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칼럼] 패자 같지 않은 패자 |
김 홍 논설위원장 |
기사입력 2017-02-09 오후 5:13:00 | 최종수정 2017-02-09 17:13 |
“우리의 캠페인은 한 후보나 한 선거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에 대한 것이었고, 희망이었고 포용적이고 큰마음을 지닌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생각보다 더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을 신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이 결과를 받아드리고 미래를 생각해 주십시오.”
작년(2016)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선거가 초반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우세 속에 진행되어오다가 막판에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역전당해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패배하던 날, 힐러리 후보는 위와 같은 승복연설을 통하여 그녀의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철학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 유세 하는 동안 줄곧 우위를 차지해 낙선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그녀는 그의 교양과 인격과 신념이 담긴 말을 압축해 여성의 한계를 가슴 아프게 통감하면서 청소년들에게도 자기가 못 다한 꿈을 이루도록 당부하는 어른이 분명했다.
‘민주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지구촌 모든 나라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승리자이건 패배자이건 간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었다. 그 중 특히 패배자들이 커튼 뒤로 사라지면서 남기고 간 말을 살펴보면, 격이 다르다. 우선 선진화 된 민주주의 면모를 꼽을 수 있다. 1860년 아브라함 링컨 후보에게 패배한 더글러스는 “당파심이 애국심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링컨 대통령, 나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라고 감동적인 한 마디를 남겼고, 1952년 아이젠하워에게 패배한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울기에는 너무 늙었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아프다”고 말하며 결과에 승복했다.
2000년 조지.W.부시 후보에게 패배한 앨 고어 후보는 총 투표수에서 54만여 표를 더 얻고도 이번 힐러리처럼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했다. 플로리다 주의 수작업 재검표로 미국 대선 초유의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연방대법원에서 부시 후보의 승리로 인정되었다.
앨 고어는 곧 바로 패배연설을 했다. “우리와 뜻을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차기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할 것을 촉구합니다. 도전할 때는 맹렬히 싸웠지만 결과가 나오면 단결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그 후 앨 고어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2007년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4년 공화당 조지.W.부시와 대통령 선거에서 대결해 패배한 존 케리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조지.W.부시에게 286 대 251표로 패배해 대통령에 낙선했다. 그는 패배 연설을 통해 “미국 선거에서 패자는 없습니다. 당선과 낙선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는 다음 날 아침이면 미국인으로 눈을 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럽고 괄목할만한 재산입니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그의 역량을 발휘했다. 승자의 뒤에는 패자의 슬픔과 고통이 있기 마련이지만 당당한 패자의 거인 같은 모습에 큰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패자들의 모습에서 존경심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물론 처음엔 대선에 패배한 후보가 승복한 척 한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어디 두고 보자’라는 식이고, 발목 잡기가 다반사이다. 또 당선된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공염불이 되고 기회만 있으면 국민들의 혈세 빼돌리기에 분주할 뿐, 민생 해결책은 행방불명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당리당략에 목숨을 걸고 임기가 만료되면 거의 친인척 비리나 부정행위 등으로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최근 세계인들의 관심사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사유는 정말 국제적인 망신이다. 진짜 창피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선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명령, 고율의 관세 부과 예고 등을 통해 물자 유출입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고 불법체류자 추방을 시도하여 사람이 해외에서 유입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지난 1월27일(현지시간)에는 국방부에서 무슬림 7개국(시리아, 이라크, 이란, 리비아, 수단, 소말리아, 예맨)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과 미국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단속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도 심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지난 1월30일 오전9시(한국시간)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니 한미동맹관계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 정권에서 한미 간 이슈는 한미 FTA 재검토, 환율조작국 지정, 국방비 분담, 사드 배치, 북한 핵 문제, 미중 관계에 따른 한미동맹 강도 재설정 등이다. 여기에 최근 북한핵 선제 타격론이 불거져 경우에 따라선 한반도 불바다가 변수로 등장되고 한국을 경제문제로 괴롭히기보다는 중국을 포위하는 태평양 방어선의 동맹으로의 가치로 써먹을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DNA는 장사꾼이다. 미국 역사에서 앤드루 잭슨(1832년), 워런 하딩(1920년) 두 명의 대통령이 장사꾼 출신이지만 트럼프와 격이 달랐다. 트럼프는 비즈니스 안목에서 미국이 손해를 보는 부분을 뜯어 고쳐 경제·군사 양면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해 중국 같은 나라가 감히 넘볼 수 없게 하겠다는 결의가 대단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작년 11월 8일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후보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신임 대통령에 반발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여성 행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반 이민 행정명령‘과 관련해서도 비난하기 시작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는 4월 20일에는 성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센터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이어 5월 26일에는 모교인 웰즐리 칼리지의 졸업식에서 연설할 계획이며 올해 가을 출간을 목표로 에세이를 쓸 것이라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에세이 집필과 잇따른 강연에 나서는 것은 대선 패배를 딛고 활동을 재개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패자 같지 않은 패자’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