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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개선광정(改善匡正)’ - 3. 무엇을? 기도를!
본문 : 창세기 25장 20절(20~26절)
이삭은 마흔 살 때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사람인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인 라반의 누이이다. <새번역>
여러분들은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십니까? 가장 빠르게 일을 해결해야 할 때 여러분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일이 꼬이고, 답답하고, 막막한 순간이면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하십니까?
사실 이런 순간이 오면 먼저 마음에 큰 부담과 좌절이 찾아와서 방법을 생각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하면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땅을 보며 한숨을 짓는 것이 원하지 않아도 조건반사처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심지어 결단하고 기도까지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앎이 삶과 거리가 멉니다. 마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절대 스스로 볼 수 없는 것이 눈 스스로인 것처럼 가장 가까이 있지만 너무도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도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아시기에 그 가장 완벽한 동산에서 지내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완벽함도 주신 자유의지의 오용으로 인해 깨뜨릴 수 있는 게 인간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우린 감사하기보다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존재로 인식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순간입니다.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기도는 나오지 않고, 문제는 너무도 커 보이고, 기도는 너무 작아 보이고, 문제는 끝이 없어 보이고, 기도는 한계에 임박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실 안타깝게도 이런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의 끝은 결국 현실을 선택하고, 나의 방법과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로 끝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이삭은 참 어렵게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였고, 어머니 사라는 90세, 특히 어머니 사라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아들을 낳는 일, 그 것도 많이 낳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일보다 중요하고 큰일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친척 본토 아비집을 75세에 떠날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도 바로 이 자녀에 대한 꿈을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24년이 흘렀습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절망이 바로 코앞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이렇게 푸념을 털어 놓았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창세기 15장 2절, 새번역>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고서도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이 백 살 된 남자가 아들을 낳는다고? 또 아흔 살이나 되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창세기 17장 17절, 새번역>
사실 한편으로는 참 다행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이렇게도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힘들었던 여정에 비하면 이삭은 아주 쉽게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완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왔고, 아비멜렉왕을 통하여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게 하신 그 후, 사라의 몸을 통하여 아들 이삭이 태어납니다. 24년이란 시간은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때가 되자, 사라는 임신을 했고, 아이를 잉태했고, 심지어 건강히 젖을 먹일 수 있을 정도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신들의 방법으로 할 때는 도무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자, 너무도 쉽게 해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삭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했겠습니까? 잠언 3장 5절입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잠언 3장 5절, 새번역>
그러면 이삭은 정말로 이 말씀대로 살았을까요? 여기서부터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삭의 나이는 40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낳을 때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 했습니다.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안타까운 세월이 흘러가게 됩니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창세기 25장 26절B, 새번역>
분명히 하나님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것도 쌍둥이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잘 보셔야 합니다. 40세에 결혼하여 60살에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20년 가까운 시절을 그냥 흘려보낸 것입니다. 아이를 가지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년이란 세월동안 오히려 더 분명하게 확인한 것은 리브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처음 1~2년은 무던히도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니 이삭도, 리브가도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겠습니까? 제가 예전에 불임부부를 곁에서 지켜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험관 때문에 돈은 돈대로 바닥을 드러내고, 서로의 신뢰 역시 바닥이 나고, 기도로 시작해서 화로 끝나고,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순간까지 이르게 된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습니다. 그렇게 이삭과 리브가의 시간이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누군가가 이삭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던지, 부모로부터 들었던지, 아니면 이삭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생각하던 중에 깨달았던지, 가장 중요한 방법에 대해서 20년 만에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보다 5년은 줄였으니 말입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 <창세기 25장 21절, 새번역>
뭐가 이렇게 쉽습니까? 화가 날 정도로 쉽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20년은 대체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이삭이 이렇게 기도를 드리자마자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리브가가 임신하게 됩니다. 쌍둥이입니다. 바로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에서와 야곱입니다.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이 들어주셨다. 주님이 해결해 주셨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법칙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삭과 리브가에게 기도는 어떻게 자리를 잡았을까요? 이 한 구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쌍둥이를 배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나아갔다. <창세기 25장 22절, 새번역>
드디어 기도에 기도를 더하는 삶, 우리도 반드시 살아가야 할 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정말로 필요한 개선광정(改善匡正)은 ‘가장 첫 번째 방법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정리’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든, 어떠한 문제이든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떠올리고,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어도, 서술어도 자연스럽게 이 목적어를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좋은 방향으로 고쳐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이삭처럼, 굳이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가능하면 수많은 실수의 반복이 아닌 처음부터 분명한 결단이 우리 인생에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방법! 기도를 선택하는 방법! 이 미련해 보이고, 불편해 보이는 방법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는 간질병에 걸린 아들을 둔 아버지와 제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면서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아서 거꾸러뜨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주 불 속에도 빠지고, 물속에도 빠지는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어떤 문제가 문제이겠습니까? 아들을 낫게 하는 것이 그의 인생 가장 큰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찾아왔지만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그런 능력을 제자들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다니면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복음 10장 7~8절, 새번역>
하지만 그런 능력을 행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 <마가복음 9장 28~29절, 새번역>
기도,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코 ‘제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오는 인간적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존재가 진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향 성읍이 폐허가 되고 성문들이 모두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서 울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왕 앞에 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울적한 표정으로 왕에게 술을 따르는 행동은, 왕 앞에서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습니다. 왕의 심기를 건드려서 언제든 죽을 수도 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왕은 평소의 행동을 보아 잘 대해 주었고, 오히려 어떻게 하면 울적한 마음을 가눌 수 있을지 바라는 것까지 물어보게 됩니다. 그 때 여러분이라면 냉큼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저였다면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울적한 표정을 지은 것도 이미 큰 실수인대, 왕의 질문 앞에 먼저 이런 행동을 하는 또 큰 실수를 저지르면서까지 이 행동을 행한 것입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왕께서 또 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느헤미야 2장 4절, 새번역>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답답한 문제 해결의 순간만이 아닙니다. 기쁨의 순간, 감사의 순간, 찬스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한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도와 준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그 여종이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 주고 있었는데 그 주인들은 건강해진 여종으로 인해 오히려 돈벌이가 끊기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누명을 씌우고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옷을 찢긴 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숨 막히게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실라를 보호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도대체 왜 선교사님들이 먹고 살도록 지켜 주시지 않고, 왜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어려워야 하고, 모함을 당해야 하고, 핍박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 인대 하나님 제발 좀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건 기도가 아니고 저의 원망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어땠습니까?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사도행전 16장 25절, 새번역>
요즘 이런 시간 있으셨습니까? 아마도 억울하고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시간은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억울하고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그 시간에 오히려 기도하며 찬양하던 시간은 있으셨습니까?
마지막 예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일상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다음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마가복음 1장 35절, 공동번역>
예수님은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셨습니다. 오로지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조차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지금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있기에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기에 그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른 새벽이어야 했을까요?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지 위해서였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외딴 곳으로 가셨어야 했을까요?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조용한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를 찾아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뻔한 말씀에 저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여러분에게 편지로 띄웁니다.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빌립보서 4장 6절, 새번역>
그리고 제가 이렇게 화답하고 싶습니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7절, 새번역>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흔들리는 우리가 아니도록 굳건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최고의 방법이기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살아가는 순간순간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문제 앞에서도, 기쁨 앞에서도, 모든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기도를! 바로 기도를 하셔야 할 때입니다. 이 번 한 주도 여러분의 삶의 많은 부분이 ‘무엇을’이란 문제로 고민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오히려 은혜의 시간이길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골로새서 4장 2절, 새번역>
결단 찬양 - 기도를 시작합니다 +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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