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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중국』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작년인 2022년에 이 책의 저자들이 바라본 중국이 올해라고 이미 다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시진평이 아직 최고지도자이고, 인민들은 먹고살기에 급급하고, 청년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 이런 것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40년 가까이 중국의 농업, 경제, 교육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중국농촌교육행동프로그램(REAP)’을 이끌고 있는 스텐포드대학교 ‘스콧 로젤’교수와 작가이며 연구원으로 REAP에서 7년간 중국 교육과 보건 문제를 연구해온 ‘내털리 헬’이 공동으로 집필하고 한겨레신문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박민희’선생이 번역한 책이다.
서문에 앞서 이 책을 추천한 법무법인 율촌의 전문위원 최준영 선생은 “언제부턴가 중국은 우리에게 동반자 아닌 무섭고 두려운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출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 경제력에 기반을 둔 거대한 군사력을 갖추면서 주변 국가에 거침없는 언사와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후반 미국을 따라잡고 마침내 2040년이면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라고 하고는 “화려한 해안 대도시가 아닌 중국내륙의 넓고 깊은 지역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교육과 의료시스템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중국 정부가 앞으로 잘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세계의 미래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주 집필자인 스콧 로젤 교수도 서문에서 “중국의 부상은 20세기 가장 극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의 서구 관찰자들은 중국의 부상이 서양의 지배에 필연적인 위협이 된다고 본다.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중국이 그 엄청난 성장의 포물선을 완성하려면 거쳐야 할 아주 중요한 단계들과 높은 장애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온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 중국이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느냐는 모두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와 정치 시스템의 건전성이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1983년부터 중국을 보아왔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세심하게 연구를 진행한 끝에 중국이 그들 앞에 놓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중국몽(중국의 꿈)을 좌초시킬 위험이 있는 문제들을 발견했다.”고 진단하면서 “중국이 행동을 취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이 책이 그들의 문제들을 명확히 드러내기를 희망한다.”고 조언도 했다. 이런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우리에게는 물론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재 중국 상황은 매달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핵심 산업분야에서 해고 되고 있다. 건설 경기는 급속도로 하락하고 삼성은 수십만 개 일자리를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다. 나이키는 이제 대부분의 테니스화를 중국밖에서 만든다. 이렇게 섬유산업, 장난감 공장, 공구,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10년 전에 미국 윌마트에서 팔리던 것의 거의 모든 상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나, 오늘날은 더이상 그렇지 않다. 게다가 새로운 로봇산업과 자동화 기술은 공장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더욱 줄이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한 좋은 예비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많은 국가와 지역은 저숙련 노동에 의존하며 출발했다. 예를 들어 한국, 대만, 아일랜드는 강한 제조업 분야를 발전시켰고 가난한 나라에서 시민들에게 높은 생활 수준과 강력한 제도를 제공하는 안정적인 경제로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도 이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러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까 봐 두렵다. 최근 몇십 년간 탈집산화, 도로와 대중교통 건설, 노동집약적 산업투자, 외국 투자 개방 등 중국 정부의 현명한 결정들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가장 중요한 자산, 즉 인민에 대한 투자에 실패했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지만 교육수준은 세계적으로 매우 낮다.”저자들은 이렇게 진단하고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 아이들 70% 이상이 농촌 후어커(戶口)로 등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 미래 노동력 대다수가 교육 성과가 훨씬 뒤처진 농촌지역에서 자라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미래 중국의 노동력이 국가 경제에 공헌할 수 있느냐는 것은 농촌지역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 아이들이 제대로 관심받지 못한다면 중국의 인적자원이 불균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농촌 교육의 실패는 빙산의 일각이다. 도시-농촌의 격차는 어린 시절부터 명백하고 교육문제와 더불어 보건 위기도 너무나 심각하다.
만약에 중국이 경제적 쇠퇴에 빠진다면 그 위기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대가로 나타날 것이다.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투자가 줄어들면 이미 낮아지고 있는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소득 분배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이며 하늘을 찌를 기세인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다. 임금이 오르고 저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면 심각한 양극화를 겪을 가능성과 최악의 경우 2억∼3억 명 또는 그 이상 실업자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함정】
멕시코는 1970년대 말과 1980년 초에 저임금과 미국, 캐나다와의 무역협정을 통해 제조업 상품들을 조립하는 전초기지였다. 세계적 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노동자들이 몰려와 공장을 채웠다. 하늘을 찌를 듯한 성장이 계속되자 ‘한강의 기적’과 같은 의미의 ‘경제기적’이란 말이 생겼다. 멕시코는 OECD 가입을 승인받았고, 부자반열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꿈은 사라졌고 성장세는 멈춰버렸다. 꿈은 경제침체와 사회 혼란으로 변해 버렸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두 나라는 아직 중진국에 남아 있다. 이런 경기침체는 사회적·정치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경제위기는 비공식 영역으로 나아가게 하고 범죄로 이끌기도 하며 혼란을 야기한다. 이것을 흔히 ‘중진국 함정’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중국도 마주하고 있는 위험이다. 중국 역시 저소득 국가에서 중진국으로 성공적으로 성장했다. 가난에서 탈출했고 안정되고 번영할 잠재력이 있는 길로 나아가게 했다. 하지만 여정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 중국은 중진국이 되었지만, 이제 게임의 방식은 바뀌었다. 제2의 멕시코와 브라질이 되는 결말을 피하려면 빨리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많은 중진국들이 중진국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필요한 인적자본을 축적하지 않는다. 그 단계에 계속 머무른다면 교육 수준이 낮아도 별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인적자본이 부족해지면 타격과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한국과 대만, 아일랜드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처럼 인적자본을 최우선으로 삼아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 함정을 피할 수 있다. 균형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직면한 도전이다. 중국은 1980년대 한국이나 대만보다 멕시코와 터키에 더 가깝다. 그 어떤 국가도 고등학교 취학률 50% 이하로는 고소득 국가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 중국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30%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 시진평은 ‘전국대표회의’(당대회)에서 ‘중국이 현대적 경제발전의 신시대’에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중진국 함정’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 최고지도자에 따르면 중진국 함정은 더 이상 압박한 것이 아니다. 위협은 끝났고 더는 두려울 것이 없다. 신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저 희망적 사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시니리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대 중진국이던 101개 국가 중 2008년까지 고소득 국가가 된 나라는 한국, 아일랜드, 대만 등 13개국밖에 없다. 2015년 기준 중국 노동인구 30% 정도가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 아일랜드, 대만, 이스라엘 등이 고소득 국가로 전환되기 이전 72%보다 한참 낮은 비율이다. 그 어느 나라도 고등학교 취학률 50% 미만에서는 중진국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단순히 노동인구가 교육받지 못한 것만 문제가 아니다. 도시와 농촌 진학률 차이도 문제다. 중국은 2010년 기준 도시 노동력의 44%가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반면, 농촌지역은 11%에 불과했다. 교육의 질에도 차이가 컸다. 농촌 학생들은 교육의 질이 낮은 직업학교에 다님으로써, 실제 같은 학년을 비교한 성취율 평가에서 농촌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도시 학생들보다 2개 학년 이상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3세 미만 어린이 75%가 농촌에서 성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의 미래 노동력과 경제에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시-농촌의 격차는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서 태어난 신생아 절반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고 남부의 많은 공동체 학교 학생 40%가 장 속에서는 회충이 발견되기도 했다. 농촌 학생 30% 이상에서는 시력에 문제가 있었지만 안경은 쓰지 않았다. 빈곤 문제에 더해 인지 능력 부족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나라던 인간의 심리는 묘해서 기대했던 무언가를 잃게 되면 단순하게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상처를 받고 실망과 무력감에 직면하고 또 분노한다. 이웃에게 공격적으로 변하고, 모두를 위한 파이를 키우는데 투자하기보다 아주 작은 부스러기라도 얻으려고 싸운다. 이것은 어쩌면 중진국 함정 배경이 되는 가장 강력한 단일 요소일지 모른다. 희망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제대로 역할을 갖지 못하는 무리가 거대해지면 말 그대로 위험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실망과 불안 속에서도 인내하며 준법시민으로 살아가려고 하겠지만, 일부는 자신들의 이상이 무너진 것에 격하게 분노하고 자신의 미래가 농경지나 비공식 경제(제도권 밖 경제)에 있다는 데 불만을 폭발하면서 시스템 밖으로 완전히 밀려 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심지어 폭력조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중국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꿈과 신념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 그중의 일부는 훨씬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이 돈을 잘 벌려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심을 할 수도 있다.
중국이 외국의 직접투자와 무역에 문을 열기 시작하던 무렵에 멕시코의 임금은 오르기 시작했다. 중국의 임금은 멕시코보다 매우 낮았기 때문에 저임금 일자리는 물이 빠지듯 빠져나갔다. 2001년부터 2004년 사이 멕시코는 약 40만 개 일자리를 중국에 빼앗긴 것으로 추산된다. 단 3년 만에 대미수출 1위였던 멕시코의 압도적인 섬유산업은 중국으로 대체되었고, 멕시코 의류 제조공장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 ‘메이드 인 멕시코’였던 상품들은 월마트 진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전환점이 반드시 휘황한 멕시코 발전의 끝을 의미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대만, 아일랜드, 홍콩, 싱가포르처럼 어떤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그 전환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멕시코 경제는 흔들렸고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1인당 경제성장률이 1%를 간신히 웃돌 뿐이다. 멕시코는 ‘중진국 함정’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초 멕시코의 노동력은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았다. 공장 일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30% 정도가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현재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적자본이 심각하게 양국화되어 있었다.
멕시코에서 공장을 철수시킨 투자자들은 임금 상승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멕시코 노동력의 낮은 교육 수준 때문에 공장을 유지하면서 공장을 업그레이드시킬 만한 가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노동자의 공급만으로 상향 이동하거나, 화이트칼라 일자리에서 일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다른 많은 지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은 멕시코 이외의 새로운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멕시코는 20년 넘게 비공식 분야는 꾸준히 성장했다. 많은 공장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던 그때 비공식 분야 취업이 늘어났고 그 후에 급증했다.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이 분야 취업률이 무려 115% 증가했다. 오늘날 멕시코 인구 절반이, 가장 가난한 차이파스 주는 인구 80%가 비공식 분야에서 일한다.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거나 몇 페소라도 벌기 위해 자동차 창문을 닦는 일을 하는 등 소위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말하는 비공식 분야의 확대는 멕시코 경제를 끌어내린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비공식 분야는 공식분야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고 공식분야를 심각히 망가뜨리며 사회안전망도 약화시킨다. 115% 성장은 공식분야 6%보다 훨씬 높다. 비공식 분야는 세금을 부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는 장기 투자에 쓸 세수를 마련하지 못한다. 예상대로 정규경제에서 배제된 많은 사람들이 범죄에 눈을 돌렸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벌어진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 숫자가 15만 명을 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분쟁으로 사망한 민간인 숫자보다 더 많다. 세계에서 살인 비율이 높기로 유명한 미국보다 멕시코의 살인사건 비율이 3∼4배 더 높다.
다른 예도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는 몇십 년간의 독재에서 벗어났을 때까지 중진국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고소득 국가 범주에 들어간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시한 것처럼 인적자본을 축적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1980년대 이들 나라들은 오늘날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나라들과 비슷했다.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는 경우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고소득 국가가 되었다. 그들은 낮은 인적자본에도 불구하고 사다리 게임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브라질, 멕시코, 터키와 다르게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케 했을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럽연합(EU)을 통해서 다른 회원국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EU는 20세기 말 새로 가입한 이들 남유럽 국가들에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했다. 보조금은 이들에게 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인적자본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게 해 주었으며, EU 시장과 경제적으로 통합해 GDP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중국이 제2의 경제대국이 된 데는 중국공산당(CCP)의 역할이 컸다. CCP지도자들은 경제적 곤경은 정치적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쳤으며, 이들은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 요소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것은 빠른 경제성장과 민족주의였다. 그런데 만약에 정통성 기둥 중 하나인 빠른 경제성장이 돌이킬 수 없게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워드 프렌치’를 비롯한 많은 언론인은 중국공산당이 애국주의 열정을 부추기는 것 말고는 정통성을 강화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 경제가 하락하기 시작해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면 중국은 다오위다오(센가쿠 열도)를 장악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군사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위험을 불사한 행동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이 아니라면 어디가 될까?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오랫동안 끓고 있던 갈등들이 마침내 폭발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의 개혁 가방 안에는 이런 재앙적 시나리오를 피할 해법을 가졌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싶다.
중국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고등학교 교육을 확대하려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만약에 중국이 더 나아가고 싶다면 직업학교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학교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기초적인 폭표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학교에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개선하고자 하나 쉽지가 않을 것이다. 관리감독을 넘어 중국의 직업학교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 특정 기술을 가르치는 대신 모든 젊은이들에게 보편적인 기술을 가르치는데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인문계 학교에 직업 요소가 가미된 시스템으로 변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독일이 하고 있는 것이고, 이 방식의 직업학교만이 21세기에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벽】
중국의 농촌을 말하는 ‘보이지 않는 중국’에서는 초등학생의 60%가 철분 부족으로 인하여 빈혈, 교정되지 않은 근시, 기생충, 이 세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학생 13만 3000명을 조사한 결과로 밝혀졌다. “중국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미래 노동력의 3분의 2가 ‘보이지 않는 중국’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적 중대한 우려 사항이다.”저자의 말이다. 저자 일행은 중국 농촌지역에 사는 아이의 부모와 조부모들에게서는 아이들이 건강해지도록 해 줄 지식과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확인했다. 많은 경우 그들은 아픈 아이를 증명된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을 방해하는 민간요법을 더 맹신한다. 또한 그들이 치료 방법을 배우려 해도 믿을만한 정보제공자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아이들은 잠재력보다 훨씬 못한 미래에 굴복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육아’는 과학이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다른 종처럼 모두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본능과 자신의 부모, 친척 그리고 이웃들의 사례를 합쳐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었고 또한 그 방법은 잘 작동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기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스스로 먹고사는 방법,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질병이나 외부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 등을 가르킨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 복잡한 메카니즘 작동법을 감에 의존하지 않으며 과학적 방법에서 찾으려고 한다. 변수를 통하여 확립된 사실에 근거해 배운 위대한 것 중에는 목숨을 구하는 약, 환경을 제어하는 기술, 물질적 세계에서 살아가게 하는 새로운 방법 등을 찾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 가운데도 특정 방법이 다른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특히 현대는 이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모든 의문에 맞은 정답도, 완벽한 부모가 되는 방법이란 것도 없다. 종합적인 가이드도 단일한 과학적 공식도 없다. 하지만 생물학과 발달심리학은 아이들의 인지, 언어, 운동신경과 사회적·정서적 발달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기본요소가 있다는 것은 추론을 넘어 확립된 사실로 증명된다. 1960년대 이후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각각 다른 능력치를 가진 채 학교생활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면서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부유한 가정 출신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더 나은 인지 능력과 언어능력을 가진 채 유치원부터 시작한다. 일부에서 특정인종과 계층이 다른 인종보다 유전적으로 ‘똑똑하거나 더 낫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객관적인 연구자들은 이 질문을 철저히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낡은 주장들을 빠르게 무너뜨렸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종적 정체성이나 경제적 계층과 상관없이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가진 채로 태어난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보여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뒤처지는 이유가 유전학적 차이보다 초기 환경과 경험의 차이가 훨신 중요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초기, 즉 영유아기에 어떤 식으로 키워지느냐가 사는 동안에 배우고 발전하고 성공할 기회를 가지는 기본적 능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 서부에 사는 사오페이 가족은 가난했고, 학교를 통학하는데 망가질 것 같은 밴을 타고 두 시간을 갖다 두 시간을 와야 했다. 사오페이 마음 속에는 학교를 떠날 이유가 명백했다. “저는 말 그대로 배울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했죠.”어머니에게 쪽지를 남기고 멀리 떨어진 시안(西安)의 어느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이때 나이가 열네 살. 어머니는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제발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더 나은 삶을 살 유일한 기회를 버리는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하지만 사오페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제가 왜 그런 데(학교)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사오페이는 단호했다.
그 후 사오페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동안은 무난히 해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장이 없는 그에게 맞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건설현장 일자리는 최소한 열여섯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었으나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첫 2년 동안은 마천루 같이 높은 데 올라가 비계에서 일했다. 가끔은 위험했다. 그러나 이 일은 그가 졸업장 없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자리보다 많은 돈을 주었다. 그렇지만 2015년 건설현장은 아무 경고도 없이 문을 닫았다. 그후에 얼마동안 전자기기 제조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그것이 어디에 쓰는 부품인지 알지도 못하고 일했다. 그 공장 역시 문을 닫았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어디서도 사람을 구하는 것 같지 않다. 사오페이는 지난 3개월 동안 어떤 일도 하지 못했다. 그 무렵 건설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와 이야기하다 돈 버는 방법이 있다고 했으나 그 일자리가 위험한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인데?”“몇 달간 친구가 일했다고 하는 그것은 성도에서 여자애를 납치해 다른 성 산악 지대에 사는 농부들한테 신부로 팔아넘긴대요. 그래서 망설이고 있어요”어디서부터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을까?
흔히 농촌에서 사는 사람의 방식과 풍경은 낭만적으로 묘사하기 쉽다. 아름다운 언덕과 단순한 일 그리고 21세기 존재적 스트레스로부터 안락과 자유에 대해 시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 생존이 걸리면 사실이 아니다. 외딴 농촌 공동체에도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 부모의 과거 경험과 달리 현대 세계에서 생존하려면 21세기 과제를 해결할 인지 기술이 필요하다. 아기에게 초기 경험이 평생 역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안다. 세계 개발도상국들도 이 유아 발달 문제가 보편적이란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부모 가운데 11∼33%만이 자녀들에게 인지적 자극을 주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국가에서 대응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간과해왔으나 라틴아메리카, 남부 아프리카,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 개발도상국 국가들의 경제발전에 관심 있는 정책결정자, 학자, 발달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개발은행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출 프로그램과 투자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결론】
앞으로 몇 년 동안 중국은 일부의 예측대로 초강대국임을 증명하면서 꼭대기에 도달하거나, 필연적인 도전의 과제에 굴복해 경제적 하락세를 겪거나, 아니면 정체 또는 붕괴에 이를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몽이 실패할 것이라고도 상상하기 어렵다. “경기둔화 예측은 언제나 어렵다”는 이 말은 거시경제학에서는 가장 흔하다. 1960년대 서방 세계에 그토록 큰 공포를 안겼던 거대 조직 소련경제가 20년 뒤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70년대 브라질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신흥벼락 부자로 여겼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진국 지위에 머물러 있다. 1980년대 일본경제에 대해 확신을 가졌고 많은 나라들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중심 세계를 상상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경제는 30년 넘게 제로 성장상태다. 1990년대 초 ‘제2의 대만’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멕시코는 오늘과 같은 상황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담스미스나 케인즈’같이 노벨경제학상을 탄 사람들의 이론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안 된다는 것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중국은 소련, 브라질, 일본, 멕시코가 아니지만 중진국 함정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비슷한 상황으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들은 많다. 중국 정부와 관찰자들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흔들리거나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난 70년 동안 이 지점에 도달했던 많은 국가들이 정확히 그랬다. 대국인 중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은 독특하다. 관찰자들의 예상과 회의론자들이 예측이 틀렸음을 거듭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유기업을 개혁하고 빈사 상태였던 농업 경제를 탈집산화하는 데도 성공해 그것을 동력으로 급진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세계와 단절되었던 보호무역 장치도 최소한의 보호장치만 가지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으며 세계 시장에 통합되어 무역 비중을 크게 늘였다. 이제 미국보다도 더 많은 무역상대국을 가지게 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남은 중국의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저자 일행이 앞서 언급한 중국의 실패를 막기 위해 하는 조언인 것처럼 들린다. 첫째, 중국이 두 개의 국가처럼 보이는 ‘농촌 중국 공화국’과 ‘도시 중국 공화국’을 통합해야 한다. 우리와 다르게 농촌에서 태어난 아이는 농촌지역에서만 서비스를 받는다. 부모를 따라 도시로 가도 감당하기 어렵고, 도시의 혜택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교육과 의료 등 거의 대부분이 호적(戶口)인 ‘후어커’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인데, 중국의 3억 명 이상이 이런 상태로 아이들은 고향과 농촌 마을에서만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고 공공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후우커 제도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농촌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마을에 남겨두고 도시로 가서 일하고 그들이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면 아이들을 돌보는데 도움이 되지만, 아이들은 오랫동안 친척집이나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다. ‘남겨진 아이들(留守兒童)’이라고 하는 이들이 중국 전역에 6,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그중 200만 명은 돌봐줄 친척도 없이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선택지는 어려움에 부딪칠 각오를 하고 아이들을 도시로 데려가는 것인데, 의지할 연줄이 있는 가족이라면 도시의 공립학교에 보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나 이는 극소수 이주자만 가능하고, 사립학교에 보내려면 많은 돈을 내야 하므로 농촌에서 올라온 부모들이 감당하기는 어렵고 버겁다.
두 번째는 지방분권화 문제다. 분권화된 재정시스템에서는 교육, 보건, 영양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사용할 것인가를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결정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인센티브 문제가 발생한다. 비용은 지방정부가 대지만 이익은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반면 전국 단위에서는 큰 이익이 축적되지만 국가 지도자들은 자금 사용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빈곤한 농촌지역에서 교육, 보건 등에서 구조적으로 투자 부족이 일어난다. 물론 이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고 인구가 많고 재정적 압박이 있는 국가에서는 지방분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대규모 영토를 가진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정도는 다르지만 이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뒤 농촌 어린이들을 교육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은 미국 전체 경제에 축적되지만, 지역 학교 시스템은 비용을 부담하고도 얻는 것이 적었으므로 교육에 대한 투자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은 이제 모든 이들에게 교육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세수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 문제다. 미국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으나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이 국가 차원에서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실행했다. 농촌 교육 자금을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로써 교육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도 재정지원을 완전히 중앙집권화해야 한다. 이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단기적 성장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중국은 지난 35년 동안 한 자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모든 마을에 가족 계획 감독관을 파견해 왔다. 2015년 이 정책은 끝났다. 온화하고 매우 효과적인 정책 전환으로 5000만 명 어린이가 혜택을 보았다. 이 정책은 양이 아니라 질에 초점을 맞춰 21세기에 맞게 맞춰갈 수 있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중앙집권화하여 과도한 교육 격차를 줄이고 모든 학생이 어디에서 태어나든 상관없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지방정부는 자금도 없고 농촌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동기도 없다. 교육받은 청년이 지역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면 지방정부는 어떤 이익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 사례에서 보듯이 중앙정부가 이를 추진하고 확대할 때 더 높은 인적 자본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이 최악을 결과를 막을 수 있는 보험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여기면 범죄 위험까지 감수하려 할 뿐만 아니라 범죄조직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중국은 한 자녀 정책으로 성비의 균형이 깨져 4000만 명 혹은 그보다 많은 남성이 결혼 못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적당한 일자리 없이 도시를 배회하게 되면 정말로 불길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대부분 교육받지 못한 이들 독신 남성들은 범죄에 의지한다 해도 잃을 게 없다. 이들의 억눌린 에너지와 좌절, 분노를 위험한 곳으로 분출할 가능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고 또 매우 높다. 서구 언론에서는 중국에 대한 담론으로 동양과 서양에 대한 경쟁 구도, 중국의 힘과 명성이 커지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 세계질서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중국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전 세계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곤경에 처한 중국은 훨씬 더 위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세계 2위라고 해도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는 세계 228개국 가운데 106위로 여전히 빈곤하다. 중국 엘리트들이 아무리 잘 하더라도 앞으로 몇십 년 내에 중국 인구의 대부분을 공적 지원금으로 지탱할 충분한 세수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양극화된 노동력으로 미래의 불안정이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지도자들은 현재 맞이한 도전의 해법으로 꺼낸 유행어가 일대일로(一帶一路)다. 이것은 중국의 투자자본과 자재, 노동력으로 다른 나라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한다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대외관계와 경제를 부양하는데 좋은 방법이라며 각광받고 있으나, 이것은 인적 자본 문제를 피할 수 없고 이미 많은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노동자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중국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그러나 중국은 멕시코, 브라질과 많은 면에서 다르고 이 차이는 실제로 중요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법과 질서를 적용할 때 일반적으로 매우 체계적인 방법을 활용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 없는 강력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활용하고 있다. 미래의 기술적 돌파구와 투자는 이런 시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 것이다.
앞으로 중국에서 무시무시한 결과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없다 혹은 낮다고 해도 우리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를 뒤흔들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라 지도자들은 그에 대비한 보험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린이 교육을 비롯해 축적된 인적 자본이 낮을수록 경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들에 더욱 취약해진다. 노동력이 더 잘 교육받을수록 더 유능하게 반응하고 적응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과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위기가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중국은 수백만 어린이들에게 더 건강하고 더 번영하는 삶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의 글이지만 현재의 정치 상황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한 고찰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잘 돼야 우리에게도 좋고 관계도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