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➂
명지대 명예 정치학박사, 리비아의 무암마르 알 카다피
심 의 섭(명지대 명예교수)
나는 중동문제연구소가 확대개편된 국제경제연구원 중동부에서 일할 때에 당연히 중동관련 연구를 많이 하였고, 명지대학으로 옮긴 후에 본격적으로 중동 지역연구를 시작하여 한국의 중동 진출과 해외건설에 대한 연구에 골몰하였고, 지금까지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중동경제, 중동진출, 해외건설, 중동건설시장, 리비아 건설시장, 동아건설의 대수로공사 등 건설산업 연구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의 수 많은 연구결과는 저서, 논문, 논고, 칼럼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나는 동아건설의 대수로 건설현장 답사를 비롯하여 리비아를 세차례나 방문할 수 있었다. 맨 처음 방문은 동아건설 대수로공사(GMR, Great Man-made River Project) 사리르 공사현장 방문이었다(1995.7). 두번째는 제4차 그린북 세미나에 초청되었고(1999.12), 세번째는 그린북 관련 세계회의 창립대회 참석이었다(2009.10). 네 번째는 카다피 지도자가 명지대에서 명예박사를 받은 후에 리비아 방문을 계획하였으나 카다피의 몰락으로 무산되었다. 내가 리비아와 카다피 연구에 빠지게된 것은 미국 코네티커트 대학(Connecticut Uinv.) 박사과정에서 나의 지도교수 레이먼 크나하세(Ramon Knauerhase) 박사의 수업에서 중동서적과 카다피 관련 저서를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1주일에 한번씩은 읽은 책에 대해 반드시 리포트를 제출하고 토론하여야 했다. 아마 내가 읽었던 중동과 카다피 관련 책들은 적어도 수십 권에 이를 것이다.
명지대에서의 카다피 명예박사 수여건은 초기부터 나의 발상과 추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1969년 카다피가 일으킨 쿠데타에 학생 신분으로 가담했던 '에쉬테위 알자드'를(경인일보, 2011.10.25)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2학년으로 편입시키고 지도하여 졸업시키었다. 그러한 특별한 인연으로 나와 그는 카다피 지도자의 명예박사 프로젝트를 발안하고 협의하여 추진하였다. 당시 명지대 송자 총장은 2000년 3월 29일에 한국경제일보사에서 열린 ´세계 경제의 위기와 신경제질서의 방향’이라는 세미나에서 ‘카다피의 그린북 사상이 세계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경제체제 마련에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리비아 지도자 무암마르 알 카다피에게 명지대에서 인문사상부문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사실 이 포로젝트는 당시 한국의 관계 기관 뿐만 아니라 카다피의 북한방문(1982.10.29.~11.2)과 카다피와 김일성의 밀착 때문에 미국의 눈치도 알아서 챙겨야하는 것이 시대적인 환경이었다. 사실 카다피는 북경, 평양, 서울을 연방하는 계획으로 명예박사 수여식에 참석하기로 했지만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으로 생각으로만 머무렀다. 따라서 명예박사 수여식 참석을 위한 카다피의 한국 방문은 실현되지 않았고 명지대 총장이 리비아에 가서 전달해주는 형식을 갖추었다.
따라서 명예박사 수여 결정은 송자 총장이 하였고(재임 1997.6.30~2000.8.7), 학위증 전달은 후임인 선우중호 총장이(재임 2000.12.4~2004.12.3) 리비아를 방문하여 수여하였다(2002.4.28). 당시 리비아를 방문하여 수여한 것도 국정원에서 극구 말리는 것을 선우중호 총장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일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학교에서는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나를 직접 참여시키지 않았다. 나의 막후노력에 대한 명지대의 배려는 명지대학교와 세계그린북센터가 공동 주최한 학술회에서(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 서울, 2000.3.29.) 나에게 논문을 발표하도록 한 것이 고작이다. 이처럼 내가 리비아와의 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하였던 것은 내가 한국중동학회 회장시절, 아시아중동학회총연합회(AFMA: Asian Federation of Middle East Studies Associations)의 창립을 주도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학술행사에서 리비아 대사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것이 인연 되었다. 더구나 나는 해외건설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 해외건설업계와 리비아의 관계, 특히 서방의 가혹한 경제제재 속에서도 세계의 건설사에 길이남을 GMR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리비아의 카다피 지도자와 한국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역할을 학술적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 고 하는 GMR 공사를 비롯하여 한국에 대규모 공사를 지속적으로 발주하여 한국건설사업의 위상이 세계 정상급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의 리비아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준 한국의 G선생과 리비아 친구인 쉬테이위 엘자디(Shteiwi M. El-Jadi)에게 감사한 마을은 늘 간직하고 있다. [2024.3.15]
< 참고 >
카다피는 '명지대 명예 정치학박사', 경인일보, 2011.10.25.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613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