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gh tide will come, I will go out to the sea. (반드시 썰물이 온다. 그때 나는 바다로 가리라.)
철강 왕이며 자선가로 유명한 앤드류 카네기의 사무실 한 쪽 벽에는 아주 낡고 묵은 커다란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은 유명한 작가의 그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오래 된 골동품 가치가 있는 그림은 더 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카네기와 일생을 같이 한 그 사람의 좌우명과 같은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내용인즉 커다란 나룻배 한 척이 썰물에 좌초 되여 모래사장에 아무렇게 나둥구러 저 있고 배를 젓는 노가 힘없이 뱃전에 걸려 있는 모습이었다. 얼듯 보면은 아주 절망스럽고 처절하게 까지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의 밑에는 아주 선명하게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글 구절이 쓰여 있었다. 카네기에게 그 그림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그 구절은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든 것이다
카네기가 젊었을 시절에 한 때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에 그 집의 대청마루에 이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늘 그 그림을 생각하며 행상을 하던 카네기는 28살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다시 찾아 가서 용기를 내어 청을 드렸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이 그림을 저에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잘 보관하며 그 좌우명을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은 젊은이의 청이 갸륵하고 마치 자기가 못 이룬 뜻을 그 젊은이가 대를 이어 이루어 줄 듯 한 예감이 들어 쾌히 승락을 하였다.
그래서 카네기는 그 그림을 일생 동안 소중하게 보관하였고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그 말씀을 생활 신조로 삼았든 것이다. 이후 앤드류 카네기는 (1835-1919) 밀물 때가 올 때를 기다리며 부단한 노력을 계속 하였다. 그는 록펠러같이 부정하게 돈을 모으려 하지 않았고 항상 준비된 자세로 새로운 시대와 미래를 맞이하였다. 썰물이 다 지나고 어떻게 밀물이 그의 인생에 닥아 왔는지 그의 인생 역정을 한번 살펴 보자.
◼유년시절(1835-1850)
그는 영국 스콧랜랜드(Scotland)의 가난한 베틀 집 아들로 태여 났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모두 정기 교육은 잘 못 받았어도 자수공부를 하여 상당한 교양이 있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Robert Burns 나 Shakespeare를 익힐 수 있었다. 그의 집은 1848년 (13세) 에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미국에 와서도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자수의 공부를 하였다. 주로 경제와 교양서를 많이 탐독하였는데 그의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과 투철한 능력은 곧 준비된 미래를 달리게 하였다.
◼자수성가(1850-1860)
1851년 16세 때에 주당 $2.50 전보배달원으로 첫 취직을 하였다. 2년후 에는 펜실봐니아 철도국에 주당 $4.00의 국장 비서관이 되였고 이후 급속한 승진을 하여 철도청장이 되였다. 855년에는 $600을 투자하는 기업인으로 성장해 갔다. 장거리 기차에 침대간을 설치하는 데 성공하여 상당히 돈을 벌었다.
◼남북전쟁(1860-1865)
드디어 밀물이 들이 닥치기 시작하였다. 남북전쟁이 터지자 그는 연방군의 미 동부지구 철도청장 및 통신망의 수장이 되여 진두지휘를 하였는데 이것이 연방군이 반란군을 격퇴시키는 계기가 되였든 것이다.
그의 투자확장의 계기는 계속 승승장구 하여 1864년에는 $40,000을 펜실바니아의 유전에 투자를 하였는데 일년 사이에 $1,000,000을 벌었다 하니 이는 밀물이 아니라 돈 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철강사업(1865-1900)
전전부터 조금씩 투자를 하던 철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운 것은 전후의 일이었다. 목각으로 세워진 철로의 다리보수 그리고 무한히 연장 되는 철도의 레일은 철강산업의 수요를 급부상하게 하였다. 카네기는 다른 사업체를 전부 매각하고 철강업에 전념 하였다.
이로부터 그의 철강사업은 세계 제일의 철강왕이 되게 하였고 1901년에 그가 U.S. Steel Corp.에 그의 철강재산을 전부 매각하고 자선가의 생애를 살았는데 그 때의 매각서에 $480 million 이었다니까 2007년말로 계산하면 약 $120 billion쯤이라고 한다.
◼자선사업(1901-1915)
카네기가 쓴 “The Gospel of Wealth”에서 그는 “The rich should use their wealth to help enrich society(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라고 자기의 모든 돈이 자선사업에 쓰여질 것을 선언하였다. 그는 영어권47개국의 3,000도서관에 재산을 헌납하였고 수 많은 학교와 예술의 전당을 마련하는 데에 기증하였다.
그가 죽을 때까지 뿌려진 돈은 $350,695,653 이었다는데 이는 현재 $4.5 billion쯤 된다. 그의 사후의 잔액은 약 $30,000,000이었는데 재단, 자선단체, 연금 등으로 모두 처분 되였다.
이렇게 카네기는 한 폭의 그림이 주는 밀물의 철학을 확신하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순리 속에서 그 많은 부(富)를 축적하고 우리 인류에게 그 부를 다 환원하는 아름다움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