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교통네트워크 논평]
용인경전철의 무리한 수요예측,
그리고 협약 변경에 대한 책임을 묻다
- 행정과 전문가의 무책임에 맞서 싸운 12년 간의 주민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한다
- 공공교통네트워크 “주민소송 줄잇기 전에 기존 민자사업 전수조사 및 재발 방지책 마련되어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난 2013년 용인시민들의 주민감사 청구를 통해 시작된 지리한 주민소송이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윤곽이 나왔다. 판결에서는 용인시 정책담당보좌관이 법무법인을 선정하는 과정을 방해하여 5억 5,000만 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부분, 용인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 개인의 수요예측 부실로 인한 손해 214억 원을 인정하고 한국교통연구원의 사용자 책임에 대해 43억 원을 확정했다. 당초 주민소송에는 전임 시장들을 비롯해 관련 공무원들이 더 있었지만 소송 과정에서 이들의 책임이 부인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민간투자사업의 핵심적인 근거였던 수요예측 조사에 대한 법적 책임이 명확하게 규명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판결은 영향력이 큰 권한에 마땅히 그에 비례하는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상식을 보여준다. 수요예측에 의해 사업의 타당성이 결정되고 미래의 재정부담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해당 절차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형식적인 수요조사를 통해서 시민들을 기만하고 이후 막대한 재정부담을 주민들에게 전가해온 주요 민간투자사업의 관례에 쐐기를 박는 결정이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민간투자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온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관련 정부 부처의 기존 민간투자사업 지침은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특히 사전타당성 조사 과정에서의 수요예측이 사업 추진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바, 이에 대한 교차 검증에 대한 절차를 마련하고 해당 근거를 공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민간사업자의 영업비밀이라는 식으로 감춰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번 판결을 계기로, 2000년 이후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번 소송은 용인시민들이 10년 넘게 주민감사에서 시작해서 소송까지 해오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었던 결과다. 비슷한 문제가 있어도 10년 넘게 시간을 쓰지 않으면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큰 사회적 낭비다. 오히려 이번 판결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감사원에 감사의뢰를 하는 것이 맞다.
다음으로 정보의 투명성에 대한 부분이다. 현행 주민소송은 주민감사를 먼저 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주민감사는 주민들이 요청한 감사 사항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즉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어 있지 않으면 주민들은 주민감사 청구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장래에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의 경우에는 정보의 공개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정보공개 수준은 ‘숫자를 다 지우고 공개’하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쟁점이 되는 비용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비공개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조사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원천 데이터와 계산 방식에 대해서는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교통 수요예측에 필요한 데이터는 이미 공공데이터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몇몇 사업자에게만 선택적으로 공개하기 때문에 왜곡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상호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요예측 역시 모델링의 방식에 따라서 전혀 다른 숫자나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방법론에 대한 공개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현재 2,000만 원 수준으로 고정된 수요예측 용역에 대한 단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다양한 전문기관이 수요예측의 기법을 발전시키고 상호 검증을 통해서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요예측 단가는 지나치게 낮다. 적절한 R&D가 가능한 조건을 갖춰주어야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어려운 싸움을 진행해온 용인시민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이번 판결로 무비판적으로 확대되어온 민간투자사업의 그늘이 명확하게 조명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통연구원의 개별 연구원에 대한 책임 부분이 파기 환송된 것에 주목한다. 책임이 없는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한국교통연구원이 그간 교통분야에서 결정적으로 미친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책연구기관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기관이 될 소지가 크다. 따라서 쟁점은 개인이 책임지냐 아니냐가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이 국민들을 위한 기관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다. 비슷한 싸움을 해온 의정부경전철과 서울지하철9호선의 문제를 돌아보면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지 주민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문제없다는 식으로 희희낙락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끝]
2025년 7월 16일
공공교통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