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지역 기독교 유적지 - 3,
철원제일감리교회
24, 11, 07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의 중간지점인 철원군,
석재골격만 남아있는 노동당사와 인접해있는
'철원제일감리교회'는
1905년 미국북장로교회
웰번선교사에 의해 철원읍장로교회로 출발했다.
1907년 선교지 분할협정에 따라
미국남감리교회로 옮겼다.
당시 경원선 열차공사와 철원평야의 개간 사업으로
교인이 증가되었고,
1909년경 김철회 성도의 헌신으로
현재의 위치에 예배당과 '배영학교'를 완공하여
선교와 신식교육을 지역에 알렸다.
1937년 9월 30일에 당시 일본의 유명한
건축 선교사 보리스(W.M.Voris)가 설계하여
1,020평 대지에 석조 고딕 건물로
건평 198평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예배당을
화강암과 화산석 벽재로 건축했다.
당시 교인은 500여명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 1940년 9월에
담임 강종근 목사가 신사참배거부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교 당한 아픔이 있다.
해방 이후 3.8 이북이라 공산 치하에 있다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때는
예배당이 공산군의 막사와 병동으로 사용되어서
1.4 후퇴 시기인 1950년 12월 24일에
UN군의 폭격으로 예배당이 폭파되었다.
비록 지붕은 없어졌지만
예배당 입구 현관에 들어서면 바닥의 색타일이며
2층 예배당으로 오르던 계단 흔적이 남아 있어
일제 강점기 경기 북부에서 제일 아름다웠다는
건물의 위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철원 장흥교회 이금성 장로가 일본에서
극적으로 당초 설계도면을 찾아내었다.
이후 폐허로 남아있던 예배당은
2002년 5월에 등록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복원예배당
2013년 10월에 전국의 감리교인들이 동참하여
파손된 예배당 옆에
복원기념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체험할수 있는 장소다.
[참고] ★교회탐방 126(철원 제일 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