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출생하고 80년대의 유년기를 거쳐 90년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20대의 쿤데라가, 스스로 문학소녀라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쿤데라가, <7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고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살아남은 40대 문학소년의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유서로, 살림 출판사, 1993.
오태강님의 거침없는 글 - 살아남은 자의 슬픔류의 잡다한 쓰레기가 아닌 진정 살아남음을 부끄럽게 느끼게 하는 작품.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쿤데라의 감상은 - 엉거주춤 정의로움?!.?
엉거주춤 정의로움 뒤에 감탄사 네 개를 찍어 넣습니다.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다시 물음표.
이 감탄사 하나 하나를 짚어보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대한 감상을 주절주절 읊어볼까 합니다.
**** 물음표
작가는 처음부터 고백한다. 나는 아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2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으므로-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긴 하나 알,짜,배,기,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정의로운 앞에 엉,거,주,춤, 이라는 단어를 꼭 넣어야 되는 <엉거주춤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서, 쿤데라는 엉거주춤 정의로움 뒤에 물음표를 찍어 넣는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류가 쓰레기라며? 헌데, 이 책은 진정 살아남음을 부끄럽게 한다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쓰레기인 건 <슬픔>이라는 말로 포장한 자기변명, 그래도 나,름,대,로,는, 꽤 치열했었다는 자기과시 때문일 거라고 지레짐작한 쿤데라로서는 <엉거주춤 정의로움>이라는 말에 물음표를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엉거주춤 정의로움? 뭐 별반 다를 거 없겠네?
*** 느낌표
책읽기의 속도를 부쳐가며, 엉거주춤 정의로운 문학소년과 함께, 고교시절 어설픈 잡종선언?을 하고, 숙희를 만나고, 갈등하다 도망치듯 군대에 가고, 인혁당, YH사건, 그리고 광주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린다. 대검으로 찔렀다. 발가벗겨 매달다. 유방 도려내다. 임산부 배 찢어발겼다. 등등의 핏빛 낭자한 글도 그냥 내 달리며 읽는다. 핏빛 낭자한 광주, 개죽임, 개죽음, 개주검. 허나, 이름 모를 이들의 죽음은 그 죽음이 처참하면 처참할 수록 더 비현실적이다.
속도를 부쳐가며 내 달리는 나를 소년의 누이와 근우가 붙들어 앉힌다.가슴이 아리고 아리다. 속속들이 길게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짧게짧게 토막토막 내비치는 이야기가 더 애절하고 애절하다. 조단조단 짚어가며 걸음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엉거주춤 정의로움 뒤에 느낌표를 찍어 넣는다.
엉거주춤 속에 담긴 뜻은 자기변명도 아니고 자기과시는 더더욱 아닌 깊은 속앓이요 절절한 애절함이라 생각한다.
엉거주춤 정의로움! 그 깊은 속앓이! 그 절절한 애절함!
** 마침표
한겨레 21에서 <2000년에도 광주는 앓고 있다>라는 특집기사를 읽었다.
그 속에 수많은 근우가 있고 수많은 소년의 누이가 있다. 광주시가 밝히는 광주민주화운동 공식 피해자 수는 모두 4549명이란다.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64명, 부상 후 사망자 93명, 상이자 2865명, 구금/감금/구속 피해 등 기타 1361명이란다. 그렇게 많은 근우가 있고 그렇게 많은 소년의 누이가 있다. 또 그 어디쯤 엉거주춤 정의로운 문학소년이 있다.
기사의 마지막 글귀.
5월 광주가 마지막까지 양보해서는 안될 것은 진정 5월 광주를 계기로 모든 불행한 역사적 삶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 , 기억하기에도 끔찍한 과거로부터 모두가 바라는 소망스런 미래로 나아가는 것. 바로 그 것만이 누가 무엇이라 하든 시대를 진지하게 걸어가려 했던 사람들에게 지독한 치욕이자 모멸이었던 청춘의 시대를 자부심으로 삼게 하는 출발점이다.
엉거주춤 정의로움. 치욕과 모멸의 시절 청춘들의 진지한 몸부림.
* 다시 물음표
70년대에 출생하고 80년대의 유년기를 거쳐 90년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20대의 쿤데라는, <7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고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살아남은 40대 문학소년의 회고록>에 대한 감상을 명,쾌,한, 마침표로 끝맺지 못하고 기,어,이, 물음표 하나를 더 찍어 넣고 만다.
엉거주춤 정의로움?
70년대에 출생하고 80년대의 유년기를 거쳐 90년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20대인 쿤데라는 5월 광주를 모른다. 그 때의 그 깊은 속앓이?를 모르고, 그 절절한 애절함?을 모르고, 그 진지한 몸부림?을 모른다.
거칠고 거친 무지의 토양을 가진 쿤데라의 마음의 밭에 <엉거주춤 정의로움>은 과연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가지를 뻗고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