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재회
50년 만에 만나게 될 제자들 생각에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10세 안팍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을 60대 초중반이 되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주부터 아내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고
참고 자료를 수집해서 복사하고...
선생의 산수연을 위해 서울,익산,목포,광주에서 찾아오는 제자들,
종심이, 예자, 예순이, 인숙이, 수정이,현주,일용이,용태,정희...
오찬장 센트럴 진 한정식. 아내와 미리 나섰다.
반가운 얼굴들, 지금까지 어렵게 살아온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깔깔대며 웃고, 훌쩍이고... 나도 몇 차례나 눈물,콧물을 훔쳤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사조처럼 굳굳하게,슬기롭게 살아온
그네들이 장하고 기특하고 대견하게 보이면서도 짠한 마음이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오찬이 6시 넘어 주인이 저녁 영업 준비를 위해 채근할 때에야
아쉽게 일어섰다. 금년 중에 함께 그리운 외병도에 가기로 약속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남은 생애만은 보다 건강하고 행복 또 행복하기를...
첫댓글 이세상을 살아 가는일 간단하게 따지자면 하루 세끼 먹으면서 일하고 잠자고~~ 하지만
그 안에는 단 하루도 한순간도 그저 지나는 일없이 희노애락이 교차하지요~
코흘리개 외병도 새카만 예자가 이제 회갑도 지났으니 중후한(?) 아지매가 되어 이제야 외병분교 동문들과 그립고 존경하던 조춘기 선생님과 천사려니 흠모했던 안옥자 사모님을 거의 반백년만에 만났지요~~물론 선생님은 종종 주례 서시고할땐 잠깐씩은 얼굴만 뵙긴했지만요~
건강을 잘 유지해오신 선생님과 아직도 소녀처럼발그레한 살아오신 세월보다 정말 10년은 더 어려보이는 울싸모님 모습은 정말 저의 마음을 기쁘게 하셨어요~
이어서 적습니다
돌아가신 아부지와 엄마를 만난듯 참으로 따슨마음 그러나 저는 아가처럼 자꾸만 눈물이 나서 선생님 목을안고 아앙아앙 울고말았답니다 ~
사람이 나이가들면 눈물이 많아진다지요~ 그점도 작용 했겠지요~ 그러나 저에겐 더큰 이유가 작용했답니다~ 2년전에 소요산에 올랐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우리 큰오빠 한종이오빠가 생각나서 오랫만에 만난 선생님 사모님 동문들 마음까지 아프게 자꾸만
이어써요
울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한종이오빠가 참 똑똑했대요 6학년때 교육감상을놓고 치열한 공방이 있었대요 본교에서는 분교 학생에게 절대로 교육감상을 줄수없다 우리 선생님은 그때 20대후반이셨고 내 제자에대한 자신감도있으셔서 제안을 하셨대요 그럼 좋다 교실이아닌 운동장에서 정정당당히 실력을겨루도록하자 그결과 한종이오빠가 약 30점차로 최고 점수를받아 어떤 불평 본교서 못하고 교육감상을
이어서써요
받았대요!!! 전 처음 알게된 일이랍니다 ~~
분명 동문들이 선생님 만난다면 제일 첫번째로 설치고 앞장섰을 오빠! 치열하게 애쓰며 힘들게 살았던 한종이 오빠가 생각나서 지금도 하염없이 눈울을 흘리며 이럭하고 있어요~~
선생님! 사모님! 사랑해요!
항상 지금처럼 우리곁에 그 모습 그 모양으로 존재해주시어요! 다른건 필요없어요~ 그 모습 만으로 우리에겐 든든한 지원군이요 우리가기댈 부모님이세요!!
감사합니다!(뭐라고 제대로 썼는지 맞춤법은 선생님이 옛날에 갈쳐주신대로 썼는지 잘모르겠네요 전 흥분하면 정신 없거든요)
선생님그리고사모님정말감사했습니다.지난주말은즐겁게웃고반가운덕분인지기적같이허리도무릎도아프지않고몇시간동안보낼수있는귀한자리였어요.정말건강하셔서감사하고부모님같이든든하게마음을기댈수있어서감사하고또우리들의얘길다들어주시고이해해주셔서감사했습니다.더건강하시고다시뵙는시간기대하면서기도하렵니다.선생님,사모님사랑합니다.
예자,예순이 너희들의 글을 오늘 아침에야 읽으면서 또 눈시울이 흐려져서 한참 후에 다시 읽곤 했다. 집사람도 읽고 나더니 복사해 달란다. 친구들 모임에 가서 읽어주겠다고.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감동적이라고. 예순이 벌써부터 허리,무릎이 안 좋아서 어떡할까?
선생님! 제가 핸드폰으로 댓글 다느라 300자 한계땜에 복잡했는데 여기 노트북 보니깐 없어졌던것도 올라와 있네요~~ ㅎ ㅎ 다행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