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도와 자연의 노자를 쓴 지가 벌써 7년이 지나
글의 흐름이 순탄치 못하고 우리 나라에 만연된 인격신에 사로 잡혀
노자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잘못 쓴 점 등이 있기도 하였고
저 번에 책으로 낸 원고를 검토하면서 다시 쓰면서 수정하고자 합니다
이미 책이 나온 지도 7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곽점본 노자가 출토된 되어 것이 97년이고, 백서본 노자가 출토된 것은 74년이다.
따라서 이제 곽점본과 백서본에 의한 노자를 정리할 시기가 되어 7년 만에 어린이 노자로 시작된 책이 도와 자연의 노자로 제목을 바꾸었다가 ‘알기 쉬운 노자풀이’로 재편하고자 한다.
머리말
노자께서 '나의 말은 알기 쉽고 또 실행하기도 쉽다(제70장)'
고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노자(老子)가 어렵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지향하고 돈을 모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여
부유하게 살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보니 노자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에 집착하여 욕심을 부리면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맑고 밝은 마음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 그림자를 걷어내고 '마음을 비우면(제3장)' 노자가 쉽게 읽
어 질 것이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렵다는 어른들과 학생들을 위해 지금은 그 뜻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 화두(話頭)삼아 간직하고 살면서 진리
를 터득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되고자 '道와 자연의 老子'를 알기
쉽도록 풀이하여 어린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어른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노자를 자연스럽게 터득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분 앞에 부족하나마 내놓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은 노자를 읽고 시(詩)를 쓰는 마음으로 생각 속에 들어오
는 직관(直觀)을 적었고, 때로는 노자에 적힌 하늘에서 내려온
암호문인 지혜를 풀어서 담기도 하였으며, 하늘이 만들어 낸 자
연현상을 곰곰이 성찰(省察) 하면서 들여다 본 것을 적은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애당초 어떤 사조(思潮)나 경향성을 반영하
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음을 밝혀둡니다.
그러나 이책을 읽고 노자께서 말하는 도덕을 어렴풋이나마 알
게 된다면 노자의 '도(道)와 덕(德)을 본받는 사람은 고귀(高貴)
하다(제70장)'는 격려를 듣게 될 것입니다.
18살에 노자를 읽고 27년만에 道와 자연의 老子 1장과 2장을
2달에 걸쳐 쓰다가 시일을 갖고 훗날 다시 시작하려던 것은 아
직 부족함이 많고 문식(文飾)이 밝지 못하여 노자(老子)를 이 책으
로 엮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밀양 가지산 자락에서 도(道)
를 닦고 있는 친우(親友) 김갑열의 권유와 그곳까지 함께 동행했
던 친구(親舊) 윤중수의 격려가 있어 1년 전에 중단했던 어린이
노자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가 20살 때 만들어 부르던 노자송(老子頌)을 처음 듣고서 도
반(道伴)이 되기로 다짐하고 95년 4월부터 함께 많은 얘기를 나
눴던 명동한의원 신정식 박사에게 그 뜻을 전했더니, 다시 시작
하게 되어 기쁘다고 환영의 뜻을 전해 들었습니다. 신박사와 함
께 만난 경서원 이규택 사장님께 전에 건네준 道와 자연의 老
子 1장 및 2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쭈어 봤더니,
참신한 기획으로 마음에 흡족하게 읽으셨다면서 빨리 마감 지어
책으로 편찬하는 것이 좋겠다고 종용하심으로 우선 도와 자연의
노자 1권을 서둘러 세상에 내 놓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는 분이 어른이든 청소년이나 어린이든지 간에 읽
고 조그마한 감동이나마 받으셨다면 자녀들이나 이웃들에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으며,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독자 제현의 충고와 격려를 되새겨 보
면서 깊은 명상(冥想)과 성찰(省察)을 통해 보다 나은 책을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
18살이 되던 청소년 시절의 어려운 삶에 풋풋한 희열을 안겨
주었던 노자의 보살핌에 대한 깊은 보답으로 이 책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준 춘천을 사랑하는 동생
윤헌영의 보살핌에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직장에서 틈틈이 이
책이 완성될 때까지 도와준 고진숙양의 헌신적인 노고에 감사하
며, 이 변변치 못한 책에 애정을 보여주신 출판인 이규택 선생
님께 감사드리고, 이 책을 쓰는 동안 함께 시간을 하지 못했으
나 묵묵히 참고 지켜봐 준 처와 아빠를 위하여 이 책의 표지 그
림을 그린 중3 아들 태호 그리고 현호를 친애(親愛)합니다.
1999.8 지은이 씀
서문
우리 인류 역사에 빛나는 노자, 석가, 예수, 공자를 일반적으
로 4대 성인으로 부른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책은 '노자(BC571-471?)가 직접 지은
책으로 춘추 말기에 성립된 것'[(첨검봉의「노자기인서급기도론
(老子其人書及其道論)」(호복인민출판사,1982년]'임을 밝혔다.
지금까지 노자를 둘러싼 억측과 모함들이 무수히 많았다.
석가의 불경이나 예수의 성경이나 공자의 논어가 모두 본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기록한 것인데, 유독 노자만이
직접 저술을 남겼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논어에는 인(仁)은 보이지만 의(義)가 보이지 않는데
노자에 의나 예에 대한 내용이 있다고 해서 맹자가 인의예지(仁
義禮智)를 말할 것을 들어 심지어는 맹자 이후로 취급하는 해괴
망측한 설명도 있었다.
기타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면서 정사(正史)인 사마천의 사기
에 실려진 공자가 노자를 만나 예(禮)를 물었다는 기록까지도 말
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논점으로 어떻게 하든지 이 말을 부정하
는데 온갖 논리와 억지를 부린 흔적은 수도 없이 많아 일일이
나열하지 않기로 한다.
다행히 제가 이 글을 시작한 시점에 노장 철학의 대가인 북경
대학 진고응 교수에 의하여 인과 의라는 글자가 맹자보다 몇 백
년 앞선 동주시대에 이미 널리 쓰인 사실이 있음과 공자가 노자
에게 예를 물었다는 사기 내용이 역사적으로 사실임은 분명하다
는 점 및 노자라는 책은 노자 자신이 편찬한 것으로 논어보다
앞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저술로서도 노자가 공자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문헌에 의해 철저하게 분석하여 밝혀졌다.(노
장신론, 상해고적출판사, 1992년)
더구나 백서 노자본을 구하기 위하여 알아보던 중 1993년 겨울
에 동주시대 초(楚)나라 국의 귀족묘지인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
竹簡)이 출토되었는데 발굴자가 추정하기는 늦게 보아도 전국시
대 중기에 편찬된 것으로 판단되는 자료가 있어 책의 뒷 페이지
에 몇 장을 수록하였다.
그런데 간본은 현재 2,046자만 남아 있어 이것은 지금까지 우
리가 보아 오던 노자본(老子本)의 5분지 2에 해당하는 바 전체
81장 중 31장에 관련된 내용뿐인데 그 이유는 묘지가 수 차례 도
굴을 당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곽점초묘죽간의 내용에는 노자 제38장에 나오는 인, 의, 충신,
예라는 개념이 도굴로 인하여 수록되지 않았으나 이와 비슷한
장인 노자 18장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바,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도폐(故大道廢), 안유인의(安有仁義)
육친불화(六親不和), 안유효자(安有孝慈)
방가혼란(邦家昏亂), 안유정신(安有正臣)』
이것은 금본(今本) 제18장에 해당하고, 한자가 출토된 글자와 다
른 것은 현재본 시기의 한자로 고친 주석본을 실은 것에 기인한
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인의란 개념이 맹자가 확립한 개념이기
는 하나 맹자 이전에도 쓰여졌음이 확인되고, 충신(忠信)이란 글
이 정신(正臣)이란 글로 쓰여진 사실을 볼 수 있다.
이 정신이란 말은 백성을 위로 받들고 임금을 보필함에 바르
게 하는 신하이지,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인 충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노자적 이미지와 부합되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춘추말기에 초나라 글자로 전해
지던 노자가 시대를 거듭할수록 그 시대어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 두 글자가 바뀌오 들어간 것이 2천 5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는 많은 억측과 논쟁을 불러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는 곽점초묘죽간본의 전체내용이 전해지지 않아
문제 제기가 이른 지도 모르겠으나, 현재 우리가 봐왔고 들어왔
던 노자란 책은 성인인 노자 자신이 노자를 숭앙하는 관문지기
윤희(尹喜)의 간청에 의하여 직접 기술한 것으로 판단되며,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여러 사람이 시대를 두고 가필정정하였지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종지부
를 찍었으면 한다.
노자 책이 이루어진 이후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사상이나 주장을 펴고자 역전(역전)뿐만 아니라 병법서
등에까지도 인용되어 왔던 것인데, 거꾸로 그런 사상들을 모아
서 편집한 것으로 오해한 것은 그러한 사상이 태동되기도 전인
동주시대에 편찬된 죽간에서도 노자 제30장과 노자 제31장의 내
용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의 논란도 더 이상 거
론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현재 곽점초묘각본에서 전해 지 내용이 일부인지라
속단(速斷)하기는 어려우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제30장
의 「대군지후(大軍之後) 필유흉년(必有凶年)은 문맥의 흐름상
빠지는 것이 맞는 것 같고, 제31장의 뒤에 나오는 병자(兵者) 다
음의 「불상지기(不祥之器)」는 앞의 내용과 중복되게 적은 것
같고, 제55장 마지막 뒷부분 「부도조기(不道早己)」의 부도(不道)
도 덧붙여진 말로 추측된다. 훗날 잃어 버렸던 곽점죽간본이 발
견된다면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나는 겨우 몇 가지 자체 수정을
하여 봤지만 극소수의 일부분을 지적했을 뿐이고, 우리가 지금
까지 알고 있었던 노자본은 노자 스스로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면 무명(無名)으로 은거하여 마땅하였겠지만, 탁월한 식
견을 갖춘 윤희의 덕택으로 오늘날까지 노자가 인류에게 생전
처음 본 이름도 모르던 도(道)인 하늘의 밝은 지혜를 깨달아 담
아 두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성인(聖人)인 노자께서 직접 기술한 이러한 책이 없
었더라면, 제자들의 기억이나 추억 속에서 기록된 부처의 불경이
나 예수의 4대 복음서 또는 공자의 논어가 제시했던 말씀이 의
미 전달도 뚜렷하지 않은 채 흔미스러웠을 것이다.
이 노자를 기준으로 하여 성인들이 기록한 말을 살펴볼 때,
우리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하늘의 비밀스러운 밝은
지혜를 찾아내어 인생을 정신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삶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