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meditation)
자, 명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명상에 접근해야합니다.
당신은 "모릅니다(I do not know).”라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명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명상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닫힌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제발, 이 말을 정말로 당신이 따라오고 있다면-내가 말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듯이 사물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면-그러면, 당신 스스로 명상의 중요성을 발견할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하는지, 어떤 체계를 따라야 하는지,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종류의 요가를 수행해야 하는지 등등을 묻는 태도로 이 문제를 접근해 왔습니다.
우리는 명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떻게”가 뭔가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은 명상이 뭔지를 알고 있나요?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도 여러 분도 모를 겁니다(I do not, nor, I think, do you).
따라서 우리 양자는-비록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많은 요가 수행을 했다손 치더라도 -
모릅니다(I do not know)."라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은 실제로 모릅니다. 당신은 특정한 행동 패턴이나 훈련 패턴을 통해 어떤 특정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단지 희망하고, 욕망하고, 원하는 겁니다. 그 상태는 완전히 착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 자신의 희구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럴 건데, 그것은 마치 비참한 존재의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반작용으로서의 당신의 투사물입니다.
따라서 최초의 핵심은 어떻게 명상을 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명상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모름에서(without knowing)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명상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에 매우 익숙합니다.
단어의 반복, 기도, 특정한 자세를 취하는 것, 특정한 문구나 영상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
조식(調息: 숨고르기), 신체를 아주 가만히 두는 것, 마음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 이런 일에 우리는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마음을 초월한, 생각의 일시적 과정을 초월한 어떤 것으로 이끌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고, 가장 좋은 물건을 발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방법들을 비교하려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라는 이 논란거리는 완전히 거짓된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는 명상이 무엇인지 알아 낼 수가 있을까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질문입니다. 명상한다는 것, 명상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비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찾아봅시다.
명백하게도 명상은 어떤 체계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이 이러한 수련과 방법이라는 전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까?
그런 전통은 여기 뿐 아니라 인도에도 있는 겁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필수적입니다.
명상이 뭔지를 나는 모르기(I do not know) 때문입니다.
나는 어떻게 집중하는지, 어떻게 통제하는지, 어떻게 수련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나는 모릅니다(I do not know).
나는 단지 “만약 당신이 이런 일들을 한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만을 지금까지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탐욕스럽기 때문에, 이러한 수련들을 실제로 닦습니다.
자, 그러면 나는 명상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방법에 대한 이러한 요구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어떻게 명상하는가를 묻는 대신 명상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inquire) 순간 당신은 명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혼자의 힘으로 명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출발한 순간,
모르고 있는(not knowing) 내 마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러한 상태를 성취하기 위한 나의 욕망을 한쪽으로 치워놓아야(put aside)만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취하려는 욕망이 바로 내가 방법을 찾는 뿌리이고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화와 고요함의 순간, 그리고 “별개의 것이 된(otherness)” 감각을 과거부터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다시 성취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상태(a permanent state)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를 추구하는 겁니다. 나는 이미 그 다른 상태라는 게 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방법이 나를 그 상태로 인도할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다른 상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고, 나의 희구가 투사된 것에 불과합니다.
내 마음이 명상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면, 성취하고 결과를 얻으려는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고 따라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모든 권위를 완전히 제쳐둡니다(set aside).
우리는 명상이 무엇인지 모르기(we do not know) 때문에,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없으므로(no one can tell us),
나의 마음은 완전히 “모름"의 상태(in a state of "not knowing")가 됩니다.
거기에는 방법이 없고, 기도도 없으며, 단어의 반복(역자 주 ; 주문이나 염불)도 없고, 집중도 없습니다.
마음은 집중이 단지 또다른 형태의 성취라는 것을 봅니다(see).
특정한 관념에 대한 마음의 집중-배제를 통해 자신을 훈련하여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은 다시 ”앎(knowing)"이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내가 모른다면(if I do not know), 이런 모든 일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성취나 도달한다는 개념을 통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기슭(other shore)으로 내가 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축적의 감각이 더 이상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그것을 다했다면, 명상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않았을까요?
거기에는 갈등도 없고, 투쟁도 없으며, 축적의 감각도 없습니다. 특정한 시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늘(at all times) 그렇습니다.
그래서 명상은 마음이 완전히 발가숭이가 되는 과정입니다.
축적과 성취의 모든 감각-그 감각이 바로 자아, “나”의 성품인데-이 정화되는 과정입니다.
다양한 방법을 수행하는 것은 “나”를 강화할 뿐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감싸거나 미화하거나 세련되게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래도 “나”입니다.
그래서 명상은 자아의 방식들을 벌겨 벗기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명상 속으로 깊게 들어가면, 명상이 습관이 되는 그런 순간이 결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습관은 축적이고, 축적이 있는 곳에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축적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한 명상이란 알려진 것(the known)의 영역이고, 자기 최면의 수단이라는 측면 외에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는 겁니다.
마음이 자각(awarenes)을 통해, 자기지(自己知 : self-knowledge)를 통해,
축적에 대한 이러한 전체적 감각을 싹 닦아내 버렸을(wipe away) 때, 마음은 단지 “모른다(I do not know)"는 말만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겁니다. 단지 말로서만 그런 게 아니고 말입니다.
따라서 명상은 자신의 축적물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지
조용한 상태나 고요한 상태(a state of silence, of quietness)를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축적할 수 있는 한, 그것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이“ 라는 것이 바로 체계나 방법, 권위세움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자아의 바로 그 방식입니다.
마음이 그러한 오류를 완벽하게 본다면(see),
그때 마음은 ”모름"의 일정한 상태(in a constant state of "not knowing")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되어야 측정할 수 없고 순간에서 순간으로 존재 속으로 들어올 뿐인 그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첫댓글 <마음 풀어내기> 5번 게시물로 어느 분이 올리신 글을, 읽기 좋게 끊어서 다시 올려봅니다. 명상이라는 것의 '이해'에 도움이 되실듯 해서요...
감사합니다^^정말 좋네요^^
존재를 그대로 인삭하고 이해하는것 .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