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칼럼] 대한민국의 ‘어처구니’는 국민이다 |
김 홍 논설위원장 |
기사입력 2016-11-27 오후 5:28:00 | 최종수정 2016-11-27 17:28 |
우리말 ’어처구니‘는 원래 ’맷돌의 손잡이‘를 일컫는 말이다. 맷돌의 손잡이 ’어처구니‘가 없으면 맷돌이 돌아가지 않는다. 11월26일 그야말로 범국민적으로 벌어진 5차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이라는 맷돌을 돌아가게 하는 손잡이가 ’국민‘이라는 걸 실감나게 했다. 전국 곳곳에서 총 190만(주최측 추산)의 인파가 ’박근혜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인간띠잇기‘ 행진을 벌였으니, 이는 헌정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청와대 200m 근처까지 행진한 시위는 법원이 허용했고 경찰이 탄력적으로 대응함으로서 분노를 절제하며 이성을 놓지 않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평화로운 시위였던 것이다.
맷돌은 곡식을 가는 데 쓰이는 도구다. 둥글넓적한 돌 두 개가 위아래로 포개져 윗돌의 가장자리에 손잡이 막대를 박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으로 갈아야 할 곡식을 넣어 손잡이를 돌리면 두 돌판 사이로 곡식이 갈아져 나오게 되어있다. 맷돌은 손잡이 ‘어처구니’가 없으면 절대로 돌릴 수 없다.
’어처구니가 없다‘란 말은 뜻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힘을 이르는 말로도 표현되고 있지만, 국민들의 ’박근혜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는 맷돌의 ’어처구니‘를 상상케 한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로 최저치가 또 경신됐다. “지지율 0%가 될 때까지 촛불집회에 나서겠다”고 한 어느 주부의 각오는 무엇을 의미한 걸까. 날이 새면 또 다른 괴상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외신들은 대한민국의 돌아가는 꼴을 보고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하다. 왜 이렇게 됐는가.
하룻밤 자고나니 또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증거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이 관심사다. 검사들은 이 녹음파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지시 관련 내용을 듣고 혀를 찰 정도로 어이없어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검찰은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공무상 비밀누설 공모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것은 "10초만 파일을 듣고 있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저 정도로 무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것이다.
청와대 앞 200m 접근하여 외친 국민들의 절규를 듣고 박근혜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국민들의 함성을 무겁게만 듣고 ‘잘못한 일에 대한 기억을 못하지 않았을까’… 오직 기성 질서의 근본적 변화에 따르는 거대한 권력구조변동의 흐름에서 오는 시대적 결과물로 착각하지는 않고 계신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대한민국 지배계층의 민낯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애매한 내용의 창조경제를 제외 하고는 거의 기득권자의 공통이익인 부동산을 부양하는 것이었다. 최순실 일가의 재산도 대부분 강남과 제주, 평창에 있는 부동산이다.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밝힌 2015년부터 청와대에서 구입한 약품 리스트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여기에서 특히 비아그라는 또 뭔가. 아프리카 순방을 위한 고산병 치료제로 사용했다는 비아그라! 김상희 의원은 “식약청측은 비아그라를 정력증강 외에 고산병 등 다른 용도에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개헌론이 가라앉고, 함께 잦아드는 듯 했던 ‘제3지대론’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태로 촉발된 새누리당의 분당 가능성이 제3지대론을 급부상시키는 모양새다. 12월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통과가 현실화되면 대선 시계가 빨라지면서 정계개편론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라고 생각한다. 주권자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 5년 단임 떴다방 정권의 대통령 무책임제 등을 개혁하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처구니’인 국민들은 어느 당, 어떤 정치인이 대권을 잡고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처럼 성적기준이 미달해도 ‘교과 우수상’을 받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사회, 직위상 특권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취해 호의호식 하는 사회를 대한민국 ‘어처구니’인 국민들은 절대로 원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