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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빨갱이의 나라’인터넷 밈을 통해 이 나라를 알게 된 요즘 세대들에게는 ‘웃기고 괴이한 나라’,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목도 한 후에는 ‘악마의 나라!’라고 불린다. 우리에게 러시아는 부정적 이미지가 점철된 나라다. 하지만 러시아는 약 140년 전부터 한반도와 연을 맺기 시작했고, 이후로 역사의 변곡점마다 이 땅에 존재감을 보였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외면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지난 2016년 우리나라로 귀화한 ‘벨라코프 일리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출판사가 이 책을 광고하고 있다.
제목에서도 관심 가지기에 충분한 것들이 보이는데, ‘독재자 푸틴이 인기 있는 이유, 러시아는 북한의 친구인가? 사투리가 없는 러시아어’이런 것들이다. 저자 ‘벨라코프 일이야’는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나 국립극동대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한 뒤에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과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사우스케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사회언어학 박사과정을 밟고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현재는 수원대학교에서 러시아어 및 러시아문화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JTBC 인기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하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같은 한국 문학 작품들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책은 2022년 7월에 1쇄가 2023년 1월에 3쇄가 발행되었다.
러시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광대한 나라다. 국토면적이 1,713㎢로 10만 ㎢인 남한의 171배가 되고, 이는 지구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북위 41도에서 81도까지 이며 남단에서 북단까지 거리가 4,000㎞, 동서 거리는 1만㎞가 넘는다. 러시아는 다민족 국가로, 일리야 같은 스라브계 민족이 가장 많다. 이들이 총인구의 77.7%이고, 나머지 22%는 소수 민족이다. 소수 민족 중에 100만 명이 넘는 민족은 타타르족, 우크라이나인, 바시키르족, 추바시족, 체첸족, 아르메니아인 등과 몽골족도 있다. 이들만으로 이루어진 대도시와 주(州)가 있는가 하면, 공화국까지 있다. 연방제 국가로는 50개 주가 연방을 이루고 있는 미국을 생각하기 쉽지만, 러시아는 85개 연방 구성체로서 22개 공화국, 46개 주와 9개 지방, 1개 자치주, 4개 연방국, 3개 연방시로 구성되어 있다. 주는 우리의 도와 비슷한 개념으로 독립성이 떨어지지만, 공화국은 독립 헌법이 있을 정도로 독립성이 높다. 바이칼호에 있는 뷰라트 공화국은 인구 90%가 몽골계로 여기서는 백인 러시아인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들은 러시아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뷰라트어를 사용한다.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도 유럽인들처럼 다른 외국인을 혐오하는지 궁금하다. 러시아인들이 싫어하는 몇몇 국가가 있으나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중 싫어하는 나라가 중국인데 중국인과 접촉이 늘어나다 보니 그들이 시끄럽고 지저분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양인이라면 중국인 아니겠느냐며 시비를 건다고 하는데, 한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을 혐오하는 정서는 소련이 해체된 이후이며, 러시아 국민들은 외모가 확연히 다른 사람들도 러시아 땅에 살면 러시아인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1891년부터 1916년까지 공사가 이어진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길이가 9,000㎞에 이른다. 1905년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게 일격을 당하자 1910년부터 러시아에서 황제를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국내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1917년 혁명이 일어나 니콜라이 2세를 밀어냈으며,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가 권력을 잡았다. 이때부터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활발히 이용되기 시작했는데, 1930년대 정권을 잡은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하여 반대파인 정치범들을 시베리아 개발에 보내면서라고 한다.
이상의 것들은 과거의 일이고, 지금의 러시아는 현 푸틴 대통령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도 푸틴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푸틴을 알아야 러시아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독재자라는 평가가 붙은 스탈린에 대해 평가를 자제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픈 역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스탈린의 애국심, 나라를 위한 위대한 결단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성과가 높은 매니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을 이겼고,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대국을 만든 지도자라고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대숙청으로 공포를 주고 나치식의 수용소를 만들어 수백만 명을 학살한 지도자였지만, 나라 기반을 깔아 주었다고 인식하게 하면서 스탈린의 ‘질서’를 찬양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푸틴은 스탈린을 계승한 독재자인가? 그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독재를 겪어봐서 아는데 지금 이 상황은 절대 독재가 아니다.”라고. 푸틴을 독재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9년 12월 31일 20세기 마지막 날, 대통령 옐친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하야를 선언했다. 다음날부터 국무총리인 푸틴이 대통령 권한 대형이 될 것이고, 3월에 보권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공포했다. 3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은 52.9%의 찬성으로 당선됐다. 당시만 해도 그는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푸틴이 집권하면서 한해 GDP 성장률이 7%대에 이르고, 빈곤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00년 전 세계 23위였던 경제규모는 2007년에 11위로 껑충 뛰었다. 개선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2004년 재선은 기정사실로서 71.3% 찬성으로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공산당 후보는 고작 13.6%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푸틴이 반反서방 감정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재선 뒤부터였다. 2007년 뮌헨에서 열린 유럽 안보 회의에서 그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이 마치 부하 직원을 대하듯 한다고 비난했다. 이는 발트 3국을 비롯한 체코, 폴란드가 나토가입을 찬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푸틴의 미국 비판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국민들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강한 지도자를 환영했다.
2013년 러시아 이웃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대통령 빅토르 야뉴코비치가 민간인 대량 학살 혐의로 형사입건 위기에 처하자 해외로 도피했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문제는 새 정부가 반러시아 성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연합 및 나토 가입, 미국과의 친선 등을 발표하고 소련 시절부터 크림반도에 주둔하던 러시아 해군 기지 철수를 명령하고, 그 자리에 나토 군사 기지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또 방송과 학교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는 매우 급속히 악화됐다.
이에 푸틴은 2014년 3월 크림반도에 러시아군을 진입시키고 크림반도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 실시를 선포했다. 결과 90% 이상이 러시아에 속하기를 바랐다. 공식적으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병합했다. 서방은 이를 강력히 비난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제재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푸틴의 지지율은 30%대에서 89%까지 치솟았다. 지지에 편승해 2015년 러시아군을 시리아로 보내고, 2016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개입해 물의를 일으켰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대한 나라가 됐다며, 친정부 성향 인사들은 립서비스를 했다. 2020년에는 다섯 번째 대통령 출마를 가능케 할 개헌 국민 투표를 실시했는데 여기서도 부정행위, 결과 조작, 절차 위반 등이 발각되기도 했으나 푸틴은 여전히 지지를 받았다.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1990년대 나라꼴이 된다. 푸틴만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러시아 어디에도 없다. 지금 미국이 우리를 지도에서 지우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을 어떻게 바꾸나?”라고 한다. 샤이 반정부 층에서도 푸틴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보다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또 있다. 러시아인은 전통적으로 ‘차르’황제를 나라의 아버지로서 지도자 이미지를 좋아한다. 9세기부터 국민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들 모두 강력한 절대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러시아를 통일한 이반 뇌제, 러시아를 유럽 국가로 만든 표트르 대제, 러시아의 위대함을 증폭시킨 알렉산드르 2세를 비롯한 로마노프가의 황제들, 사회주의 혁명의 아버지 레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이긴 스탈린까지. 이제 푸틴이 자신의 이름을 이런반열에 올리고 싶어 한다.
한국에 국가보안법이 있다면 러시아에는 ‘권력비판 금지법’과 ‘해외 에이전트 금지법’이란 게 2019년 만들어졌다. 이들은 인터넷 언론 금지, 심지어 해외로부터 100원이라고 입금받으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해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법이지만, 이것이 지금의 러시아 현실이다. 그럼에도 소련 시절의 완전한 독재와 1990년대 생지옥 같은 자유를 경험한 러시아 국민은 작금의 상황이 최고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보수적인 러시아 어르신들은 정부가 언론을 박살 내든, 정치인을 탄압하든 생각하지 않고 한 가지만 생각한다. ‘어게인 1991’은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관심 끄는 제목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는 북한의 친구인가?’이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은 중요한 경제 파트너도 아니고,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먼 나라다. 서로 친해질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는 나라인데, 동아시아 지역 안정과 안보라는 큰 틀에서 신경 써야 하는 나라이기는 해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련과 북한은 1949년 처음 경제 및 문화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에는 중국과 함께 북한을 도왔다. 당시 소련과 미국이 냉전을 벌이던 시대였기 때문으로, 전쟁이 끝나고도 소련과 북한은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물론 북한은 소련보다 중국을 더 많이 바라보고 있으며, 소련은 사회주의 길로 걸어가는 동무 국가로 여겼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완전히 무너졌다. 옐친은 동방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다. 양국 간의 교류는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재개됐다.
2019년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수출은 4,490만 달러, 반 이상이 석유였다. 북한에서 러시아로의 수출은 300만 달러(34억), 서울의 부유한 아파트 한 채 값에 지나지 않았고, 주로 악기였다. 반면에 이해 한국과 러시아간의 무역 규모는 25조 7000억 원, 북한 지도자 입장에서 러시아는 모델이 될 수 없는 나라다. 공산당을 스스로 박살 낸 나라에서 북한이 무엇을 본받을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멀리할 필요도 없다. 중국과 더불어 그나마 관계가 좋은 나라다. 북한의 주적인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나라기도 하다.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등식이다.
러시아에서 보면 우리가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관계만큼이나 남한과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전혀 다른 나라지만,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른다. 현재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은 북한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왕따’취급을 받으면서 일견 북한과 처지가 비슷하다며 동류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러시아에서 북한은 우호의 대상이 아니다. 관심 없지만 서로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손을 잡을까 하는 정도다. 최근 푸틴과 김정은이 만난 것도 이런 이유다. 러시아는 북한과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할까? 서구에서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러시아는 전혀 다르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막아낸 덕분에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피를 흘린 나라도 소련이다. 최대 3000만 명이 희생됐다. 당시 미국이 무기대여법을 통해 소련을 지원한 사실을 아는 러시아인은 거의 없다. 안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의 도움 없이도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소련은 국력이 약해졌고, 그런 틈에서 시작된 냉전으로 미국은 엄청난 혜택을 입으며 수퍼파워가 됐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달러는 기축 통화가 됐고, 민주주의 국가의 표본이 미국이라고 선전했다. 소련이 흔들리다 결국 무너지자 이는 자신들의 성과로 포장했다. 러시아인들은 내부 문제 때문에 소련을 스스로 해체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 코르바초프는 조지 부시를 만났다. 그리고는 나토 해체를 요구했고 새로운 러시아가 서방과 함께 할 것이라면서, 적이 없어진 나토는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나토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특히 구소련이나 구공산권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순진한 코르비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중에 푸틴은 이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주장하며 나토와 충돌하게 된다.
공식적으로 러시아는 한반도 분단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한다. 미국이 먼저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고, 2018년 싱가포를 북미회담, 2019년 하노이 회담을 지지했다. 그전에 있었던 6자 회담에는 러시아는 관심이 없었다. 본질적으로 남북문제는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미국과 중국, 일본까지 끼어드는 것은 맞지 않지만, 러시아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매우 자연스럽지만, 한국 사람들은 엄청 놀란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쿠릴열도 영토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일본과 우호적일 수 있냐는 거다.
쿠릴열도는 캄차카반도와 홋카이도 사이에 있는 약 56개 섬이다. 원래 아이누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살았던 곳이고,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땅이다. 독도만큼이나 복잡한 역사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두 나라의 주장은 상반되고, 조용했던 영토 문제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튼 일본은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고 워낙 친미 국가이다 보니 푸틴 대통령을 얕잡아 본다는 평가가 있다. 영토분쟁 같은 중요한 이슈조차 미국의 말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도 당사자인 남북한 말고는 다 빠져야 한다고 하고, 다른 나라가 들어온다고 해도 일본은 굳이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한다. 결국에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굳이 일본과 대화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에는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의 직종이 100개도 넘는다고 한다. 그 전보다 많이 죽어 든 숫자라고 하는데, 소련 시절에는 여자들이 모두 일했다는 이야긴지 모르겠다. 일리야는 자신이 한국어과를 다니겠다고 했을 때 통역사가 되려느냐며 그런 일은 여자들이 하는 거라며 주위에서 놀렸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남자들이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하는데, 러시아에서는 면도 때 쓰는 쉐이브 외에는 남자가 화장품을 쓰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튀지 않고 자기 본래의 위치나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문화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하는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도 여자가 하면 안 되는 일,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신분에 맞게 살지 않고 변화를 추구해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전통과 가치관은 70년 동안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세계 모든 나라가 예수가 태어난 날, 즉 성탄절이거나 크리스마스거나 이름은 달라도 12월 25일을 그날로 알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1월 7일이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그날이 공휴일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카톨릭에서는 그레고리력을,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한 동슬라브 교회들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14일의 차이가 난다. 러시아에서는 우리처럼 교인들이 가족들과 아니면 연일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저 하루 쉬는 날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은 1945년 5월 8일 베를린에 진군하여 독일 국회 건물을 장악한 뒤 여기에 소련 국기를 올렸다. 당시 여전히 일본이 버티고 있었지만, 사실상 전쟁이 마무리된 상태였다. 소련은 이를 20세기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치면서 다음 날을 전승기념일로 정했다. 이날부터 당시 희생된 병사들을 기리는 행사를 거행해 왔으나 의미를 두지는 않다가 1980년대 들어 소련 내 정치·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소련의 지도부들이 ‘대조국전쟁 승전일’이라는 카드를 꺼내 대대적인 규모로 퍼레이드를 벌이는 등 행사가 점점 커졌다고 한다.
한국에 한글날과 있듯이 러시아에는 〈러시아어의 날〉이 있다고 한다. 6월 6일이 그날인데, 러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생일이 이날이다. 이날은 외국인들의 러시아어 말하기 대회 등을 가지며, 러시아어 및 러시아 문학의 훌륭함을 강조한다. 푸시킨을 추앙하고 러시아 문학을 알리는데 푸시킨이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기 때문이다. 잘 아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도 그냥 읽으면 희망을 주는 그런 시에 불과하지만, 이 시에는 한시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처럼 운율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러시아어 특유의 강세를 활용해 각각의 행이 리듬으로 읽힌다고 하는데, 시를 보면서 이만 줄이고자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쁜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러시아 문화권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생각에 동조하는 건 아니다. 이제 나는 한국에서 산 기간이 러시아에서 산 기간보다 더 길다. 나 역시도 여러분들처럼 대한민국의 국익을 생각하는 국민이다. 내가 두 나라를 위해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에필로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