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 내세워 관치 강화하려는 금융위가 문제
금융감독원 산하에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이 조만간 설립될 예정이지만 설립 전부터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갈등을 빚고 있어 설립 여부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금융감독혁신팀의 혁신안을 반영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마련 중이며,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안은 금감원 산하에 금소원을 두며, 금소원에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권과 금융위·금감원에 조치건의권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금소원을 금감원 산하 기관으로 하는 법안에 대해 금감원이 노조를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서 금융위가 당황하고 있다. 금소원을 형식적으로만 금감원 산하로 했을 뿐 사실상 금융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주장이다. 금소원 원장은 금감원 부원장급이 맡도록 했지만 금감원장이 제청을 받아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도록 하고 예산 최종 승인 역시 금융위가 결정하는 안이 유력하다는 점에서 금감원의 주장이 틀린 게 아니라고 보인다.
또한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법에서는 금감원장이 행사하고 있는 중징계마저도 금융위가 가져가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금융위가 금융회사·임직원의 제재권자를 금융위로 일원화하는 대신 시행령을 통해 경징계에 한해서는 금감원장에게 제재권을 위탁할 수 있도록 근거를 둘 방침을 갖고 있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같은 금감원의 피해의식은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적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이날 금감원 1층 로비를 가득 메운 직원 약 300명은 "조직 탈취 획책하는 금융위(금융위원회)를 몰아내자", "소비자보호 하랬더니 관치(官治)강화 웬 말이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 등 일부 수구언론은 금융회사 감독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는 금감원 직원들이 길거리 집회를 방불케 하는 시위를 벌인 것을 문제 삼으면서 '밥그릇' 싸움으로 몰고 가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지만, 국장급 이상의 직원까지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조직 정서상 금감원 노조의 집회는 점차 확산될 조짐이다. 특히 현 금감원장과 수석부원장이 금융위 낙하산인사로 금감원의 이익보다는 금융위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뿌리깊은 피해의식 때문에 더 큰 반발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한 지붕 다툼'이라며, 누가 보더라도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유럽재정위기라든가 금융회사의 수수료 논란, 론스타 문제 등 현안을 금융당국 사람들(금감원을 겨냥한 듯)도 모를 리 없는 이 마당에 금감원이 조직 보호를 위한 집회를 열어도 되는 시기인지 의문이라는 식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려고 했다.
조선일보는 금감원 직원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을 때 금감원 바깥에서는 외환은행 직원들이 몰려와 "론스타를 벌하라"며 집회를 열었다.며, 외환은행은 금감원에 대해 시위를 벌이고, 금감원은 금융위를 향해 시위를 벌이는 촌극이 한자리에서 연출된 것이라고 희화화하는 촌철살인의 묘수를 쓰기도 했다. 또한 상당수 국민은 금융위와 금감원을 구별하지 못한다며 저축은행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해 수많은 서민들을 울린 금융당국이라고 한데 묶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많은 금융계 숙제를 뒤로한 채 집안싸움을 벌여도 괜찮은 시기인지 금융위와 금감원 관계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양비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감원 직원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그런 양비론을 가장한 가증스런 약자 때리기의 전형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는 피해의식과 그것이 곧 관치를 비호하는 관언유착이라는 것이 노조의 입장인 듯했다. "국민들 보기에 면목이 없다는 걸 알지만 우리 조직이 죽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으냐"고 노조 관계자는 항변했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과 징계권 회수에 관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었다는 점에서 금융위가 굳이 지금 추진하지 않아도 되는데 몽니를 부리는 것이야말로 이 기회에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뼛속까지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는 모피아적 관치 DNA의 발로인데, 왜 그런 진짜 원인을 보지 못한 채 대증요법만 자꾸 설파하는 것인지 비난한다. 대한민국 최대 일간지면 그에 걸맞게 원인을 분석하는 처방을 내릴 것이지 사이비 주술이나 하는 가짜 의사로 만족해서 될 일이냐고 따갑게 비판한다.
게다가 금감원 직원들을 더욱 더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이즈음 발표된 각종 ‘사기저하방안’이었다. 부실 저축은행 사태로 청와대는 물론 여론의 뭇매까지 맞을 대로 맞았고, 따가운 시선을 받을 만큼 받았던 후유증이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달부터 재산까지 공개하라니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자체 쇄신안이라고 하지만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가 고위 공무원도 아니고 무슨 재산공개까지 해야 하냐. 4급이라고 (공무원과) 같은 4급인 줄 아느냐”는 한 4급 선임역의 볼멘 소리에서 금감원의 침체된 현재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사실 처음 금감원에 들어올 때만해도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며 누구보다도 가족들이 기뻐했고 주변에서도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요즘은 금감원에 몸담고 있는 것이 괴롭다는 직원들이 많다. 이러한 반발은 그대로 경영진에 대한 반발과 금감원을 희생양 삼아 비난을 피해가면서도 이를 기화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금융위에 대한 조직적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례회의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 초안 보고와 관련해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대해 (금감원의) 이견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중재'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서로 협의하고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라며, "공통된 합의안을 만들어 입법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하는 등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양측의 대립이 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금감원 노조는 금융위가 금융소비자보호를 핑계로 관치를 강화하는 데만 매달리고 있다면서 금융 소비자의 권익 증대와는 거리가 먼 엉뚱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금융위가 제정안을 마련하면서 금감원의 제재권을 약화시키는 다수의 독소조항을 금소법에 담아 금융위 스스로의 권한을 비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금감원의 문제제기가 전혀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에 금융위로서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자중지란은 산하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을 토대로 금융권의 소비자보호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또 다른 관치의 주구에게 영토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금융위의 속내일 것이다. 금소원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설립되는 것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금융위나 금감원으로부터 업무협조를 받는 것 못지않게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금융위나 금감원 모두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금감원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금융위의 속내일 것 같다.
하지만 금감원 노조는 이런 성명서를 냈다. “결국 적들은 처음부터 조용히 끝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원한 대로 귀청이 떨어지도록 시끄럽게 가겠습니다!!”라고… 그렇잖아도 일각에서는 금소원을 금감원 산하에 둘 경우 소비자보다는 금융기관의 이해 및 실정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지금의 금감원이 하고 있는 소비자보호 기능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꽤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지금 금감원 직원들의 귀에는 그런 다소 설득력 있는 말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개 줄 건데 뭐 하러 죽을 쑤느냐’는 자포자기성 속내는 아닐까. 그것이 관치에 대한 소극적이지만, 나름대로는 처절한 금감원만의 저항 방법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관치의 진짜 고칠 수 없는 폐해는 아닐까? 관언 유착된 언론들이 진단해내야 하는 진정한 해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