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 충동과 문화 의식의 대극에서
동물 본능이나, 인간 의지의 어느 한 쪽이 중시되고, 나머지는 억압, 기만되는 것이 아니고,
근육 운동에서 굴근과 신근의 수축과 이완이 서로 맞서지 않고 조화로울 때, 원할한 운동이 가능한 것처럼,
본능 충동과 문화 의식이 조화로운 길항으로 창조적인 생명 활동을 영위하게 된다.
리비도(본능, 욕구, 충동, 욕동)가 생명 활동이 순조롭도록, 정신과 외부 세계로 조화롭게 흐르지 않고,
하려는 의지와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충돌하여 저항(갈등)이 생기면,
어느 한 쪽을 부정하여 억압하거나,
어느 한 쪽의 움직임을 간과, 축소, 무시, 외면하여 기만하여,
심인성 장애의 출발점이 되는 퇴행regrssion(수축, 퇴거)이 생긴다.
퇴행은 항상 정신적 과거로 유도된다.
아이는 자신의 고유한 본능을 부모의 영향과 구분할 수 없기에, 지금의 갈등과 그 때의 갈등이 유비된다.
퇴행이 유년기 이전, 출생 전 단계까지 계속되면, 육신의 부모가 아닌 원초적인 원형적 상이 나타난다.
아이는 저절로 본능이나 원형상을 육신의 부모에 투사한다.
따라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가 자신의 기질과 원형상의 내용에 따라 각기 다른 부모를 기억하고,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다.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연인에 실망하듯, 자신의 원형상의 내용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한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부조화의 한 징후다. 이러한 부조화, 갈등이 있어 비로소 투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융이 예로 든 밀러 양의 경우는, 성애적인 리비도 저항(갈등)에서,
외부 대상, 노래하는 선원을 향한 성애 리비도를 기만하여,
리비도가 내향으로 퇴행하며, 환상적 대체물, 하늘의 영적 고귀한 아즈텍 인물상이 등장한다.
만약, 저항이 의식된 외적 어려움이라면, 리비도가 막혀서 불어난 결과, 역시 환상이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장애를 극복할 계획이 수립될 수 있다. (외부를 변형하는 창조물이 생성된다)
외부 대상이 모자라고 미흡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악조건은 오히려 리비도의 분발을 촉진한다.
리비도는 상징 활동을 통해 외부 사물과 인간을 생기있고 아름답게 창조한다.
이 작용이 멈춘 사람에게 세상은 공허하다.
정체된 리비도는 외부 대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을 낳고,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밀러 양의 사랑은, 지상의 인간이 무시되고, 하늘의 영적 환상체로 대체된다.
억압된 리비도, 충동은 곧잘 동물(의 충동)로 묘사된다.
의식이 무의식에 부정적일 때 동물은 불안하다.
적대적으로 억압하면 포악하게 날뛰고, 너무 오래 무시하면 병들어 우리에 갇힌다.
의식이 무의식과 조응할 때, 꿈의 동물은 생기를 찾고 사람을 돕는다.
이들 변화를 위해 외부 대상을 향한 간구와 기도는 유효하다.
활동을 의식에서 꺼내 간구를 통해 내부의 어떤 곳에 옮겨놓는 행위로써,
종교적으로 신(신상)이 의식의 활동성과 자발성을 넘겨받아 이루어 주리라는 기대는 충족된다.
심리학적으로 간구를 통해 리비도에 집중하면, 원형상이 생기고, 이 원형상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킬 내용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융 기본저작집 8, 영웅과 어머니 원형)
첫댓글 욕망과 욕망없음은 같은 병이다, 같은 번뇌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욕망을 억압 기만 회피할 게 아니라 적절히 표현되어야 하는구나.
그래야 인용하신대로 삶이 공허해지는 대신에 인간이 생기있고 아름다워 지는구나..
그런데 욕망없음의 상태에서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니.^^
그런데 글에 첨부된 이 단순한 그림이 아무래도 너무 강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