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도화지 - 농경문 청동기
국립중앙박물관 '청동기실'에 전시된 유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자면 바로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농사를 짓고 밭을 가는 사람 무늬가 새겨진 청동기'인 이 유물은, 어디서 출토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채 196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전 고물상으로부터 당시 가격 28,000 원에 구입한 것입니다.
집 같기도 하고 방패 같기도 한 이 유물은 그 생김새만이 좀 특이했을 뿐, 크기도 작고 아래쪽 일부도 파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한병삼 씨에 의해 이 청동기에 어렴풋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고는, 한 달 여 동안 표면의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한 끝에 드디어 그 무늬가 완연히 드러나게 되었죠. 청동기에 그림을 새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이한데, 그 그림의 대상이 농사와 관련한 것들이었으니 당시 학계는 곧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됩니다.
1. 농사와 관련한 것들 - 밭 가는 사람, 밭, 토기
농경문 청동기의 뒷면 우측을 보시면, 밭을 갈고 있는 사람 두 명이 보입니다. 위쪽에 있는 사람은 따비로 밭을 갈고 있고, 아래쪽에 있는 사람은 괭이질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이 사람들의 왼쪽에는 가로선들이 그어져 있는 네모난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밭을 표현한 것입니다. 파손된 부분 바로 위에는 격자무늬가 새겨진 토기와, 이 토기에 무언가를 담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네요. 마치 평화로운 농촌의 일상을 이 청동기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2천여 년 전의 사람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도 느껴지고 말이죠.
2. 새
농경문 청동기의 앞면에는 새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은 지금도 농촌 마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솟대를 연상케 하네요. 선사시대 사람들은 새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중 농사와 관련해서는, 새가 하늘의 곡식을 물어다가 땅의 인간들에게 전달해 준다고 믿었죠. 즉 선사시대 사람들은 새를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은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때 사용하는 의례용 물건에 새를 새겨놓는다거나, 혹은 곡식을 담는 토기를 새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죠.
3.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농경문 청동기를 보노라면, 이게 도대체 무엇에 쓰던 물건이었는지 종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냥 단순한 장신구 같아 보이기도 하고, 고리가 달려 있는 걸로 봐서 문고리 같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농경문 청동기는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때 사용한 의례용 물건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농경문 청동기의 윗부분에는 네모난 구멍 6개가 뚫려 있는데, 바로 저 구멍들로 실을 통과시킨 뒤 이를 제사장의 허리춤 같은 곳에 매달았다는 얘기죠. 농사짓는 모습이 새겨진 농경문 청동기를 매단 채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 기자 한대일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원문보기 글쓴이: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