나서는 국민은 당연히 자질 있는 “깜”이어야 한다. 그 “깜”됨은 우선 그의 입술에서 나타난다. 혹세무민하는 요사한 입술인가, 경세제민하는 어질고 착한(진정한) 입술인가를 찬찬히 가려내는 것이 투표자의 기본이어야 하겠다.
자체 발광하며 인물 띄우기에 열이 올랐다. 리더를 리더로 소개하는 데는 어떤 무리도 없을 것이다. 허나, 졸개를 리더로 뻥튀기 하려는 수고는 시도부터가 무리이리라. 소개서나 몇 사람의 수고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선거 운동원의 노력봉사로 될 일은 더욱 아니다.
후보는 실적이 충분한 사람이어야 하고 이미 검증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선택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결정에 대한 결과를 읽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의 영이 서고, 펠로우워십(FelloWorship)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민은 어떤 의사 결정을 하면서 자기 가치관이나 사심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입법기관이기 때문이다. 한 사건이나 현상이 반영하는 맥락을 읽어 내어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새로운 사태가 발하는 ‘조짐’ 혹은 ‘신호’를 읽고 판단을 세울 수 있어야 하며 그 판단의 결과도 읽어 낼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런 결정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리더는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현상과 상태는 조짐을 보인다. 조짐은 연관성을 엮어 내고 그 연관성은 결과를 초래한다. 리더는 그런 조짐을 읽어 내고 그 조짐들 속에서 트렌드를 밝혀내야 한다. 그런 트렌드를 읽어 내는 촉각기가 질문이다.
많은 질문보다는 의미 있는 질문이어야 한다. 좋고 바른 질문에서 옳은 최선의 답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 기초적 질문만이 아니라, 적어도 공동체의 공존공영에 최선의 해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고민과 질문을 할 수 있는 리더를 바라는 것이다. 바보는 바보 같은 우문을 말하고 현자는 현명한 질문을 제시한다. 바보는 답을 찾지 못해도 고민하지 않고, 현자는 바른 답을 얻지 못하면 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갈등을 한다. 질문을 들어보면 문제를 알고 답을 찾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건지, 초점에서 벗어나 엉뚱한 길을 헤매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만나게 될 일감들은 대부분이 딜레마 상황이다. 둘 이상의 의견들 중 다른 의견들의 희생이 없이는 어느 한 의견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반드시 희생을 무릅쓰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무릅쓴 대가도 치러야 한다. 딜레마 상태라 해서 의사 결정을 장기간 유보하는 것도 리더는 해서는 안 될 비겁한 짓이다. 그 선택은 반드시 옳고 바라야 한다.
‘좋다’ ‘나쁘다’는 자신에게만 의미 있는 신념을 토대로 한 판단일 뿐이다. 신념에 맞으면 ‘좋다’ 하고, 맞지 않으면 ‘나쁘다’ 한다. 정치적 판단의 전형이다. 이런 판단이 많으면 이념과 신념들 사이 충돌만 심화할 뿐 화해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 제3지대로의 창조는 불가능하다.
항상 생각을 심사숙고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