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 지식인 주도로 세운 교육기관
대표적인 학자 기리는 제향 기능 겸해
절제된 장식에 자연친화적 건축 구현
삼국사기, 노비 족보 등 사료도 풍부
수난도 겪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 거점이 된 서원은 일본군에 불태워져 다시 재건되기도 했다. 한때 당쟁과 붕당 정치의 온상이란 비판도 받았다.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은 전국 47곳만 남기는 서원 철폐 정책을 펼쳤다. 9곳의 서원은 대부분 이런 훼손을 피하며 멀게는 5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왔다.
건축적 특징도 뚜렷하다.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을 구분하고, 화려함 대신 성리학적 이상을 추구하며 입지·배치부터 자연과의 조화를 꾀했다. 옛 서적과 시문은 물론 방명록, 강의록, 심지어 소유한 노비 족보 등도 전해져 서원의 활동과 운영방식을 짐작하게 한다.
최초의 서원, 한국 성리학 기원 안향 기려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은 한국 성리학의 기원으로 꼽히는 고려시대 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림과 함께 ‘백운동서원’을 만들었다. 이후 퇴계 이황의 건의로 명종 임금이 직접 ‘소수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를 써서 내렸다. '소수'는 이을 소(紹), 닦을 수(修),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
소수서원의 제항의례는 ‘도동곡’을 부르는 것이 특징. 주세붕이 서원 창건 당시 지은 노래로,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한 경위와 안향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제향의례에 제향 인물과 연관된 노래가 포함된 것은 한국에서도 유일한 사례다. 방명록인 ‘심원록’에는 방문자들 이름·출신·관직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당시 서원의 활발할 교류활동을 보여준다.
퇴계 학맥의 총본산, 성리학 학술의 전당
사림 문학의 대표적인 교류처이자 창작처이기도 했다. 도산서원 주변 경관을 주제로 한 시문이 3000편 이상 전해진다.
1792년에는 경상도 유생들을 위한 과거가 열려 7000여 명이 응시했다. 이를 기념하는 시사단(試士壇)을 1796년 강변의 소나무 숲에 세웠다.
만대루 7칸 너머 병풍 같은 풍광
병산서원의 모태는 고려 홍건적의 난 때 피난왔던 공민왕의 후원으로 성장한 병산서당이다. 풍산읍에 있던 서당은 1572년 류성룡이 인근 지방관을 역임하던 시절, 현재의 병산서원 자리인 풍천면으로 이전했다.
만인소를 조선시대 최초로 작성한 서원으로,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조정에 유소(儒疏, 유생이 올리는 상소문)를 올린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류성룡의 저작들을 지속적으로 펴낸 곳이기도 하다. 1633년에는 『서애선생문집』초판본을, 1647년에는 『징비록』을 간행했다.
건축물, 특히 누각 만대루는 인간이 만든 서원과 자연을 잇는 명품 건축으로 꼽힌다. 맞은편 병산과 낙동강이 펼쳐내는 풍광은 만대루 7칸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틀’ 덕분에 더욱 극적으로 구현된다.
국보급 '삼국사기'에 글씨·서적 4천여점
문화재도 많다. 국보 지정이 예고된『삼국사기』완본 9권(보물 525호)이 대표적. 이언적의 친필과 저서 등 명인들 글씨와 문집 4000여 점도 소장하고 있다. 그 중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는 고종 때인 1884년 내려진 복식 제도 간소화 정책을 비판하며 8849명이 연명한 상소다.
이론보다 사람됨 중시한 김굉필
한 마디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다. 한눈에 펼쳐지는 낙동강 전경을 확보하고자 가파른 비탈에, 남향 아닌 남서향에 건물을 배치한 것도 파격이다.
건립을 주도한 정구(1543~1620)는 17세기 예학 연구의 대표 인물. 실천윤리를 중시한 김굉필(1454
풍수지리에도 해박했다.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고을마다 지리지를 편찬할 정도였다. 비탈에 선 도동서원의 특별한 터 잡기도 정구의 안목 덕분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400살이 족히 넘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그 뒤에는 서원 안팎을 구분 짓는 수월루(水月樓)가 있다. 한수조월(寒水照月), ‘찬 물에 달이 비친다’는 뜻.
수월루에 선 유생들은 낙동강에 비친 달을 보며 마음을 쉬게 했을 터.
강학 공간인 중정당 앞뜰은 나무나 풀이 없다. 그냥 흙바닥이다. 유생들이 마음을 비우고 공부에 집중토록 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중정당 대청마루에 서면 그 이유가 단박에 보인다. 뜰에 나무가 없는 덕분에 낙동강과 먼 산의 풍경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도동서원의 강학 공간인 중정당(中正堂) 앞뜰은 나무나 풀이 없이 그냥 흙바닥이다. 유생들이 마음을 비우고 공부에 집중토록 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중정당 대청마루에 서면 그 이유가 단박에 보인다. 뜰에 나무가 없는 덕분에 낙동강과 먼 산의 풍경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사당 내부에 그려진 두 장의 그림도 매력적이다.
하나는 ‘강심월일주(江心月一舟)’, 달빛 아래 낚싯배 떠가는 밤 풍경과 눈밭에 선 소나무 가지에 둥그런 달이 걸려 있는 풍경. 김굉필의 시에서 따왔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상징한다. 또 하나는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하는 ‘설로장송’. 김굉필의 올곧은 정신, 곧 도동서원의 정신을 표현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교수는 “김굉필은 이론보다 사람됨의 실천을 강조한 소학(小學)을 중시했다. 별명이 ‘소학 동자’였다.
도동서원은 실천 지성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안민의 실용을 추구하는 학술문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건축'으로 기준 세워
◆남계서원(경남 함양)=1552년에 건립된 한국의 두 번째 서원. 서원의 운영과 건축배치의 전형을 구축해 이후 많은 서원의 기준이 됐다.
주향 인물 정여창(1450~1504)은 함양 출신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 중앙 관료의 훈구 중심적 성향에 맞서 성리학에 기반한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활동을 했다. 이는 사림이 정치에 참여하는 하나의 유형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의 침입에 맞서 경상남도 일대의 의병 활동을 주도한 근거지였다. 1595년 일본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함양 사람들은 전쟁 이후 1603년 곧바로 남계서원을 재건했다.
건축 공간은 다른 서원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서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췄다. ‘최소한의 공간 구성’은 1칸의 온돌방과 1칸의 누마루로 구성된 재사 공간에서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상정'에 충실했던 김인후
◆필암서원(전남 장성)=왕의 스승이기도 했던 김인후(1510~1560)를 기려 1590년에 건립됐다. 그는 성리학 이해에 진전을 가져온 인물이자 도학과 절의, 문장과 인간애를 겸비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전남 지역에서 서원을 주도하는 서원으로 자리잡았다. 임진왜란 때 전남의 사림이 결성한 의병활동 중심지로도 기능했다. 당시 불타버렸고, 지역 사림들이 1624년 재건했다.
뒤편에 야산을 등지고, 앞쪽에 평야가 펼쳐져 있다. 누마루 확연루에선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평지에 자리한 필암사원의 창의적 건축은 이후 평지형 서원 배치의 전형이 되었다.
서원의 재정적 운영방식이 정립되는 단계를 보여주는 노비안, 양안 등 기록물도 전해진다. 서원 소유 논밭의 규모와 소출량 등에 대한 내용도 있다. 특히 '노비보'는 서원 노비의 명단과 계보도로, 한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노비 족보로 꼽힌다.
조선 뛰어넘는 글로벌 인재의 육성처
◆무성서원(전북 정읍)=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7년(1615년)에 세워졌다. 주향 인물은 신라의 최치원과 조선의 신잠(1491~1554). 모두 이 고을 수령으로 부임해 각별한 선정을 베풀었다.
신잠은 신죽주의 증손자. 고을 사람들이 선정을 베푼 그의 유임을 중앙정부에 청해 6년간 현감을 지냈다. 흉년 때도 수천 명을 구휼했다.
일제감정기 1906년에는 74세의 최익현이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을사늑약 이후 호남지역 최초의 의병이었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유배당해 옥사했고, 제자 임병찬은 고종의 밀명으로 전국적 의병 전쟁을 준비하다 발각돼 거문도로 유배된 뒤 순국했다. 지금도 무성서원 강수재 앞쪽에 의병 정신을 기리는 ‘병오창의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예(禮)'로운 개인과 품격 있는 나라
◆돈암서원(충남 논산)=17세기 조선의 예학 연구를 이끌었던 김장생(1548~1631)의 덕을 기리고자 인조 때인 1634년 건립했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잇는 예학의 대가. 예학을 통해 ‘예(禮)로운 개인’과 ‘품격있는 나라’를 지향하며 후진 양성에도 큰 힘을 쏟았다. 김장생 생전의 강학처인 양성당에서 비롯돼, 훗날 현종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예학은 성리학의 실천 이론으로, 돈암서원은 이를 한국적으로 완성한 거점이다. 서원 또한 예학을 한국적 건축언어로 재해석했다. 각 현판은 예(禮)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들로 구성돼 있다. 김장생의 제자로 추가로 배향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은 서인 학맥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충남의 중심 서원으로, 이 지역 많은 서원에서 건축양식·교육양식·연구 경향 등 돈암서원과 닮은 점이 확인된다. 예학의 실천공간으로서 서원 형식을 크게 혁신했다. 대표 사례가 강당 응도당.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현존하는 서원 강당 건축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첫댓글 『역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 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의 규정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유네스코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유산으로 문화유산(유적·건출물·장소), 자연유산(무기적·생물학적 생성물 및 지역), 복합유산(문화+자연유산)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
http://www.unesco.or.kr/heritage/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입니다. 참고해보시면 나라별로 문화유산이 정리되어있습니다. 또 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나뉘어져 설명되어있습니다
현재까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세계유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요 며칠전에 한국의 서원 9곳이 새롭게 등재가 되었습니다
제주도의 경우는 세계자연유산의 항목이 되겠습니다
유네스코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1978년 만든 것으로
미쉘 올립 (Michel Olyff)에 의해 도안되었습니다.
* 상징
가운데 사각형은 인간이 만든 형상이며 단(원)은 자연을 의미
사각형과 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밀접히 연관지어져 있음을 나타내며
둥근 로고는 세계의 표상이며 보호의 심볼임
전체적으로 인간이 만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상호보존 및 자연과 인간의 연관성을 상징
* 목적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파괴의 위험에 처한 유산의 복구 및 보호활동 등을 통하여 보편적 인류 유산의 파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고,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를 위한 국제적 협력 및 각 나라별 유산 보호활동을 고무하기 위함.
* 의의
세계유산이란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1972년 11월, 제17차 정기총회에서 채택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지정한 유산을 말한다. 인류문명과 자연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인 세계유산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이다.
문화유산
▒ 유적
역사와 예술, 과학적인 관점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비명(碑銘), 동굴생활의 흔적, 고고학적 특징을 지닌 건축물, 조각, 그림이나 이들의 복합물
▒ 건축물
건축술이나 그 동질성, 주변경관으로 역사, 과학, 예술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독립적 건물이나 연속된 건물
▒ 장소
인간 작업의 소산물이나 인간과 자연의 공동 노력의 소산물, 역사적, 심미적, 민족학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적 장소를 포함한 지역
자연유산
▒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로 이루어진 자연의 형태이거나 그러한 생성물의
일군으로 이루어진 미적 또는 과학적 관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 것
▒ 과학적 보존의 관점에서 탁월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지질학적, 지문학(地文學)
생성물과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서식지
▒ 과학, 보존 또는 자연미의 관점에서 탁월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지점이나
구체적으로 지어진 자연지역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나라 세계문화 유산입니다.
*세계 문화유산
1) 창덕궁
2) 화성
3) 불국사,석굴암
4) 해인사 대장경판전
5) 종묘
6) 경주역사유적지구
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지
이밖에도 세계기록유산과,세계무형유산이 있습니다.
*세계 기록유산
1) 훈민정음
2) 조선왕조실록
3) 직지심체요절
4) 승정원일기
*세계 무형유산
1)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2) 판소리
금번 도동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하여 그 의미와 조상님에게 크게 깨달음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ㅡ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시 달라지는 사항
ㅡ 문중과 도동서원 유사 등에서 고유제 행사계획
ㅡ 지역 지자체 향후 계획
ㅡ 문중과 종원이 알아야 할 사항
ㅡ기타 도동서원 발전사항 등 차후 많은 관심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금번 도동서원 세계유산 행사를 위하여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로 문중의 수영 유사와 태수 종보 주간 2분이 취재차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도동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관련하여
학생. 청장년 등 문중과 도동서원 역사, 문화탐방 투어분들에게 소감문 발표 등 행사를 계획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