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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
죽음에 관한 많은 명언들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는 “이별의 시간이 왔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신만이 알 것이다.”라는 말 만큼 와닿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라는 이 말도 그렇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한번은 죽겠지만, 죽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내가 어떻게 죽을지, 죽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왜 죽어야 하는지를 알고 나서 죽는 것이 그래도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태어나서 산 동안은 누구나 환경과 조건이 달랐듯이 각자의 삶을 살아왔으나 이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절대 평등의 순간인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은 남자 80.3세, 여자 86.3세(2019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자는 12위, 여자가 3위다. 남자는 스위스, 아이슬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순이고, 여자는 일본, 스웨덴, 한국, 프랑스, 스위스 순으로 사망원인 중 단연 1위는 암이다. 암 외에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 폐렴 등도 높은 사망원인으로 꼽힌다. 원인이 무엇이든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거의 같다. 심부전, 호흡부전, 뇌압 상승 같은 현상으로 결국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3대 장기인 폐, 심장, 뇌가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활동을 정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오래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실제 사람의 자연수명은 침팬지의 39.7년보다 적은 38년 정도다. 우리 전 세대인 네안데르탈인도 37.8년으로 우리와 거의 같았다. 참고로 거북이는 100년, 북극고래는 200년 정도로 인간과는 한참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인간이 오래 살게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인간의 몸에는 약 60조 개의 세포가 있고 이들은 완전히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 유전자에 입력된 정보에 따라 성장하고 분화하고 사멸하는 과정에 엄격하게 조절되고 항상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 세포 중 하나에 이상이 생겨 돌연변이 세포로 변하면 정상세포와 달리 통제, 조절이 되지 않아 기하급수적으로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면서 이것이 암이 된다. 암은 신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머리카락, 손발톱처럼 성장이 끝난 세포조직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세포가 어느 시기에 누구에게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요인과 후천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몸이 정상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장기가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유기적으로 기능을 유지해야 하지만, 암으로 인해 기능적, 화학적 균형이 깨어지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때로는 암치료를 시행하는 과정에 생기는 합병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암 선고를 받으면 어떤 증상이 일어날까? 첫째 신체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것은 암 환자 외에 모든 형태의 죽음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장 일반적인 변화는 쇠약해져 극도로 피로해지고 잠을 자는 시간과 침대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휴식을 취해도 피로가 풀리지 않을뿐더러 점진적으로 무력감에 빠져서 스스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호흡에만 에너지를 소비하고 다른 에너지 소비를 극도로 차단하게 된다.
체중 감소로 이어지고 식욕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갈증도 사라져 물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까지 사라진다. 이때 물을 강요하거나 먹여주는 일은 자칫 기도로 물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중단되면 평균 열흘 내 사망하지만, 몇 주 동안 생존하는 경우도 있다. 신체 감각이 둔해져서 결국 멈추게 되면 제일 먼저 언어능력이 사라져 실어증이 된다. 그다음 시력을 잃고 청각과 촉각은 가장 나중에 잃게 된다. 환자가 눈을 감고 누워 있어 못 듣는다고 생각해 큰 소리로 떠들거나 고함치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흔히 눈을 뜨고 죽으면 생에 미련이 남았거나 풀지 못한 원한이 있어서 라는 괜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교감신경, 안면신경, 동안신경의 상호 작용에 의한 것으로 죽음 직전에는 거의가 수면 상태여서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만 중추 신경계 이상이나 교란으로 상호 작용이 정상적이지 못 할 경우 눈을 뜨고 있을 수 있다. 근육이 굳어지는 사후 경직이 일어나면 눈을 감기려 해도 잘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죽을 때 눈을 감고 있었어도 사후 경직이 일어나 근육이 이완되면서 눈꺼풀이 올라갈 수도 있다. 모든 동물은 죽음이 임박하면 공통적 행동 양식을 보이는데,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피곤해하며 주변에 무관심해지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도 하고 물과 음식을 거부하기도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죽음의 마지막 과정을 수면아사(睡眠餓死) ‘잠들고 배고파서 죽는다’고 했는지 모른다.
누구나 죽음에 임박하면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뇌의 기능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으로 의식을 잃어가게 되는 과정이므로 뇌의 기능이 정상일 때 가능한 것이어서 의식이 사라지는 상태에서 고통스럽다는 감각 자체가 극도로 무뎌지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고, 산소 결핍으로 뇌는 일종의 방어기전으로 통증 완화 효과가 있는 아편성 단백질인 엔도르핀을 포함한 각종 신경 전달 물질을 다량으로 분비해 고통을 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정감을 준다. 신경학자들은 죽음의 순간에는 고통은커녕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최고의 행복감과 쾌감을 느낄 것이라고 한다.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떨쳐내고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음도 생의 필연적 요소라는 것을 인정하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 주사를 맞기 전에 두려움에 울던 아이가 바늘로 찌르는 주사가 아니라 사탕을 입에 넣어주는 것이었다면 울지 않아도 되었을 것처럼 죽음의 순간은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가장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은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울면서 태어나 웃으면서 떠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죽음 후에 신체, 즉 시체는 사망 직후에는 외형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여러 신체 물리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산소공급이 중단되면 모든 세포의 열에너지 생산 능력이 상실되어 정상 체온이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체온이 주변 온도와 같아지는데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정상이지만 점차 식어간다. 혈류를 따라 움직이던 적혈구도 멈추면서 혈액 내 적혈구가 신체 아래쪽 낮은 부위 모세혈관에 몰리게 되고 피부는 암적색을 띠게 된다. 이 반점은 2∼3시간 후부터 시작되어 14∼15시간 후 최고조에 달했다가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사라진다. 모든 근육의 긴장도가 풀리면서 대소변을 흘리기도 하지만, 근육과 관절이 경직되어 뻣뻣해진다. 이는 사후 20시간 즈음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30시간까지 지속되다 경직이 풀리면서 부패가 시작되는데 부패 시간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많다. 여름에는 24∼36시간 겨울에는 3∼7일까지 걸리기도 한다.
부패는 체내 세균 밀도가 가장 높은 대장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고 이어 혈관의 혈액에서 스스로 발생시킨 가스 압력에 의해 전신으로 이동하면서 부패가 시작된다. 시신의 변화는 동서양 장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부패와 동시에 가스 발생으로 심할 경우 복부가 폭발하듯 터지기도 하고 얼굴 쪽으로 팽창해 안구가 튀어나오거나 얼굴 형체가 생전의 모습과 달리 흉측하게 변하기도 하고, 모든 구멍에서 부패한 액체가 흘러나와 지켜보기 힘든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왕족이나 부자가 죽으면 칼로 내장을 꺼내고 약재나 소금을 채웠다고 하는데 이는 내장에서 가장 먼저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지금은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화장을 하지만, 옛날에는 매장이 성행했다. 매장의 경우 3∼4개월이 지나면 혈액 내 철분이 산화하면서 얼굴색은 갈색으로 변하고 조직은 분해되어 묽은 진흙같이 흘러내리게 된다. 1년 정도 지나면 산성화된 체액과 독소로 시신에 입혀진 수의나 의복 대부분은 사라지고 나이론 등 이음새만 남는다. 50년이 지나면 조직은 액화되어 완전히 사라지고 미라화된 피부와 힘줄만 남지만, 이것도 분해되어 사라진다. 80년 정도 지나면 뼛속 콜라겐 성분이 약화되어 뼈가 갈라지고 미네랄 성분인 뼈대만 남는다. 100년 정도 지나면 남은 뼈 성분도 모두 부서져 먼지로 변하고, 신체에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치아만 남는다. 특별한 환경으로 미라화, 시랍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라진 관 주변에 몇 개의 치아와 분해되지 않은 몇 가락 나일론 실만 남을 것이다.
전통적 불교 의식인 화장은 나무와 숯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그 위에 관을 올려놓지만, 현대에 와서는 버너 연소로 화장하는데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우 내화 장비 위에다 관을 올리고 700℃에서 연소를 시작하여 피부가 탄 후에는 900∼1000℃로 올려 타고 남은 뼈를 모으는 방식으로 화장한다. 화장이 매장보다 자연훼손을 막고, 토양오염 등 국토 보전을 위해 친환경적이라고 하지만 자동차로 7700㎞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일산화탄소, 다이옥신, 수은 등 공해 물질을 방출함으로써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소망과는 일치하지 않는 형태다.
진정으로 후대를 위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한 줌의 흙으로, 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자신의 장묘방식을 깊이 고민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죽은 후 일주일, 일 년, 100년 후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유언처럼 남기도 싶다. 내 몸둥아리는 화장해 조장이나 혹은 산화해 버리고 이 글이 적힌 USB만은 후손들이 간직해 주기를 바란다.
◎ 죽음을 설계하고 웰빙을 원하므로 웰다잉을 생각한다
죽음이란 곧 이별이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 인연을 맺은 가족, 친지와 모든 이들과의 이별! 죽음이라는 이별은 끈을 끊어버리는 마지막이기에 더욱 소중한지 모른다. 이런 기회를 빼앗아가는 급작스러운 죽음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급사, 급살이라고 하는 이런 갑작스러운 죽음에는 급성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급성심근경색, 급성동맥경화, 급성뇌경색, 급성뇌출혈 등. 뇌동맥류가 파열되는 뇌출혈의 경우 10% 정도는 병원 도착 이전에 이미 사망한다. 급사를 피했다 하더라도 사망률이 40∼50%에 이른다. 특히 출혈이 소주잔 한 잔 정도일 때는 90%가 사망한다. 뇌는 혈액 공급이 4∼5분만 중단돼도 영구적인 손상을 입는다. 이런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고혈압, 당뇨, 고지혈, 흡연, 음주, 과로, 스트레스 등 위험 요소를 경계하고 치료나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나리자」를 그린 유명한 화가이자 과학자이며 사상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런 말도 남겼다. “보람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값지게 살아온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 준다.”서로 다른 인생사만큼 모두의 인생은 다양하다. 그러나 누구나 생의 마지막 순간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죽음의 설계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의지와 달리 타인에 의지해 행동을 대신하게 하는 순간 인생의 설계라는 시계는 멈춘 것이라 생각해 낙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설계인 죽음의 설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신체적 질병을 정신적, 정서적, 영적 차원에서 다스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정신에 의해 육체를 통제하고 살아왔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마음으로부터 현실을 수용하고 평온을 찾으려는 노력은 현명한 죽음의 설계를 위한 시작이다. 필요하다면 명상, 기도, 음악 등을 통해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2000년 들어서면서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죽음을 구제하는 병원은 본연의 임무가 아이러니하게도 치료에 실패한 망자를 유치하는 장례 산업에 치중하게 되면서 병원 비지니스의 큰 축이 되었다. 더 많은 망자를 유치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투자하고 있고, 장례가 사회적 계급화를 낳기도 한다. 고인을 추도하고 기억해야 할 장례식장의 넓이와 빈소 앞에 놓인 화환의 개수로 평가되기도 핳는 것이다. 더 나은 죽음, 마지막 존엄을 지키면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웰다잉으로 마무리될 때 진정한 웰빙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장례문화는 조선시대 정착한 유교 문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1971년 매장 비율이 94%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2000년에 이르러 묘지 면적이 전 국토의 1%를 차지했는데, 당시 1인당 주택 면적이 6평이었던 반면 분묘의 면적은 평균 15평이었으므로 국토잠식, 자연훼손. 토양오염, 불법 및 무연고 묘지의 증가, 묘지 조성과 관리에 따른 비용증가 등 피해를 만들었기에 화장으로 묘지를 피하려고 했다. 미국도 1960년대까지 95%를 매장했으나, 2019년 54%가 화장하고 우리는 88.4%가 화장하는 것으로 매장이 줄어들고 있다.
죽음 이후 자신의 장례와 장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죽음을 예감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장 죽음과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젊은이들에게도 필요하다. 죽음을 상상하기조차 싫은 비극, 공포로 여기기보다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며 그럼으로써 현재의 건강한 삶에 대해 경외심을 가질 수 있고,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불필요하게 흔적을 남기려고 하거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금의 삶을 더욱 진지하게 만든다. 죽음 이후 장례와 장묘에 대한 생각과 다짐이 시간을 두고서 다져지면 인생의 마지막 결정이 완성될 것이다.
죽음을 통해 어느 별에서 그리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만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죽음이란 꼭 슬픈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 조상인 고구려인들은 나이 20이 되면 스스로 수의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기에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