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패자의 선물
루카스 일가는 하리코프와 체르노빌의 대화를 긴장감으로 지켜보았다.
빌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3대1의 총격전 이후로 총을 잡을 일이 없었지만 사랑하는 요하나와 가족을
위해서 총을 들어야했다. 지는 게임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하리코프의 말에도 빌은 특등사수의
자신감이 넘쳤다.
“해바라기를 과녁으로 선택하신 것은 큰 실수입니다.”
“왜지?”
“해바라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하나 꽃이기도 합니다. 6년 동안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나와
눈 맞춤이 되어있는 과녁이어서 이 게임은 이미 제가 이긴 겁니다.”
“하하하하 뭐야 특등사수의 자신감이야 요하나를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둘 다?”
요하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에 가슴이 콩콩 뛰었다.
리나와 이자벨라는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빌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루카스와 오스카는 호탕하고
남자다운 기 싸움에 흠뻑 빠져들고 제인은 벤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두 사람에 비하면 벤은 귀여운 소년 같아~”
“그래 맞아. 제인은 소녀 같고.”
결전을 약속하고 화기애애한 식사를 나눈 뒤에 잠자리로 돌아가고 요하나는 빌에게 말했다.
“승리를 위해 눈 맞춤을 한번 하고 잘까요?”
“좋지요 하하하. 그런데 총소리에 아기가 놀라니까 밖으로 나오지 말고 창가에서 귀를 막고 결투가
끝나기만 기다려요.”
“그래요 나는 빌의 승리를 믿어요. 특등사수?”
아침. 일찍 일어난 루카스는 마당에 사선을 그었다. 하나둘 설렘으로 마당으로 모여들고 제인이 허브티를
가져오자 티 테이블에 앉았다. 빌과 하리코프는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일어섰다.
바람도 잔잔 쾌청한 날씨였다. 제인은 누가 승자가 될지 궁금해서 물었다.
“벤~누가 이길까?”
“빌이 이겨야겠지?”
“맞아요. 반드시 이길 거 에요. 내가기도 했거든요.”
“오~조향사가 맡은 승리의 향기가 벌써부터 느껴지는데?”
그사이에 둘은 총을 들고 사선에서 4개의 해바라기를 응시했다.
침묵. 아무도 범접 할 수 없는 대결의 묵직한 분위기에 가족들은 침을 꼴딱 삼키고 요하나는 창틀에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빌은 요하나를 향하여 귀를 막으라고 귓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였다. 요하나가 ‘이렇게’
하고 흉내를 내며 빙그레 웃었다.
하리코프가 말했다.
“자네가 우측하면 나는 좌측이고 좌측하면 우측이다 선택하게.”
“먼저 좋은 방향을 선택 하세요.”
“오우~ 충만한 자신감. 나는 좌측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막시 밀리언의 경호원 겸 보스인 중년의 중후한 남자 하리코프의 팔이 거침없이 올라갔다.
해바라기의 고갯짓이 멈추고 미세한 바람도 죽어 허브티의 향기도 멈추었다. 그 찰나에 하리코프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해바라기의 고갯짓과 함께 씨가 파편으로 날렸다. 굶주린 늑대가 마당에 나타났던 이후로 처음 울리는 총성
이었다. 하리코프가 말했다.
“루카스 좌측1번 확인하게.”
루카스는 해바라기를 한손으로 잡고 손가락을 넣어 보이며 말했다.
“명중이다.”
“와우! 아직 내 실력이 녹슬지 않았군. 다음은 빌 차례야. 몇 번을 쏠 건가.”
“우측 1.2번입니다.”
“1.2번?”
하리코프는 1.2번이라는 말에 설마 했다.
빌은 심호흡을 하고 사선에 섰다. 손이 서서히 올라가고 헐렁한 겉옷 소매 자락이 스르르 내려오며 팔에
드레곤처럼 솟아오르는 백선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요하나는 백선 자국을 보는 순간 빌이 부상을 당했던 그날이 떠올라 귀를 막으라던 말을 잊었다.
오데사 장교가 쏜 총에 무릎을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꼿꼿하게 서서 결투를 벌일 때 보았던 백선자국을
응시하며 두 손을 모으고 빌이 이기기를 기도했다.
미세한 바람도 죽고 새소리도 멈추고 흔들리지 않는 해바라기를 확인한 순간 호흡을 멈추고 촌각의
시차를 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하리코프의 설마대로 두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 맞은 해바라기는 깜짝 놀란 고갯짓을 하고 꼿꼿하게 섰다.
아직 과녁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과녁을 향해 간 루카스는 1번 해바라기를
한손으로 잡고 손가락을 넣어 보이며 외쳤다.
“명중~”
두 번째 해바라기도 명중이라고 외치며 손가락을 넣어 보였다. 하리코프는 입이 떡 벌어졌다,
“체르노빌. 자네는 내게 남은 한발을 쏠 기회까지 박탈해 버렸다. 이건 내가 상상했던 특등사수를 완전히
넘어섰고 우크라이나 장군의 경호원다운 실력자야 내가졌네 하하하.”
승패가 갈리고 하리코프는 검정 가방에 총을 넣으며 말했다.
“루카스. 내가졌으니 가족들에게 약속한 선물을 드려야겠지?”
“하리코프 농담 아니었어?”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는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하하.”
하리코프는 검정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티 테이블에 놓았다. 가족들은 사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루카스는 하리코프에게 물었다.
“하리코프 여기가 어딘가?”
“루카스 자네 생각이 맞을 거야. 어디라고 생각하나?”
“폴란드 숲정이 마을?”
숲정이 마을이라는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사진에 나타난 이마를 마주 댄 듯 지은 두 집은 전에 살던
부서진 집을 복원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체르노빌은 어렴풋이 짐작한
것이 있어 요하나에게 말했다.
“목걸이 함을 찾아서 나오다가 건축자재를 실은 차량 20여대가 멈춰 있던 것을 보고 선두차가 고장 나
멈춘 것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숲정이 공사를 위해 들어간 차였던 것 같아.”
하리코프가 말했다.
“빌, 자네 말이 맞네. 그날은 숲정이 마을 복구건설을 위해 공사 차량과 자제를 싣고 온 날이었지.”
“역시.”
리나가 궁금해서 물었다.
“하리코프님은 우리 집을 본적이 없는데 이렇게 닮게 지었어요?”
“하하하. 6년 전에 복면을 하고 목사님과 갔을 때 살펴본 마을이라 기억하고, 막시 목사님께서 세밀하게
그려주신 조감도를 따라 마을을 건설했지요.”
“아 그랬군요.”
하리코프의 말이 이어졌다.
“목사님은 숲정이 앞산에 올라 마을에는 내려오지 않고 산상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죽어간 젊은 크리스천들과 마을을 위한 기도라며 숲정이는 순수한 신앙을 가진 자만이 들어 올수
있는 곳이라 말씀 하시고, 자신은 전쟁에 너무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면서 속죄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리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속죄라니요 그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려는 큰 뜻이었는데요?”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신성한 땅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며 죽어서나 아버지 묘비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여~”
루카스는 모세를 동경했던 막시밀리언이 크리스천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사탄의 괴수’라며 저주를
했는데 말없이 진실을 감추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한 깊은 사랑과 배려에 감동이 가득했다.
하리코프는 게임에 승자가 된 체르노빌을 칭찬했다.
“체르노빌 자네는 이 마을을 위해 보내주신 신의 선물이야. 숲정이를 이끌 진정한 영웅으로 우세종의
출현이지. 그리고 오늘대결도 승리를 하고 폴란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패자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나?”
“예? 패자의 선물이라니요. 이 집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기로 작정하고 지은 것이니 패자의 선물이
아니라 승자의 선물입니다.”
“승자의 선물? 하하하하.”
하리코프는 복원한 숲정이 마을을 설명해 주었다.
“숲정이에 진입로를 내고, 교회와 루카스와 오스카 형제를 위한 집을 만들고, 집을 둘러싼 마을30호를
세웠습니다. 샘과 밭 그리고 가축우리도 만들어 두었으니 저 양도 실어 가면 되겠습니다. 2주쯤 후에
여러분을 모셔갈 버스와 트럭이 올 테니 그때까지 여러분은 이삿짐만 싸 놓으면 되겠습니다.”
가족들은 준비된 선물에 아멘과 감사와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리나는 빌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다.
“빌이 하루만 늦게 숲정이에 갔어도 공사로 인해서 목걸이를 찾지 못했다면 벤과 요하나의 결혼으로
합스부르크의 비극을 초래했을지도 모르는데 빌 덕분에 모든 일이 잘 됐어요. 고마워요. 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입니다.”
하리코프가 돌아가고 갑자기 날씨가 급변했다. 올해는 겨울이 일찍 찾아오나 싶었다. 마음은 이미
숲정이에 가있어 이곳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요하나는 여름이 오면 아기의 출산일이지만
이주 걱정이 사라지자 심한 입덧도 기쁨으로 말끔히 사라졌다.
소비에트 정부 관계자가 찾아왔다. 빌에게 눈도 맞추지 못하던 그는 다수의 숫자를 등에 업고 최후통첩을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