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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제목이 기이하다고 생각되는 이 책은 2022년 3월 출간된 이후 도서관 서가(書架)에서 이미 표지가 닳아 떨어질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읽었다. “경이를 의심하는 태도가 모두 담겨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그 이면에 더 깊고 더 특별한 매혹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레슬러 제이미슨 《공감연습》저자). “책이 끝날 때 즈음 당신은 룰루 밀러가 인생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존 무알렘《이건 찬스다》저자). “과학과 인물묘사, 회고록이 하나로 어우러진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건 커다란 기쁨이다.”(수전 올리언 《책들의 운명》저자) 등 많은 이들이 이 책에 찬사를 보냈다.
저자인 룰루 밀러(Lulu Miller)는 방송계의 플리츠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전문 기자로서 미국의 공영방송국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데뷔작이자 논픽션, 전기며, 회고록이고, 과학모험담으로 채워져 있다.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삶에 관해 우화처럼 읽히는 경이로운 책’이라고 〈곰 출판사〉는 이 책을 소개했다.
그리 오래전이 아닌 시간 속에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과학자이자 교수로 과학적 발견을 수백 개나 허리띠에 새겨 넣은 쾌활하고 혈기 왕성한 거구의 미국인이었다. 당시 미국인 평균 키가 167.7㎝에 불과했으나, 188㎝나 되었고, 그의 물고기에 대한 탐구열이 캘리포니아의 한 부유한 부부의 귀에 들어간 것은 1890년으로 릴런드 스탠포드와 아내 제인 스텐포드가 그를 직접 찾아와 자신들의 농지에 세울 작은 학교 초대 학장이 되어줄 수 있으냐고 물었다. 봉급과 기후, 전망(展望) 등이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릴런드는 악덕 자본가로 널리 알려진 공화당 상원의원이고, 그의 아내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죽은 이들과 만나려고 영매(靈媒-중매자)를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 시골 아낙네라는 것을 알고 데이비드는 고심했지만, 이듬해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스탠퍼드대학 초대 학장에 취임했다. 그의 나이 갓 마흔 살이었을 때다.
널리 알려져, 전설처럼 전하는 스탠퍼드대학 설립 배경 이야기이지만,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로 상원의원이던 설리던 스텐퍼드 이야기가 아니라 초대 학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다. 데이비드에 관한 찬사와 이 책에 대한 찬사는 너무 많은데 그중 하나다. “눈을 뗄 수 없다. 놀랍다. 심지어 충격적이다! 이 책은 유명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 이야기로 독자를 매혹하기 시작하고, 그러다 아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서며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은 당신을 사로잡고, 당신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당신의 예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사이 몽고메리(Sy Montgomery) 《문어의 영혼》저자의 말이다. 데이비드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런 것일까?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다윈의 말은 맞는 것일까? 이것을 역겨운 생각이라고 말한 학자도 있으니 말이다. 분류학자들이 불변의 것이라고 믿었던 그 복잡한 분류 단계(속·과·목·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고,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을 그었지만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한 다윈이 말과는 상반된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지구를 너무 황량한 것으로 느끼게 하고, 분류학자들의 추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루이 아가시는 죽는 날까지 다윈의 생각에 반대했다.
젊고 유연했던 데이비드는 고통스러웠지만, 이 점에 대하여 스승과 의견을 달리했다. 자연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다윈의 관찰대로 종들 사이의 영역을 불확실한 회색지대를 알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여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이는 바늘을 칼처럼 휘두르는 것으로 그가 뻔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성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부인(否認)이 반드시 굴욕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라는 의미기도 했다.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 12분 “1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산들이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갈라져 열렸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닫혔다.”이 말은 데이비드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으며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말한 것이다. 리히터 규모 7.9로 추정된 이 지진은 47초 만에 샌프란시스코 상당 부분을 붕괴시켰고 화재 발생과 폭발로 3천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들과 부인을 잃는 와중에도 데이비드는 스탠퍼드 학장으로서, 청교도답게 손을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라고 했다. 그는 우리 몸이 일으키는 전기(電氣)에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행복은 행하고, 돕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정복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데서 온다.”고 주장했다.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희망이 없다.”고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인용하고는 “그 어디에도 바로 여기, 지금, 오늘만큼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푸르고, 햇빛이 밝고 그늘이 반갑게 맞아주는 곳은 없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16세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고 했다가 화형당한 조르다노 브루노를 영웅으로 칭송했는데, 화형당하기 전 부르노는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전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고 했다는 말을 인용하고 “만약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진실을 차단해버린다면 그들 역시 브루노를 살해한 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아내 수전을 잃은 뒤, 젊은 제시와 재혼했다. 대지진으로 물고기화석 컬렉션을 잃었지만, 더 큰 컬렉션을 다시 구축했다. 그리고 높은 직책으로 승진했다.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류학에 대해, 고등교육에 기여한 공으로 상들과 메달이 요란하게 쏟아져 들어왔고, 기만의 기이한 연금술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거짓말들이 동으로, 은으로, 금으로 변했다. 어쩌면 이는 신이 없는 세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는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겼다.
이 책의 반전은 책 중간쯤에서 일어난다. 스텐퍼드 창립자 중 한 명인 릴런더 스텐퍼드가 죽고 그의 아내 제인 스텐퍼드가 하와이에서 휴양 중 약물로 추정되는 것에 의해 사망한 것이다. 검안의사들이 독살로 추정해 발표했으나,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데이비드는 폭식과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했다. 학장 직위와 대학을 지키려는 데이비드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의사들의 검안 결과가 맞는 것일까? 역사학자 루스 스피어는 제인 스탠퍼드가 독살당했다고 확신하게 되지만, 데이비드가 독살을 명령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추측에서 ‘판타지’로 건너뛰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마침내 스탠퍼드대학 ‘기록물보관소’를 찾았다. 거기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기, 편지, 미발표 에세이, 그림 등이 담긴 커다란 상자 수십 개가 있었다. 열람 닷새째 되는 날 나는 다채로운 그림이 가득한 폴더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자유스럽지 않은, 커다란 뿔염소 머리가 달린 가재, 무지갯빛 가시의 호저, 송곳니에 자홍색 피를 뚝뚝 흘리는 육식성 캥거루와 아기 주머니 속 캥거루, 용과 악마, 피를 흘리는 인간의 팔다리를 가진 그림들”이 있었고, “조던 박사 성명서의 허점을 밝히다”라는 신문 기사까지 있었다. 기사에는 자연사라는 데이비드의 설명을 반박하며 독살임을 가르키는 증거들이 제시되어 있었고, 조던이 “범죄를 은폐하고 있는”것이 틀림없다면서 살인자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채로 나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내게 목덜미에 열을 치솟게 만든 것은 그로부터 두어 달 뒤에 데이비드가 쓴 ‘물고기 수집 안내서’중 하나인 《물고기 연구를 위한 안내》에서 답을 찾고 있을 때였다.”책 430페이지에 “물고기를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섹션에서 그는 여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대담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비밀을 누설했는데, 웅덩이 틈새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리는 탓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 바로 독이라고 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쓴 것으로 묘사한 위험하고 강력한 물질, 바로 ‘스트리크닌’으로 제인의 몸에서 검출된 바로 그 약물이다.
데이비드가 학장으로서 누리던 권력은 제인 스탠퍼드가 죽은 직후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1913년 이사회는 데이비드에게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명예총장이라는 의례적 직책은 유지하게 해 주었지만, 모든 행정적 권력은 빼앗았다. 그렇지만 데이비드는 물고기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으며, 그는 멍게나 따개비 같이 한 자리에 고착되어 살아가는 생물들이 한때는 물고기나 게처럼 더 높은 차원의 형태를 갖고 있었으나 기생으로 자원을 획득해온 결과, 더 게으르고, 더 약하고, 더 단순하며, 더 지능이 떨어지는 생명체로 ‘퇴화 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런 오해를 그는 ‘동물 세계의 극빈자 상태’라고 불렀고, 이를 인간의 종에도 결부시켜 그것을 ‘부적합자 생존’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는 단어가 바로 지극한 열성과 과학적 권위로 옹호했던, 우생학(eugemics)이었다.
‘좋은’과 ‘출생’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조합인 ‘우생학’을 처음 만든 이는 다윈의 사촌이지만, 데이비드는 《네이처》등 과학잡지에는 물론 「켄트세이웨어 우생학 칼리지」라는 SF 소설까지 써 발표했다.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만이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허가하고, 그외 사람들이 자식을 가지려고 시도하면 투옥해 버리는 공동체에 관한 소설로, 소수의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이 이 대의를 열성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면, 우생학은 사변적 소설의 영역에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가장 앞장서서 큰소리로 옹호한 소수 무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생학 주장을 명목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을 확고히 고수했다. 예전에 학생들에게 ‘박멸’을 실현할 방법은 바로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의 생식기를 그냥 잘라 내는 것이라고 했듯이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던 것을 소설에서 강조했다.
미국의 하버드로부터 스탠퍼드, 예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프린스턴까지 전국의 명망 있는 대학에서 우생학을 가르쳤다. 우생학 잡지와 화장품, 심지어 경진대회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량아 선발대회가 있었듯이, 박람회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나는 흰 천막 아래서 적합한 가족과 최고의 아이를 뽑는 콘테스트가 종종 열렸다. 호박의 크기와 무게를 재듯이 아이들의 무게와 치수를 쟀다. 흰 피부, 둥근 두상, 가장 대칭이 잘 이뤄진 이목구비에 파란 리본을 달아주었다. 나치가 유대인 말살 정책에 이용한 우생학을 새롭게 제시하고 발전시킨 이론가가 바로 데이비드라는 것이다. 10여 년 뒤에 독일에서 히틀러가 최초의 강제 불임화법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의 우생학자며 의사이었던 조지프 드 자넷은 “우리의 게임에서 독일인들이 우리를 이기고 있다”면서 우는 소리를 한 것이 이때쯤이다.
그렇다고 모든 미국인이 유전적 정화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계획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1910년 미국변호사협회는 우생학 불임화를 야만적이라고 했고, 가톨릭교회는 불임화는 생명의 신성함을 침해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판단되는 여자, 멕시코, 이탈리아, 일본 이민자들의 아들과 딸… 성적인 전형에서 벗어난 남녀들은 불임화의 표적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미국 정부는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2,500명 이상을 강제로 불임화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우생학위원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수백 명의 흑인 여성들을 불임화했다. 지금까지 이 불임화가 끝나지 않았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서 150명에 이르는 여성 재소자들을 본인 모르게 불임화 수술을 감행했다.
‘흑인은 인간보다 낮은 종’이라고 믿은 루이 아가시 동상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을 ‘몰살’시킬 것을 촉구하며 전국을 누볐던 데이비드 스타 조전의 이름을 딴 ‘조던 홀’이, 미국의 과학사원인 국립과학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길목에 우뚝 서 있고, 스탠퍼드대학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나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데이비드가 경로를 이탈한 지점, 그가 방향타를 파멸로 이끈 사건, 혹은 개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의 인생의 장들을 배를 타고 태평양을 가로지른 여행부터 에덴동산, 불루밍턴에서 있었던 화재, 뉴욕 북부에서 보낸 소년 시절 별이 총총했던 밤들까지 하나하나 훑었다. 한해 한해 그의 이야기를 채로 거르고 차곡차곡한 만남들과 물고기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루이 아가시가 젊은 데이비드의 정신에 관념의 씨앗 하나를 심어놓은 순간에 다다랐다. 그것은 자연 속에 사다리가 내재해 있다는 믿음이었다. 자연의 사다리,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까지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의 관념이 데이비드의 세계를 다시 건축했고 그것은 폭발적인 목적으로 가득 채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가 쇠퇴해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생각했을 때,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인류를 구출해야 한다는 소명을 느꼈던 그 데비비드는 자연의 질서에 관한 믿음을 칼날처럼 휘두르며 인류를 구원할 가장 건전한, 아니 유일한 방법이 불임화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믿음을 싫어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사다리에 관한 관념을 고수했다. 다윈이 생명은 신의 계획이라는 관념이 허상임을 폭로했을 때, 데이비드는 지구상의 피조물들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생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시간이고 이것이 더 나은 지적이며 도덕적으로 진화된 생명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생학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법률을 폐기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감정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일축하며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인간을 맨 꼭대기 계층구조에 두기 위해서는 무리한 곡예를 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큰 뇌를 갖지도, 가장 빠르지도, 가장 힘이 세지도, 번식력이 가장 좋다고도 할 수 없다. 한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하고 도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새롭게 나타난 생물도 아니다. 이것이 다윈이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범위 자체가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그것이다. 사다리를 반증하는 증거들이 이렇게 쌓였는데도 데이비드는 왜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 아마도 그의 믿음은 진실보다도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까지 그가 그렇게 맹렬하게 비전을 수호한 이유는, 그 때문에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나도 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데이비드의 자서전을 덮었다.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중요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민들레 방식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로 간을 해독하며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에게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주적 정의의 감각 같은 건 그 까칠하고 무의미한 조직 속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을 만큼 야멸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다. 우리의 바닥 모를 혼란한 세계는 소매 속에 또 하나의 속임수를 감춰두고 있다. 데이비드가 질서를 파괴하고, 이 세계가 마침내 그의 물고기 컬렉션을 단박에 허물어뜨린 그 은근하고 음흉한 방식으로 잔인한 짓을 하도록 자연이 그의 손으로 그 일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와 분류학자들은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커튼 너머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 놓은 선들 너머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다윈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던 땅, 분류학자들이 볼 수 있었던 땅,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더 풍요로운,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을….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는 이 인용문을 나는 여러 해 동안 내 방 벽에 붙여 두었다. 라디오 프로에 나온 지도자라는 저명인사가 말했다.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고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것은 ‘그냥 과학의 문제’라고.”낄낄거리며 아무 문제 없다는 투로.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
이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두 대학 모두 학생들과 임직원, 교직원, 졸업자들이 항의 편지와 기사, 온·오프라인 시위로 항의한 결과 내려진 결정이었다. - 2023.10.1.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