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면 떠오르는 소녀
글 -德田 이응철
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요즘은 핵가족에 경제난, 실업난으로 독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출생율이 국가의 중차대한 이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찾아오면 늘 나는 어린 소녀를 떠올리곤 한다.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니 벌써 45년 전의 일이 해마다 내 기억의 저편에서 나를 노크한다.
춘천 석사초등학교로 부임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나? 새벽이면 배달되던 염소 젖병이었다.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검은 염소를 서너 마리 기르는 2학년 어린 소녀는 늘 학교 올 때면 새벽에 짠 우유를 몇 병씩 가방에 넣고 와서 교실마다 돌리곤 했다. 월급에서 공제한다. 인근 관공서에도 돌려 생활비로 충당한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까무잡잡한 소녀는 염소를 닮았다.
새벽이면 골덴 바지에 작은 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2층까지 올라와 우유 한 병을 조심스럽게 꺼내 던지고 사라진다.
우유를 배달하는 여식의 집은 학교 2층에서도 동쪽으로 보이는 외딴집이었다. 석사동-.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시골스럽게 학교 뒤로 과수원과 파란 연못이 있던 산모롱이 외딴집이 생각난다. 어린 여식은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다. 조손가정이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달려가 염소를 몰고 풀을 뜯기는 어린 목동이기도 했다.
네 마리의 배불뚝이 염소가 오직 그 집의 수입원이었다.
등 굽은 할머니는 어린 여식을 무릎에서 잠재우고, 부모 없이 살아 늘 혀를 차며 가엾고 안스러워 하셨다.
풀도 베어 쌓고 푸성귀가 있는 채마밭을 매고, 저녁부터 염소는 손녀 책임이었다.
배불뚝이 염소는 할머니 말은 순종해도 녀석의 말은 잘 안 듣는다고 어느 날 묻지도 않는 말을 꺼내 깔깔대던 게 생각난다. 아침이면 염소젖을 따뜻하게 살균해서 인근대학과 우리 학교, 그리고 동사무소에 배달하면 끝이다.
늘 표정이 구겨져 있다. 궁금했다. 풍문으로 듣고 섬뜩했다. 부친이 유괴범과 연류되어 감옥에 가고, 엄마는 그 후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과수원도 관리가 어렵자 그만 빚에 넘어가고, 오직 연못 뒤 외딴집엔 네 마리 염소를 키우며 등 굽은 할머니는 여윈 가슴으로 손녀를 껴안으며 고된 삶을 숙명처럼 맞으며 지내는 형편이란다.
처음 대한 소녀는 말이 없다. 그저 낡은 가방에서 새벽에 짠 우유 한 병만 내려놓고는 꽁지가 빠지게 사라지곤 했다. 녀석과 부쩍 가까워진 것은 조선일보 그림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면 마음의 창을 열게 되었다.
연못가에서 염소와 뛰놀며 풀을 뜯던 그림-. 단연 수작이었다. 순회 전시되면서 소녀의 작품은 아동화 권위자에게 큰 칭찬까지 받았다. 경직되어 말도 안 하던 녀석은 날이 갈수록 웃음도 거품처럼 일기 시작했다. 배달때면 나는 급히 서랍을 뒤져 남은 빵들을 가방에 넣어주곤 했다. 수줍던 녀석은 흰 이를 환히 보이며 6학년 언니 오빠들과 제법 대화도 나누고, 묻지 않는 집안 얘기도 서슴지 않게 두런두런 꺼내놓기 시작했다.
고희(古稀)를 넘긴 할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 손녀딸에 의지해 굽은 등 한번 펴지도 못하고 살아가신다.
염소 네 마리를 끌고 오는 손녀가 대견해 다독이며 불쌍한 손주라고 입버릇처럼 머리를 쓰다듬는다.
염소젖은 우리 인간의 젖과 가장 가깝다는 것도 그 꼬마한테 처음 들었다. 동사무소에 배달가서 들은 이야기라고 꼬마는 혼잣말처럼 내게 자랑이라도 하듯 들려주어 알게 되었다.
녀석은 오늘도 뒷꿈치를 들고 살며시 곁눈질을 하며 6-1반 출입문을 열고 배시시 인사를 건넨다. 귀엽다. 싱싱한 염소젖병과 어떤 때는 들꽃도 몇 송이 놓고 간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오지 뚝배기 하나를 사다 놓았더니 연못가 창포와 핫도그처럼 달린 물풀을 꽂아놓으며 그리 좋아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어린이 날에 담임선생님께 건의해 특별히 효녀상까지 수상하기도 했다.
어린이야말로 오염 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이다.
자연 속에서 어느 아침엔 산딸기도 따오기도 하고 뱀딸기도 내 책상 위에 한 줄로 길게 늘어놓고 간다. 예쁜 짓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을 눈으로 손으로 떼어놓고 가는 소녀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 끝자락인 봄방학 전이었다. 봄의 기운이 제법 스멀거리는 어느 날-. 책상 위에 우유가 배달되지 않았다. 늦게 배달되는 때도 있어서 이때나 저때나 하고 기다렸지만, 기다린 우유는 오지 않고 아뿔싸! 귀를 의심케 하는 비보가 학교 전체를 먹구름으로 발칵 뒤덮이는 게 아닌가!
말도 안된다. 배달하던 외딴집 꼬마녀석이 간밤에 연못에서 앉은뱅이 스케트를 타다가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아니야 거짓말이면 좋겠다. 모든 선생님께 신선한 우유와 미소를 퍼주던 꼬맹이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망연자실하였다. 결국 참지못해 선생들과 점심 때 그리 멀지 않은 외딴집을 찾아갔다. 겨울이 서성이고 있던 골짜기 연못가는 소녀를 삼키고도 능청스럽게 외면하고 있었다. 해빙 무렵이다.
집 앞, 연못 옆에는 소녀의 옷을 태우며 노파가 구슬피 울고 계셨다. 할머니였다. 소리내어 울다 지쳐 목이 쉬어 맨땅에 주저앉아 오열하던 모습은 아마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노파의 울음은 피눈물이다.
작은 손녀딸에 의지하며 유괴로 이웃마저 등을 돌렸지만, 세상만사 어린 것과 말동무하며 염소풀을 뜯어 힘겹게 자루에 넣고 손녀를 기다리던 할머니-. 피득피득 타는 청솔가지를 뒤적이며 오열하고 계셨다. 연못이 우리 애기를 앗아갔다고 마구 외치는 노파의 통곡에 당도한 선생님들도 위로 한마디 못한채 저마다 눈물을 쏟아내며 말이 없었다.
노파의 울음은 그 어느 울음에 비할 수 없는 피눈물이었다.
주름진 골골마다 눈물이 흐른다. 한평생을 같이 동고동락 하던 작은 연못(沼澤)이 왜 착한 꼬마의 넋을 앗아갔을까?
배신이었다. 자연도 배신을 하다니-.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꼬마, 어린 나이에 엄마의 포근한 가슴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가출한 엄마가 그리울 때면 연못가를 서성거렸겠지, 염소 풀을 뜯기며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엄마를 그렸을 것이다. 친구처럼 기대 살던 자넨종 염소들도 영문을 아는지 어둠이 번지는 연못가에서 매-매를 하며 몸태질을 하고, 앞산이 무너져라 짖어대는 검둥이 역시 컹컹 슬픔을 토하고 있었다.
해빙이 되면서 하늘에 올라가 작은 별이 된 어린 소녀가 해마다 어린이날만 되면 제일 먼저 다가온다. 지금까지 살았으면 40이 훨씬 넘은 중년 여성이었으리-. 어린이날이다. 코로나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어린이 날-.그 때에 비해 이젠 갑절로 비대해진 춘천교육대학교 곁에 석사초등학교 뒷길-. 늘 나는 이 길을 주시한다. 너무 서둘러 천상에 간 꼬맹이는 지금 어느 별이 되어 하계를 굽어보고 있을까? 과연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줄까? (끝)
첫댓글 가슴이 저려 오는 슬픈 내용의 글을 단숨에 읽고 속 울음을 울었습니다.
소녀의 애달픈 죽음이 가엽습니다.
잘 읽고 감동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ㅡ못다핀 꽃한송이가
내내 가슴을 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