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하다보면 한번씩 회의에 빠질 때가 있다.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은 좌절과 실망, 치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치유되고 있는거 맞아? 예전에도 이랬는데 치유증상인거 맞아? 치유되는게 아니라 더 심해지고 있는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잘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안되는 건가. 내가 문제있는건가?
초기에는 치유중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고, 치유의 자연스런 한 부분이며, 각자마다 치유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해만으로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치유가 진전되면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감정은 머리로 이해한 것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기성을 부린다. 이 지점에 이르면 "알았으면 고만 할 것야지 왜 또 그러냐"는 자기비난까지 더해져 혼란이 가중된다.
역설적이게도 치유에 대한 회의가 잦아드는 것은 감정적 혼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반복되는 감정적 혼란을 허용할수 있게 되면서 부터이다.
감정을 허용하면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왜 이런 감정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고통을 부모조차도 알아주지 않았고, 나 또한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에 없겠다는 것을.
이런 경험을 계속 하다보면 회의감과 좌절을 겁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 감정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긴다.
회의감 또한 치유의 대상이었다는 것, 내면아이의 두려움이었다는 것, 지속적으로 반복될 만큼 깊은 상처였겠다는 이해와 함께, 담담하게 바라보며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위로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치유에 대한 회의나 좌절감은 일반적인 현상이고, 치유의 자연스런 한 부분"이라는 원론적인 말이 진실로 와닿으면서 치유에 대한 믿음이 가슴한켠에 자리잡는다. 앞으로도 회의감은 계속 될 수 있겠으나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다는 약간의 자신감?, 해 냈다는 뿌듯함이 치유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희망이 더 깊은 치유로 이끌어 준다.
사실상 치유여정이란, 감정적 혼란과 정돈이 반복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알고 있는데도 매 순간마다 휘청이기도 하고, 빠른 치유기대가 있는 분들은 쉽게 좌절하고 방황하기 쉽다. 어떻든 이런 혼란은 치유의 길 위에 있는 이상 치유가 안되어서도, 잘못해서도,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한번 말하면 딱 알아듣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목소리, 관심, 공감이 절실했을 때마다 외면하고 꾸중만 했던 부모의 차가웠던 태도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로 내면화 되어 버렸던 것일 뿐이다.
알았으면 제대로 해야 할것 아니냐는 자기비난이 너무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그때마다 나의 감정과 내면화된 부모의 목소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것일 뿐인거다. 어린시절 학대적인 훈육으로 인한 좌절, 혼란, 고통이 치유하라고 떠올려진 것일 뿐인거다.
평생을 그 목소리에 압도되고 지배되어 살아왔는데, 쉽게 사라진다는게 이상한 거다. 사소한 다툼으로 상한 감정도 하루 종일, 때로는 몇날 몇일씩 가는데, 평생 고통받은 감정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니까 빨리 치유안된다는 회의나 좌절감이 올라올때는, 왜 제대로 못하냐는 부모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괜찮다고 얘기해 주자.
무엇을 하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대로 못했다고, 잘해도 잘못해도 기분에 따라 칭찬했다, 꾸짖었다 하는 일관성없었던 부모 때문에, 어린 내가 얼마나 햇갈리고 혼란스러웠을지를 알아주자.
이제는 더 이상 비판적인 부모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지켜주겠노라, 보호해 주겠노라 내면아이에게 약속해 주자. 그래야 많은 혼란이 줄어들고, 내면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치유여정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