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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하의 개요 - 분열왕국시대의 구원
열왕기하 25장 1절
시드기야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열왕기하 25장 7절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열왕기상, 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분열왕국 이전과 이후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의 분열과 멸망의 기록이다.
전반부는, 솔로몬과 그 아들, 르호보암의 왕 노릇,
후반부는, 여로보암과 아합의 왕 노릇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즉, 분열왕국의 시대와 멸망의 기록이 주된 내용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분열을 허락한 것은 다름 아닌 구원의 의미를 내포한다.
지혜를 통해 왕 노릇하는 자들로부터의 종노릇의 해방, 또 다른 구원이다.
이는,
애굽에서의 구원,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
로마로부터의 구원과 같은 외부적 세력의 환경과 요소들로부터의 구원만을 구원이라 여기는 모든 관심과 방향을 재설정해 준다. 구원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을 구원이라 믿고, 가르치고 있는 어리석음에 대한 깨우침이다.
왕 노릇의 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가진 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그 지혜를 탐하여 스스로 종 되기를 자처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이러한 지혜를 가진 자들로부터의 종노릇에서 해방되는 것이 분열의 시대였고 분열을 허락한 것이 여호와였다.
또 다른 여호와의 구원의 때를 맞이한다. 특정한 계층과 부류들에게 국한 된, 한 사람의 왕 노릇이 아닌, 이제 너뿐만 아닌, 나 역시 왕이 될 수 있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다만,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은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맞춘다.
열왕기상, 하를 크게 보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의 왕 노릇과 가장 악한 아합의 왕 노릇으로 양분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은 전무후무한 영광과 평강의 때인 솔로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죄로 인해 멸망을 향해 치닫는 불행의 때였던 아합,
그래서인지 솔로몬의 왕 노릇은 아합의 왕 노릇과의 비교 대상에서 항상 좋은 평가와 평점을 부여받는다. 비고 자체를 불허한다.
흔히,
이스라엘의 찬란한 부와 영광을 구가했던 솔로몬의 시대를 평안의 때로 오해한다. 그리고, 아합의 시대를 가장 불행했던 이스라엘 역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분열의 빌미가 되었던 솔로몬 시대에 계속되었던 성전과 왕궁, 그리고 국고 성들의 건축과 그 성벽들의 보수는, 백성들에게는 막대한 재원의 조달과 과중한 세금으로 부과되었다. 그로인한 힘겨운 노역은 외형적 영광에 묻혀 심각하게 거론되지 않는다. 평안의 시대 뒷면에 가려져있던 불행한 시기였다.
사무엘을 통해 경고되었던 왕의 제도, 그 정점에 있던 솔로몬, 그 자신만의 왕 노릇을 위한 모든 백성들의 존재가치는 종노릇뿐이었다.
이는 왕 노릇 시대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폐단이었다.
하나님의 지혜를 빙자한 한 사람의 왕 노릇을 위해 모든 사람이 그의 종노릇을 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현실, 하나님 말씀의 지혜의 가진 자를 위한 또 다른 종노릇의 때였다. 지혜와 지식을 가진 자들을 위한 종노릇의 시대다.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과 왕궁을 건축,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각종 성전 세와 세금들, 그리고 그것들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끝없는 봉사와 노역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예라 포장되고 강요되어진다.
이를 두고, 어찌 평안의 때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솔로몬,
한 사람의 평안을 위해 모든 사람이 날마다 괴로이 일하는 불행의 시대였다.
오히려,
아합의 시대야말로 태평성대의 시대다.
솔로몬의 부과하고 짊어지게 했던 막중한 세금과 노역에서 자유롭게 하였다.
모든 백성들의 요구대로 살게 하며 그들의 뜻을 따라 자유롭게 산당과 우상들을 세우며 자신들을 위한 신을 만들어 섬기며 경배하게 한다.
누구나 원하면 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한다. 신의 간섭으로부터 놓여나게 허락하였다. 자기의 입맛대로 신을 골라 섬기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다.
종교적 자유,
그들만의 예배적 방식의 고안, 이를 두고 성경은 온 나라와 백성들이 음란하며 음행한다 하였다. 세상과 사람으로부터의 모든 좋은 것을 교회가 흡수한다.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 모든 제사와 예배는 무시되거나 폐지된다.
그들의 악행을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다.
육체로 살기에 가장 좋은 편안한 때가 바로 아합의 때였다.
인생들이 꿈꾸는 가장 행복한 때는 솔로몬의 시대가 아닌 아합의 때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죄의 욕구다.
모두에게 허락된 왕 노릇 시대에 나타나는 자기 하나님, 자기세계, 자기종교, 자기 예배의 방식들의 고안이요, 만들어냄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본 떠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우상숭배의 향연장이 되고 만다. 예루살렘 성전은 장사의 소굴이 되고 음행의 축제장이 되고 말았다.
다윗이 평생토록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의 탈피다. 해방이었다.
이제껏, 여호와의 하나님으로부터의 분열왕국의 허락은 구원의 측면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로보암을 앞세운, 지혜가진 자들을 향한 힘없는(지혜 없는) 백성들의 소박한 요구, 감당할 수 없는 세금과 노역의 감면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위한 예물과 조공의 감면을 요구한다.
당신의 아비인 솔로몬과 당신이 누리고 있는 그 영광과 평안을 우리에게도 조금 나누어 달라는 작은 소망의 바람이었다.
여지없이 묵살당한 만민의 뜻,
애굽의 바로보다 더 혹독하고 잔인하게 진행될 종살이의 괴로움에 대한 불안의 엄습함은 그 애처로운 백성들을 떠나게 한다.
이로 인해 북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분열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님의 생겨남, 다른 예배의 처소, 다른 방식의 제사, 상상 할 수 없는 각종 우상의 시대를 예고한다.
형제의 것을 빼앗고 죽이기 위한 싸움, 스스로 공멸할 멸망이 다가온다.
결국,
솔로몬의 지혜는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선물하지 못했다.
그 지혜 가진 자 아래에서는 자신만의 영광과 평안을 위해 모든 자가 희생물이 되고 만다.
북이스라엘의 분열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한 해방, 구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했다.
이스라엘이 바로의 손, 육체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었던 것처럼,
솔로몬의 손, 지혜가진 자들을 위한 왕 노릇에서 해방, 구원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또 다른 구원의 날이었다. 지혜의 말씀을 내는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지혜가 주는 달콤함에 취해 자신이 종노릇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육체의 종노릇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지혜(하나님의 말씀)가진 자의 종노릇이다.
결국,
여로보암의 선택은,
이스라엘에게 지혜가진 자들로부터의 벗어남, 곧 여호와의 구원을 대변함이었다.
한 사람의 왕 노릇이 아닌 모두가 왕 노릇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솔로몬이 가지고 있지 않은 평안을 선물한 것이다.
다만, 여로보암과 그 백성들의 행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것은 이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참뜻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지혜를 가진, 왕 노릇 하는 자들로부터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것은 단순히 그들이 지고 있던 각종 세금과 노역에서 벗어나 얻은 백성들의 쉼, 평안이 최종목적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에 그치고 만 것이다.
한 사람이 소유한 지혜가 가져온 불행한 결과,
한 사람의 왕 노릇을 위한 모든 사람의 종노릇,
그로인한 영광, 사치와 교만은 여호와를 잊고 버렸다.
분열,
열 조각을 찢어 빼앗아 나누어줌은,
한 사람의 가진 지혜를 나누려 함이요, 그로 인해 모두가 왕 노릇하게 하려는 여호와의 구원이었다.
각종 우상과 음행으로부터 여호와의 선한 길을 분별하기 위해 허락된 분열이었다.
곧, 시작될 거짓 선지자들의 창궐로 인해 우상과 음행의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너도 나도 여호와의 보시기에 선한 길로 행하면 솔로몬이 가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지혜가 아닌 계시와 예언을 통해 비밀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터였다.
지혜 가진 자에게 종노릇하였던 너도 왕 노릇할 수 있게 된 길이 열린 것이다.
한 사람의 왕 노릇을 위해 더 이상의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내가 할 일은 여호와의 보시기에 선한 길로 행하는 것뿐이 없음에도 여로보암은 혼탁한 눈은 여호와의 의중을 알지 못한다.
열왕들의 시대엔,
선지자로 살기에는 가장 힘겨운 때를 맞이함이다. 잔인한 선지자들의 환난과 핍박의 때였다. 엘리야를 세례요한이라 하였던가!
그가 하려던 일, 그리고 목 베임을 받은 세례요한,
엘리야의 권능만을 탐하는 인생들,
불 병거(수레)를 타고 승천만을 꿈꾸는 악한 인생들,
엘리야의 벗어던진 겉옷을 주워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 속물 같은 선지생도들,
자신이 남겨둔 칠 천인의 한 사람임을 내심 소망하는 어리석은 인생들,
세례요한의 목 베임을 각오하지 않는다. 어찌하여 엘리야가 승천 전,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강을 지나야 하는 지를 생각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랬던가!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을 벗어주라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가 벗어던진 겉옷은, 이제 하늘로, 아버지께로 올리워 감을 위함이었다. 변화 산에서의 모세와 엘리야 무엇을 서로 나누었던가!
엘리야를 통해보여 주는 극단적 상황은, 열왕들의 시대가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가를 대변한다. 여호와께서 설정한 분노의 수치를 넘어 극에 달하는 심각한 신앙적 위기 상황을 예고한다.
멸망이 홀연히 문 앞에 이르기 전,
걸어야 할, 찾아야 할 하나님의 산 호렙산,
그리고 벧엘과 여리고, 요단강은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걸었던 동일한 길을 엘리야는 반대로 걷는다.
회개란,
참회란,
이제껏 걸었던 길의 반대 길을 향함이다. 그렇게 걸으며 되씹는다. 그리고 확인하고 되새긴다. 여호와가 내게, 당신께, 우리에게 어떻게 하였던가?
그리고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그리고, 떠난다, 홀연히 이 세상과 이별한다. 겉옷을 벗어던진다.
선지자로 의롭게 살았던 자기의 그 義마저도 벗어던진다.
여호와를 빙자한 닮은 각종 신으로부터 도망친다. 그 우상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음행하는 이스라엘로부터 도망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종교적 만행으로부터 멀리 벗어난다.
그래야 올라간다. 그 인생의 수레바퀴를 타고 왕 노릇하였던 때를 지나, 여호와 하나님의 불 병거, 수레바퀴를 타고 인생들이 벗어날 수 없는 수레바퀴, 굴레에서 도망친다.
하나님의 수레바퀴를 탄다. 영원한 생명의 굴레에 올라타게 된다.
그러나,
너도 나도 모두가 위기를 인지하지 못한, 가장 지내기 좋은 아합의 시대를 산다.
열왕기상하의 주제는 이렇다.
분열왕국 전,
* 네 아비(아들)가 죄를 범하거든 그 아들인 네가 어떻게 할 것이냐?
= 네 아비의 죄(길)를 따라 갈 것이냐?
여호와의 길을 따라갈 것이냐?
곧, 아비의 죄에 대한 여호와의 물음이다.
아비의 길과 여호와의 길이 놓였다. 너는 어느 길로 행할 것이냐를 묻는다.
대개는 여호와의 길이 아닌 아비의 길을 선택하여 걷는다.
의는 죄보다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분열왕국 후,
* 네 형제제(이웃)이 죄를 범하거든 그 형제 된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 네 형제가 죄를 범하면 너는 그 형제의 죄에 관하여 책망할 것이냐 내버려 둘 것이냐?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은 형제가 가진 은사나 복으로 받은 소유물이 아니다.
서로가 여호와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려하는 선한 싸움이다.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더렵혀진 유다와 이스라엘,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원수로 삼아 경건한 제사와 예배를 빙자하여 성전을 옮기며, 백성을 빼앗으며, 소유물을 약탈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던가!
거짓선지자와 이세벨의 음행으로 더렵혀진 서로들,
그 형제들의 죄를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할까!
형제의 친구가 되는 일, 같은 하나님, 그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였던 그 형제의 죄와 악함을 위해 엘리야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너도 나도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가졌다며 교만하여 왕 노릇하는 지금,
선지자의 그 어떤 책망과 권고도 듣지 않는다.
여호와의 선한 길을 걸었던 아비와 조상들, 거룩한 형제들의 권면을 받지 않는다.
의롭고 깨끗한 자가 아무도 없다.
유다여, 이스라엘이여, 함께 멸망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아비가 걸었던 길이 여호와의 길이었는지 죄의 길이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형제의 길을 돌아봐야 했다.
혼자, 걷는 길은 義로운 길이 아니다.
너와 나 우리의 역사가 된 고귀한 신앙적 유산을 다른 세대에게 물려주는 일,
한 형제였던 그 형제를 보살피지 않는 왕 노릇은 실패한 왕 노릇인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 열왕기상, 하의 기록이다.
분열,
각 사람의 왕 노릇은 이를 위해 허락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