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예수를 보내 새로운 구원의 길을 내셨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음녀가 되고 바벨론이 되므로
자신이 예수의 영을 받아 새로운 장막을 세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구원을 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세대주의는 계시의 영이 없는 탓입니다.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바라보고 믿었고(요8:56)
모세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었고(히11:26) 다윗도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로 믿었으며(마22:41-46)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고난 받으신 주님과 고난 후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신지
또 어떠한 때에 임하실지를 지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했습니다(벧전1:10-11)
따라서 유대교가 큰 집이나 되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성지로 여기는 사람들이나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온 아류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거 큰일 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입어 죄 사함을 받고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바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나아가야 하며
자신이 성경말씀 속에서 발견이 되고 특히 계시록 7장, 14장, 21-22장에서 발견이
되며 바로 창1장의 하나님의 계획안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니라면 돌을 맞아 죽는 현장에서 보좌우편에 서 계신 주님을 본 스데반이나
우리의 사도이시며 대 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히4:16)는 히브리서의 기자와는 다른 눈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Q. 다윗은 무지한 자들을 향해 무슨 기도를 했나요?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롬11:9)
A. 밥상이 돈 바꾸는 상이며 계산대가 되었습니다.
올무는 함정이며 덫과 거치는 것이며 그 일에 보응이 됩니다.
결국 시장적 사고의 이 시대는 돈이 올무와 덫이 되고 거치게 되어 보응을 받습니다.
곧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딤전6:10) 지금 교회를 사유화 한 사람들의 모습이죠.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돈이 아니라 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돈은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한 됩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그건 기독교는커녕 종교의 가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밥상이 말씀의 교제(헤브론)의 상이냐 돈 계산대냐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에는 강대상과 그 앞에 헤브론 성찬상이 놓여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떡 상 곧 밥상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다윗이 노래한 그 뜻입니다(시23:5)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상 앞에서 돈 놓고 30배 60배 100배로
돈을 바꾸는 곳이 되어서야 될까요? 이건 정말 통탄할 노릇입니다.
제발 여러분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돈 놓고 돈 먹는 계산을
하고 거래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주려죽을지언정...(고전9:15)
Q. 무지한 자들을 향한 다윗의 기도내용이 무엇인가요?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롬11:10)
A. 이건 기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깝습니다.
눈이 어두워집니다. 등이 땅으로 굽습니다.
어떤 사람이 평상 땅만 보고 땅에서 주운 것을 나열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땅에 것만 바라보면 사람이 뇌의 노화가 빨리 와서
늙어져 기어 다녀야 할 형편이 될 겁니다. 인간은 유일한 직립동물이라
하늘을 바라보고 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하늘의 시민권은 고사하고
땅엣 것만 주야장천 추구한다고 탄식합니다. 그들의 종점은 파멸이고 그들의
배가 하나님이고 그들의 추구하는 영광은 쓰레기와 같고 땅의 일만 생각합니다(빌3:19)
그래서 루터는 사람들의 부엌이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먹방에 나오는 사람이
대통령만큼이나 인기가 있습니다. 순 땅꾼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증거입니다.
유대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돈을 좋아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도 제물장사로 배불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일갈하시므로
이는 옛 뱀과 같이 저주를 받아 흙만 먹으라는 겁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돈을 잘 번다고
침을 튀기는 목사한테 이 말을 해 줘야 할 겁니다.
눈이 어둡고 등이 굽은 것은 한국교회에 은퇴한 늙은이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과거 어떤 목사님은 100세가 다 되었음에도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러시아 선교 길에 나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늙어가면서 교단이나
노회에 어리광 부리지 말고 좀 젊게 살도록 하세요.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느니 있으니 하면서 나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꼰대 노릇하면 비참해 집니다.
영원한 청춘 곧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싱싱하게 살다가 가십시다.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건강을 해치고는 그 번 돈으로 병 고치려다가
그 돈 다 쓰고 회복하지도 못하고 그만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다 후회해 봐도 그 때는 이미 때가 늦어 아무 소용없는 때가 오고 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재밌는 말로 천국에 가니 껄 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
지금 경제 발전 때문에 환경을 망쳐 놓고는 다시 환경을 고치려고 하니
그 동안에 번 돈을 다 집어넣어도 안 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Q, 이스라엘이 넘어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들이
넘어지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롬11:11)
A. 이스라엘의 유기의 목적에 대한 바울의 진술입니다.
지금 온 세상을 향해 바울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과 바울의 진술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이 힘이 없고 맥을 못 추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들의 넘어짐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나간 다음 그들로 하여금 밖에서 유대인을 향해 역공을 합니다.
이게 바로 유대인으로 하여금 경쟁심이나 질투심을 일으키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바울은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11:12)
유대인의 넘어짐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상의 부요함이 되었고,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에게 복음이 넘어와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함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 어떠하겠는가? 하고 반문을 합니다.
충만은 말씀의 흘러넘침을 말합니다(프레로마) 말씀의 알곡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아직까지 유대인들은 그들이 율법을 준수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가 그들에게 임하면 말씀을 듣는다는 쪽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그들의 구원은 아주 간단하게 끝이 납니다. 그들의 성전이 세워지고
대제사장이 율법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예수 그리스도가 마침이 되시고
이 성전은 그림자로 실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라고 선언만
하면 유대인의 구원은 삽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이방인 구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세상의 중심이 중국을 지나 인도로 향하고 사우디를 위시해서 중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한 번 보세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출발한 세상의 중심이
지금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출발점에 다시 돌아오면 거기가 땅끝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께 감사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