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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5.5.PM 2시)
현수품(賢首品)2
현수보살이 게송으로 대답하다
5월 5일 어린이날 화엄경 한단락 공부하겠다. 고맙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현수품(賢首品) 권수로는 15권째
ㅂ. 여섯 광명이 육바라밀을 나타내다
6바라밀, 제가 자주 말씀드리고 또 대승불교에서는 으레 모든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기본덕목을 이야기하면 여섯 가지 6바라밀이다.
우방광명명능사(又放光明名能捨)니 차광각오간중생(此光覺悟慳衆生)하야
영지재보실비상(令知財寶悉非常)하야 항락혜시심무착(恒樂惠施心無着)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능사(能捨)’라
이 광명이 간탐(慳貪)중생을 깨우쳐서
재물이 모두 항상 하지 않음을 알아서
항상 보시를 즐겨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능사(能捨)’라
능사(能捨) 능히 보시하다. 능히 버리다.
이 광명이 간탐(慳貪)중생을 깨우쳐서
재물이 모두 항상 하지 않음을 알아서
항상 보시를 즐겨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게 하나니라
능사(能捨)라고 하는 광명을 착 놓았다. 이 광명이 아주 정말 좋은 광명이다.
육바라밀은 실로 광명 중의 광명이다.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은 세상을 밝히는 밝고 밝은 광명이다. 바라밀 하나하나가 참으로 눈이 부시는 광명이다. 이제 여섯 광명으로 육바라밀을 나타낸다.
첫째는 보시를 뜻하는 ‘능사(能捨)’라는 광명이다. 능사란 능히 버리듯이 보시하여 일체 미련을 가지지 않고 과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 재물은 항상 하지 않는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재물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굴지의 거부가 재산 때문에 형제 사이에 소송을 제기해서 온 국민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꼴은 참으로 보기가 민망하다. 부모의 시신을 앞에 두고 재산문제로 형제가 멱살잡이를 하는 것도 참으로 볼썽사납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중생들은 탐·진·치 삼독이 너무나도 치성하다. 재산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재앙 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보시야말로 이 세상을 비추는 광명 중의 광명이리라.
가까이에 내가 제일 도반처럼 생각하는 용학스님이 목어TV를 잘 운영하고 계시는데, 지금 용학스님이 아직 안들어왔다. 그런데 용학스님이 자주 이야기한다. ‘단돈 10원도 남겨 놓지 말고, 열반에 들 수 있었으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재앙의 씨가 되기 때문에 문제를 야기한다. 죽은 뒤에 그까짓 시체 어떻게 처리하든지 누가 어떻게 갖다가 처리하든지 최소한의 경비로써 처리하려면 여기 가까이 금정구에 화장막이 있는데 금정구 사람들은 몇십 만원이면 다 된다고 한다. 백 만원 이하로 처리할 수가 있고 그 정도는 누가 해도 안해주겠느냐? 그러니 단 돈 10원도 남겨놓을 생각하지 말라’ 정말 중요한 말이다.
우리는시체를 가지고 서로 가지려고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것, 시비의 문제거리가 될 만한 거리, 조금이라도 돈이 될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또 문제거리가 된다. 그런 것을 어떻게 깨끗하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참 관심사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제일 관심사다. 또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잘 가르친다. 방금도 읽었듯이 국가에서 굴지의 거부가 재산 때문에 형제 사이에 소송을 제기하고 부모 시신을 두고 못사는 사람들도 아닌데도 시신을 앞에 두고 재산 때문에 형제가 멱살잡이를 하는 일이라든지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는가?
참 선지식이다.
그런 것을 보고 우리가 깨달아야 되고, 그런 것을 보고 우리가 마음을 좀 다지고 그래야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의미 있게 보시하는 것이 참 필요하다.
여기보면 능사라는 광명, 보시라는 광명으로써 간탐중생을 깨우친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재산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보시를 즐겨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게 한다
여기서는 재물을 이야기했지만, 재물뿐만은 아니다.
간심난조이능조(慳心難調而能調)하고 해재여몽여부운(解財如夢如浮雲)하야
증장혜시청정심(增長惠施淸淨心)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간탐하는 마음이 조복하기 어려우나 능히 조복하고
재물이란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음을 알아서
보시하는 청정한 마음을 증장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간탐하는 마음이 조복하기 어려우나 능히 조복하고
그렇다. 아끼고 싶다. 정말 아끼고 싶고, 함부로 남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안 난다. 그런데 사실은
재물이란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
그것을 누가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아는 것도 심도가 다르다. 얼마만치 깊이 있게 아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저는 수시로 좋은 책을 찍어서, 법공양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법공양으로써 올린다.
‘법공양을 올리는 것이 제일 의미있게 돈을 쓰는 길이다’ 저 나름대로는 그렇게 알고 있다.
어디를 돌아봐도 그보다 더 의미있게 돈을 쓰는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더 의미있고 더 잘하는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또 따를 것이다.
우방광명명제열(又放光明名除熱)이니 차광능각훼금자(此光能覺毁禁者)하야
보사수지청정계(普使受持淸淨戒)하야 발심원증무사도(發心願證無師道)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제열(除熱)’이라
이 광명이 능히 파계한 자를 깨우쳐서
청정한 계를 널리 받아 지녀서
발심하여 스승 없는 도를 증득케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제열(除熱)’이라
제할 제(除)자 열기라고 하는 열(熱)
이 광명이 능히 파계한 자를 깨우쳐서
청정한 계를 널리 받아 지녀서
발심하여 스승 없는 도를 증득케 하나니라
여섯가지 광명이 6바라밀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앞에는 보시에 관한 광명이고 두 번째는 지계에 관한 광명인데
이 광명이 능히 파계한 자를 깨우쳐서
청정한 계를 널리 받아 지녀서
발심하여 스승 없는 도를 증득케 하나니라
스승 없는 도, 본래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갖춰져 있는 도, 그것을 이르는 말이다.
권인중생수지계(勸引衆生受持戒)하야 십선업도실청정(十善業道悉淸淨)하며
우령발향보리심(又令發向菩提心)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중생을 권하여 이끌어 계를 받아 지녀서
열 가지 선업도(善業道)를 다 청정케 하며
또 보리심을 발하게 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중생을 권하여 이끌어 계를 받아 지녀서
열 가지 선업도를 다 청정케 하며
착할 선(善)자 선업도를 다 청정케 한다 그랬다.
열 가지 선업은 10선업은 십악을 바꾸면 십선이 된다. 살생을 방생으로, 투도를 보시로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반대로 바꾸는 것이다.
우방광명명인엄(又放光明名忍嚴)이니 차광각오진에자(此光覺悟瞋恚者)하야
영피제진리아만(令彼除瞋離我慢)하야 상락인욕유화법(常樂忍辱柔和法)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인엄(忍嚴)’이라
이 광명이 성내는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성냄을 제거하고 아만(我慢)을 여의게 하여
항상 참고 부드럽고 온화한 법을 즐기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인엄(忍嚴)이라 참을 인(忍)자 엄할 엄(嚴)자 인엄(忍嚴) 참는 것만치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인엄(忍嚴)’이라
참는 사람은 그 모습이 아주 훌륭하다. 이것이 훌륭하다고 하는 엄(嚴)자다.
이 광명이 성내는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성냄을 제거하고 아만(我慢)을 여의게 하여
성을 안내면 아만이 이미 없다는 뜻이다. 아만이 있으면 성을 낸다. 그 아만 때문에 성을 낸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성냄을 제거하고 아만(我慢)을 여의게 하여
잊어버리고 또 실수한다. 잠깐동안 착각하고 그만 자기를 내세우고 아상을 내세운다. 전부 자기라고 하는 알량한 자기, 생각해보면 자기라는 것 정말 이 지구상에 80억 인구 가운데 누구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80억 인구 중에 자기보다 누군들 잘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는 알량하게 자기에게 집착하는 바람에 그렇게 자기를 내세운다. 그것이 아만이다. 잘난 체 하는 것이다.
항상 참고 부드럽고 온화한 법을 즐기게 하나니라
아만을 떠나 자기만 내려놓으면, 항상 참고, 부드럽고, 온화한 도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 출가하러 처음에 오면 행자실에 들어가는데 행자실에 가서 처음 보는 글이 하심(下心)이라는 글이다. 하심(下心) 여러분들 집집마다 하심이라고 크게 써서 여기저기 거실에서부터 화장대 앞에 식당에 곳곳에다 좀 붙여놓기 바란다. 천 번 만 번 하심해도 부족한 것이 또 하심이다.
끊임없이 하심(下心), 하심하는 사람 만복(萬福)이 자귀의(自歸依)라. 만복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그랬다.
하심하는 사람에게 만 가지 복이 돌아온다.
그래서 행자실에 딱 들어가서 우리가 행자 생활을 하면 처음에 하심부터 배워라. 세속에서 제잘난 맛에 살았는데 그 마음 내려놓아라. 이 세상 80억 인구는 누구나 다 잘났다. 그러니 잘난체하지 마라. 제발 아만심 좀 내려놓아라 라는 뜻에서 하심이다.
그거 하나만 행자 때 배워서 평생 중노릇 하는 데 그것 하나만 잘 써도 훌륭한 수행자가 되고 훌륭한 중노릇을 하게 되고 어디가도 존경을 받는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승납도 많고 그런 데도 불구하고 행자 때 하심하던 그대로 하심하면 ‘하심 잘하는 보살’이라고 전국 사찰에 소문이 나서 그 스님 가면 방부를 서로 받아주려고 하고, 선방에서는 서로 와서 살라고 한다.
그런 도리가 있다. 만복(萬福)이 자귀의(自歸依)라. 만 가지 복이 자기에게 스스로 돌아온다. 하심이 그와 같은 보물이다.
여기 참는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하심하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생포악난가인(衆生暴惡難可忍)이어늘 위보리고심부동(爲菩提故心不動)하야
상락칭양인공덕(常樂稱揚忍功德)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중생의 포악(暴惡)함이 참기 어렵거늘
보리(菩提)를 위한 연고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항상 참는 공덕 칭찬하기를 즐길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중생의 포악(暴惡)함이 참기 어렵거늘
상대가 포악하게 굴더라도 그것을 참고
보리(菩提)를 위한 연고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아무리 세상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서 사정없이 포악하게 굴더라도 ‘아, 이런 것은 나로 하여금 정말 깨닫게 하는 선지식의 가르침이구나’ 이렇게 마음을 돌리면 얼마나 복이 되겠는가? 크게 돈 들여서 복 짓지 않더라도 그런 상황을 잘 넘기면 그냥 복이 굴러 들어온다.
항상 참는 공덕 칭찬하기를 즐길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우방광명명용맹(又放光明名勇猛)이니 차광각오라타자(此光覺悟懶惰者)하야
영피상어삼보중(令彼常於三寶中)에 공경공양무피염(恭敬供養無疲厭)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용맹(勇猛)’이라
이 광명이 게으른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항상 삼보(三寶) 가운데서
공경하고 공양하되 피로하고 싫음이 없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용맹(勇猛)이라
이것은 정진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광명이 게으른 자를 깨우쳐서
용맹정진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주 힘차게 정진한다는 뜻이다. 세속에서는 게으르고 이리저리 살았는데 수행하기 위해서 출가했다, 그러면 용맹정진을 해야 한다. 열심히 정진해야 된다. 절에 들어오면 편안히 게으름 부려도 되는 줄 알지만 그렇게 하면 도태된다. 세속에서 도태되는 것보다 더 빨리 잘 도태되어서 못 견딘다. 저절로 그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정진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
약피상어삼보중(若彼常於三寶中)에 공경공양무피염(恭敬供養無疲厭)이면
즉능초출사마경(則能超出四魔境)하야 속성무상불보리(速成無上佛菩提)니라
만약 그가 항상 삼보 가운데
공경하고 공양하되 피로하고 싫음이 없으면
곧 능히 네 가지 마(魔)의 경계에서 벗어나서
빨리 최상의 불보리(佛菩提)를 이루느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리라 그랬다.
네 가지 마(魔)의 경계라고 하는 것은 신심을 괴롭히는 번뇌와 갖가지 고민을 생기게 하는 오음(五陰)과 죽음과 사람의 선행을 방해하는 타화자재천 등이다.
그렇게 사전적인 해석이 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들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이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 하는 것이라고 경전마다 많이 나와 있다.
세속에서도 점잖은 선비, 점잖은 어른들이 으레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성실하게 진심을 다해서 성의를 다해서 모든 일을 하라’ 고 하는 가르침과 같다.
권화중생영진책(勸化衆生令進策)하야 상근공양어삼보(常勤供養於三寶)하야
법욕멸시전수호(法欲滅時專守護)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중생을 권하여 교화해서 정진하게 하여
항상 부지런히 삼보에 공양하며
법이 멸하고자 할 때 전념으로 수호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이 광명은
중생을 권하여 교화해서 정진하게 하여
그래 우리가 자꾸 화엄경을 이렇게 권하고, ‘화엄경 내용은 부처님 깨달음의 진수가 담겨있다’고 자꾸 이야기를 해서 권하지 않는가. 그래서 화엄경에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부지런히 삼보에 공양하며
법이 멸하고자 할 때 전념으로 수호할새
법을 잘 수호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화엄경을 이렇게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자꾸 세상이 말세가 되어가면서 이 정법이 불교의 그 바른 정법, 좋은 법이 자꾸 소멸하고자 하는 경향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열심히 함으로 해서 정법이 잘 수호가 된다.
법이 멸하고자 할 때 전념으로 수호할새
이것이 우리가 법을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들 자신이 법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서 내 자신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볼 때 그대로가 불법을 잘 수호하는 일이다.
그래서 불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화엄경 같은 이런 정법을 우리가 공부해야 되고, 정법이 수호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2600여 년이 넘어서 사실은 사이비 법들이 너무 많이 횡행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불법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불법이 아닌 내용의 불법, 그런 불법이 참 많다.
그런 것을 분별하려면 안목이 있어야 되고, 소견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안목과 소견은 어디서 갖추겠는가? 이런 화엄경 같은 정말 훌륭한 경전을 우리가 공부함으로 해서 거기에서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거기에서 안목을 갖추지 아니하고는 어디 갖출 데가 없다.
잣대를 어디서 구하는가?
이런 화엄경 같은 데서 정법과 사이비 법을 분별할 줄 아는 잣대를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야기다.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했는데, 중생을 권하여 교화해서 정진하게 한다.
사람들에게 자꾸 화엄경을 권하고 불교의 정법을 자꾸 권한다. 그래서 여기에 공부 좀 하도록 하라.
제가 정법에 해당되는 책들을 자꾸 찍어서 법공양을 올리고, 화엄경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항상 부지런히 삼보에게 공양하여
법이 멸하고자 할 때 전념으로 수호할새
이런 고로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광명의 연유야 어떻게 됐든 간에 광명 이야기를 함으로 해서 그 안에 우리가 깨우칠 내용이 있다.
우리가 깨우칠 중요한 내용이 그 안에 가득히 담겨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참 중요하다.
우방광명명적정(又放光明名寂靜)이니 차광능각난의자(此光能覺亂意者)하야
영기원리탐에치(令其遠離貪恚癡)하야 심부동요이정정(心不動搖而正定)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적정(寂靜)’이라
이 광명이 능히 뜻이 산란한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탐․진․치를 멀리 여의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바르고 안정하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적정(寂靜)’이라
이것은 선정에 해당된다. 고요할 적(寂)자 고요할 정(靜)자
이 광명이 능히 뜻이 산란한 자를 깨우쳐서
마음을 딱 안정시키는 것, 선정, 그것은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탐․진․치를 멀리 여의어서
마음이 탁 안정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선정이라고 하든지 삼매에 들었다고 하든지 간에 그 탐욕, 진심, 어리석음 이것이 일어나려고 해도 탁 거울에 비추듯이 비쳐지니까 그것이 작용하지가 않는다.
‘이것은 탐욕인데?’ 하고 밖으로 드러나기 전에 스스로 잠재운다. ‘아 이것은 진심(嗔心)인데?’ 하고 스스로 잠재운다. ‘이것은 어리석음인데?’하고 스스로 잠재운다.
선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작은 의식을 하나 하든지 법회를 하든지 간에 무조건 처음에 형식적이나마 한 1분쯤이라도 입정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입정을 하고 마음을 잠깐이라도 가라 앉히면 물이 마치 맑아서 그 주변에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 물에 도장 찍듯이 잘 드러나지 않는가? 드러나면 ‘새가 날아가는 그림자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이다’등등 환하게 분별할 수가 있다.
그것을 해인삼매까지라도 말을 안하더라도 마음이 그렇게 안정이 됨으로 해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탐진치 삼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누군들 탐진치 삼독을 우정 부리려고 부리는 사람은 없다. 자기도 모르게 탐진치 삼독의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가는 것이다. 휘말려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휘말려 가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마음이 딱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이 안정이 되면 탐진치 삼독이 일어나려고 해도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다.
그런 분별 정도는 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분별심은 다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바르고 안정하게 하나니라
라고 하는 말이 그런 뜻이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말이다. 적정이라고 하는 광명.
사리일체악지식(捨離一切惡知識)의 무의담설잡염행(無義談說雜染行)하고
찬탄선정아란야(讚歎禪定阿蘭若)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일체 악지식(惡知識)들의
뜻 없는 말과 잡되고 물든 행을 멀리 여의고
선정(禪定)과 아란야[寂靜處]를 찬탄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적정이라고 하는 광명인데 그 광명은
일체 악지식(惡知識)들의
뜻 없는 말과 잡되고 물든 행을 멀리 여의고
아무 쓰잘데 없는 말들, 하루종일 이야기해봐야 남는 것도 없고, 깨우칠 것도 없고, 뭔가 내 자신의 신구의(身口意)삼업을 바로잡을 것도 없고, 본받을 것도 하나도 없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얼마나 많이 했는가. 그것이 만약에 형상이 있는 일이라면 그 형상이 저기 태산, 한 사람이 한 잡담만 하더라도 태산이 여러 수십 개가 될 것이다.
그것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우리가 잡된 말들, 말하는 그것이 형상이 없기에 망정이지 형상이 있기로 한다면 가관일 것이다. 말하는 것마다 나가서 모양이 생겨서 쌓이고 쌓이고, 참 큰일 날 뻔 했다.
선정(禪定)과 아란야[寂靜處]를 찬탄할새
선정은 우리가 선정에 드는 것이고 아란야는 적정처인데 이왕이면 고요한 곳, 시끄러운 곳을 피하고 가능하면 적정한 곳,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시끄럽게 되어 있으면 어지간한 사람은 다 환경에 휘둘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란야, 적정처를 경전에서 권하는 것이다.
환경이 그렇게 되고 또 거기다 선정까지 우리가 마음에 안정을 시킨다면 우리 마음이 딱 바로 잡을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입정할 때 보면 그 주변에 그 누구도 꼼짝하지 않는다. 적정처를 우리가 전체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개개인은 또 입정에 딱 든다.
자기가 하는 염불을 하든지 경전구절을 외우든지 화두를 들든지 진언을 외우든지 자기가 안정시킬 거리를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관세음보살도 좋고, 화엄성중도 좋고 그것을 혼자 가만히 속으로 읊조리면서 또 주변에 모두 조용하니까 저절로 입정이 된다.
그런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그것을 자꾸 찬탄하고 습관을 자꾸 들이면 이런 까닭에 적정이라고 하는 광명을 얻었다, 이런 내용이다.
우방광명명혜엄(又放光明名慧嚴)이니 차광각오우미자(此光覺悟愚迷者)하야
영기증제해연기(令其證諦解緣起)하야 제근지혜실통달(諸根智慧悉通達)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혜엄(慧嚴)’이라
이 광명이 어리석고 미혹한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연기를 알아서
모든 근(根)과 지혜를 다 통달하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혜엄(慧嚴)이라
이 지혜는 6바라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할 때의 마지막 지혜다.
혜엄(慧嚴) 지혜 혜(慧)자 장엄할 엄(嚴)자
이 광명이 어리석고 미혹한 자를 깨우쳐서
지혜의 반대는 어리석고 미혹이니까, 그 지혜가 있다면 어리석음, 미혹 이런 것은 다 깨닫게 된다.
그로 하여금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연기를 알아서
이것이 아주 묘가 있는 말씀이다.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연기를 안다 그랬다. 증제해연기(證諦解緣起) 증제 진실한 이치를 증득하고 연기를 이해한다.
모든 것은 연기다. 인연관계이고 인연과보다. 그 이치를 아는 것은 지혜다.
그 이치만 잘 알아도 그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다. 제가 옛날에 대만 성지 순례 가서 <108 자재어>를 얻어서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책을 이렇게 뒤지다 보니까 몇 페이지 안 넘어가서 인연이야기가 나왔다.
성공의 삼박자라고 하는 대목이다.
성공의 삼박자는 인연을 순응하고 인연을 이해하고 인연을 창조하는 것, 인연을 이해하고 순응하고 또 인연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성공의 삼박자다. 다시 말해서 인연의 이치만 잘 알아서 활용하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세속적인 입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그것이 전부 인연이라고 하는 도리에서, 자기가 그런 위치에 있다고 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순응하고 또 거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고 발전하려면 창조까지 할 줄 알아야 된다. 인연을 창조까지 할 줄 알아야 된다.
그 구절을 듣고는 ‘야 이 스님 참 선지식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는 와서 지금까지 <108 자재어>를 13만권 정도를 출판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보시한다.
법공양실에는 항상 <108 자재어>는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책들도 상당히 많이 했지만 단일 품목으로써 제일 많이 한 것이 <108 자재어>다. 13만권 정도 그것만 해도 상당한 액수다.
저에게 법공양 하라고 많은 분들이 매일 천원씩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잊지 않고 법공양한다는 뜻이다. 참 의미가 좋은 것이다.
요즘 공부하러 들어오는 분들 중에서도 있지만, 그런 분들, 천원씩, 또 혹은 백만원씩 이렇게 들어오는 돈들 전부 알뜰히 모아서, 법공양을 그렇게 한다.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법공양 올리지 않고 무엇을 법공양 올리겠느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법공양을 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것도 인연의 도리를, 연기의 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깨달았느냐’라고 할 때 두 말 없이 거의 99프로가 ‘연기의 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연기의 도리를 가르쳤다’ 그렇게 답을 쓰면 그것이 99점은 된다.
100점 주는 사람들도 아마 한 99프로는 될 것이다.
그와 같이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연기의 이치고, 인연의 도리다.
제가 그 책 한 구절에서 바로 인연에 대한 도리를 성공의 삼박자로 풀이해 낸 그 구절을 읽고는 거기에 감동을 해서 돌아오자마자 책을 매번 5천권씩 5천권씩 찍어서 지금 15만권인가 13만권인가 제일 마지막 찍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매번 이것은 무조건 5천권씩 했다.
그래서 스님들이 싣고 가고 택배로 부쳐주고 해서 전국에 안깔려 있는 데가 없을 것이다.
나는 상당히 자부심도 갖고 또 이러한 것이 전부 여러 우리 불자님들이 함께 동참해서 이루어진 공덕의 탑이다.
그야말로 불자님들이 함께 쌓은 공덕탑이다, 저는 그렇게 자부를 한다.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연기를 알아서
연기를 아는 것이 진실한 법을 증득하는 것이다.
모든 근(根)과 지혜를 다 통달하게 하나니라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약능증제해연기(若能證諦解緣起)하야 제근지혜실통달(諸根智慧悉通達)이면
즉득일등삼매법(則得日燈三昧法)하야 지혜광명성불과(智慧光明成佛果)니라
만약 능히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연기를 알아서
모든 근과 지혜를 다 통달하면
곧 일등(日燈)삼매법을 얻어서
지혜의 광명으로 불과(佛果)를 이루느니라.
일등(日燈) 날 일(日)자 하고 등불이라고 하는 등(燈)자 태양이라고 하는 일자, 오늘같이 태양이 얼마나 밝은가?
또 거기다 등불이라는 등자다. 일등
지혜의 광명으로 불과를 이루느니라. 일등 삼매법을 얻어서 환하게 태양처럼 낮에는 태양처럼 밤에는 등불처럼 낮에는 태양으로 비추고 밤에는 등불로 비추는 것과 같이 지혜의 광명으로써 불과를 이루느니라.
이것이 뭐라고 했는가?
진실한 법을 증득하고 연기를 알고
모든 근과 지혜를 다 통달하면
일등(日燈)삼매를 얻는다
참 좋은 내용이다.
국재급기개능사(國財及己皆能捨)하고 위보리고구정법(爲菩提故求正法)하야
문이전근위중설(聞已專勤爲衆說)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국토와 재물과 자기 몸까지 모두 능히 버리고
보리를 위하여 바른 법을 구하며
듣고 나서는 오로지 중생을 위해 부지런히 설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국토와 재물과 자기 몸까지 모두 능히 버리고
보시해서
보리를 위하여 바른 법을 구하며
깨달음을 위하여 바른 법을 구하며
듣고 나서는 오로지 중생을 위해 부지런히 설할새
여러분들 좋은 법을 배웠으면‘오늘 이러한 법을 배웠다’고 ‘이러한 구절을 알았다’라고 저는 요즘에 음식물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 한 몇 만년 전에 살았을 때 최초에 무엇을 먹었을까? 그것이 사람의 음식의 원형이다’ 이런 학자들이 요즘 서양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학자들이 쓴 책들이 많이 전해져서 소개가 되고 있는데 참 일리 있는 연구다.
인류가 몇 만년 전에는 최초에 무엇으로써 음식물을 삼았을까? 그것이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원형이다. 그 원형을 찾아서 원형대로 우리도 음식물을 섭취하면 병도 안 걸리고 있던 병도 낫고 그럴 것이다. 그런 원리에 관심을 기울여서 인연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내가 이야기도 하고, 이야기할 기회만 있으면 이야기도 하고, 카톡으로 내가 듣던 책들도 전해주기도 하고 그렇게 한다.
여기에 보라
듣고 나서는 오로지 중생을 위해 부지런히 설할새
부지런히 설할새, 음식물 이야기까지도 그렇게 전해주고 싶은데 부처님의 깨달음의 이치, 전인생의 가장 살아가는데 긴요한 이치, 이것을 우리가 수긍이 가게 한 구절이라도 들었다면 얼른 전화라도 걸어서 좀 가르쳐 주고 소개도 하고 그래야 될 것이 아닌가?
음식물은 자기 습관 때문에 아무리 권해도 안고쳐진다.
고쳐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거는 참 바른 이치다’ 싶어서 그것을 도반들에게 전해주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그래도 음식에 대한 업, 습관은 참 안 고쳐 진다. 잘 안 고쳐지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래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이 불법 정법 이런 것을 우리가 들었다면, 감동을 했다면 이것을 얼른 다른 사람들에게 좀 널리 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그런 운동, 그런 전법운동 그런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맑고 향기롭게 해야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오늘 내용이 좋고, 날씨도 좋고, 어린이날이고 해서 등등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졌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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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첫댓글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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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0원도 남겨두지 말고 다 보시하기. 能捨.
十惡도 十善이 되는 除熱.
我慢을 버려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을 갖게되는 下心의 忍嚴.
게으른 자를 깨우쳐 삼보를 공양케하는 勇猛.
탐진치와 모든 惡知識을 떠나 선정에 들게하는 寂靜.
보리를 구하여 중생을 위해 설하는 日燈.
이 모든 광명이 항상 함께 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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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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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