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1-5 예수님의 기도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기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 17장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영화
요 14-16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모든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우선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다가오는 자신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계획을 세워서 성취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또한 고난이 있으면 그 고난으로 인하여 내가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어서 그런가 위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인하여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지는 일을 순종하여 이룸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신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삼상15:22, 새번역] 사무엘이 나무랐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자기 십자가와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라간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고난의 길을 가야할 때,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이 부담이 될 때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권세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께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세하면 사람들은 사람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교회도 직분을 권세처럼 생각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일이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죄인들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직분을 주셨다면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권세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높이고자는 하는 권세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권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의 심령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권세입니다.
본래 권세는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께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복종입니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신자는 예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제자들처럼 환난과 박해를 받아도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욕을 먹고 박해를 받아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예수님의 권세 아래에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믿을 때 흔들이지 않는 반석같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생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천국과 영생을 멀리 있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즉 죽어서 가는 곳, 죽어서 누리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즉 영생을 시간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영생은 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천국과 영생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영생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영생에 대한 정의와 조건을 말씀합니다.
3절에서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한 자나 악을 행한 자나 모두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영생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헬,기노스코)라는 단어는 일대 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경험과 교제를 통해서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는 인격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미래적이지만 현재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적이면서도 현재형으로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영원토록 거하시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을 알고 또 예수님을 알고 믿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는데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자는 죄없는 자로 다시 살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죄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지 오래 산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죄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없는 자입니까?
분명 우리는 죄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죄 있는 자가 죄없다 함을 받을 수 있는 복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믿는 것이 곧 예수 안에서 모든 죄가 해결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곧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생명 안에 존재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흠없고 깨끗한 죄없는 영광된 상태로 부활합니다.
그래서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영생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는 것을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부르는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성경 지식 몇 가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내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예수님을 통해서 확실하게 증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셨던 그 삶을 따라가기를 소원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장차 누릴 것이 아니라 지금 누려야 할 복입니다.
찬송가 436.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후렴,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함께 살리라
이제까지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면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탕자의 비유, 첫째 아들은 누릴 줄 모르고 불만 속에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마지막은 사망의 부활임을 안다면 세상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욕심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영생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지막을 보고 사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영생이라는 승리의 기쁨과 힘을 누리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황당한 것도 허황된 것도 아닙니다.
신실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죄가 해결된 사람이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로 인해서 우리를 이미 죄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죄없는 자가 거할 곳은 깨끗한 의의 나라입니다.
죄를 용납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곧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복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24: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정리)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권세 아래 존재함을 알고 어떠한 형편에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3.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임을 알고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