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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남정면향우회
 
 
 
카페 게시글
고 향 생각 스크랩 내연산.보경사
자연인 추천 0 조회 24 09.09.22 17: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내연산(內延山) 710m (경북 포항시 송라면, 청하면, 죽장면, 영덕군 남정면)

                   ▶ 코스 : 보경사 - 문수암 - 문수봉(628m) - 내연산(710m) - 거무나리 - 은폭 - 청하골 - 보경사

                   ▶ 시간 : 5시간 30분

                   ▶ 일시 : 2008. 9. 8(화)

 

보경사 경내 솔밭을 지나

 

 문수봉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청하골과 상생폭포

(멀리 향로봉 라인이 보인다) 

 

 문수암

 

문수봉에 올라

 

 폭신한  산상의 실크로드를 걷다보니

 

어느덧 내연산 삼지봉이다

 

 삼지봉에서 거무나리 능선을 거쳐 청하골로 하산

 

청하골 열 두 폭포 중 첫 번째로 마주친 '은폭'

애시당초는 음폭(陰瀑)이라 불렀으나 거북살스럽다고 해서 은폭(隱瀑)으로 바꿔 부른다고

 

 

 내려다본 '학소대'

 

청하골 최대의 비경 

관음 쌍폭과 관음굴 그리고 감로담

 

천하명승 내연산 청하골의 폭포 비경을 세상에 알린것은 조선조의 시인묵객들이라고.

조선 중엽의 성리학자 우담(愚潭) 정시한(1625~1707)이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며 기록한 『산중일기』에

내연산 탐승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글에서 그는 용추(龍湫), 즉 연산폭포, 관음폭포, 무풍폭포, 잠룡폭포 일대의 모습을 그리면서

“금강산에도 없는 것”이라며 극찬하였다고.

 

 연산폭포(延山瀑)

 

내연산 폭포의 진수를 세상에  크게 알린 공로자는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謙齋) 정선(鄭敾).

 58세 때인 1733년 이른 봄부터 1735년 5월까지  청하현감을 지냈었는데, 그 시절

<내연삼용추도>, <내연산폭포도>, <고사의송관란도> 등, 청하골을 직접 답사 그림을 남기게 되었는바

이로서 내연산의 폭포는 비로소 전국적 명승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한다.

 

“그(보경사) 위 10리에 용추가 있어 돌등성이를 예닐곱번 굽어들어 폭포에 가 닿는데,

장쾌하고 아리땁되 어둑하고 검푸르죽죽하여 차마 쳐다볼 수가 없다.

그 남쪽 학소대는 하늘을 찌를 듯 바위가 사면으로 깎였는데….

 

성해응(1760~1839)의"동국명산기" 중에서...

  

연산폭포, 관음폭포 주변 바위면에는 이 곳을 다녀간 3백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이름을 통해 내연산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이 중 각종 문헌을 통해 검색이 가능한 사람은 60명 정도이다.

이들 중에는 청하현감(21명), 흥해군수(6명), 경상도관찰사(11명)를 비롯한 지방 수령이 약 70%에 이른다.

 우담이나 겸재 같은 당대의 명사(名士)뿐만 아니라,

이존수(좌의정), 오명항(우의정), 조인영(영의정), 김노경(5조의 판서, 추사 김정희의 부친), 이은(좌?우의정) 등

조정의 거물급 정치인들도 눈에 띈다.

이 곳을 다녀가면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18~19세기 인물인데,

이를 통해 내연산은 조선말에 이미 동해안 최고의 명승지로 발돋움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경북매일신문에서 발췌 -

 

보현암

 

내연산을 잇는 라인은 전형적인 육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골짜기 속에는 수 많은 절벽과  폭포가 내 걸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구릿대

 

 상생폭포

 

내연산의 첫 단풍

 

 서운암 내림길

 

보경사 언저리에서 만난 소나무 행렬

 

보경사 경내의 반송

 

 사천왕문을 지키는 ?

 

 

 

 


 

 

 

장장 4 시간 30분을 달려 당도한 보경사 주차장.

 

뻐근한 허리를 추스리며 문수암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름길을 잰 걸음으로 오른다.

그도 그럴것이,

왔던길을 되돌아 가려면 산행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야 하기에.

 

문수암을  힐끗 돌아나와 종종걸음으로 올라선 문수봉.

 

대충 민생고를 해결하고서 내연산 삼지봉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발바닥에 푹신하면서도 기분좋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낙엽이 두텁게 깔려 흙과 함께 잘 다져진 길에

적당(?) 수준의 비가 내려 땅이 살짝 들고 일어난 것일까?

그야말로 쿠션감이 일품.

 

행여 그 유명하다는 내연산 송이 하나라도 눈에 들어올까 싶어

바쁜 걸음에도 눈을 희번덕 대 보지만 그야말로 언감생심,

 

대신, 온 산 여기저기 도토리가 수북하게 떨어져 있다.

알뜰하기만한(?) 아낙네 산꾼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땅 바닥에 엎어져,

사람이 옆에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도토리 줍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보슈 아짐씨들~~~

내 겨울 식량을 모두 주워가 버리면,  이 곰은 뭘 먹고 살란말이요~~~"

 

" 깔깔깔 ~~~"

 

이 곳, 저곳으로 갈라진다는 내연산(삼지봉)에 올라

증명사진 일방을 남기고, 잽싸게 오던길을 얼마간 되돌아와

거무나리 능선을 타고 청하골로 내려서, 내연산의 비경 열두폭포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

 

아름답고 장쾌한 폭포열전의 현장을 곁눈질과 설렁 걸음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내연산 비경에 대한 모독이요,

삼류 산행의 모범사례인지라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

 

허지만 어쩌랴....!

반도의 동쪽 끝에서, 육신을 뉘여야 할 서쪽 그곳은 너무나도 먼 거리.

 

해는 벌써 낙동정맥 저 너머 서쪽을 향해 줄달음쳐 버렸고

어둠속에 그 해를 쫓아가자면  

자동차 타이어가 토해내는 질긴 비명 소리를 오래 오래 들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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