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불탄 경복궁을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기까지 270년간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으로서 기능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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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부터 영친왕이 머물렀고
1966년부터는 이방자여사 1967년 5월에는 덕혜옹주도 이 곳으로 오셨지요.
덕혜옹주는 1968년 가을부터는 낙선재 안의 다른 공간인 수강재에 머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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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로 인하여 더 기억에 남는 낙선재.
그래서 그랬을 터,
마음이 괜시리 짠했습니다.
덕혜옹주가 귀국을 하여
낙선재에 1년 조금 더 머물다가 돌아가실 때는 수강재에 머무셨을 것 같은데
첨부한 자료에 보니 정신이 온전하셨을 때에 쓴 것으로 보이는 낙서가 낙선재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어디에 낙서를 하신 건가? 종이에 쓰셨으면 쪽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영화를 볼 때는 이 대목에서,
쓰린 가슴과 텅빈 허전함에 공감하며 눈물을 쏟았던 대목인데
어쩌면 악랄했던 일본의 폭압에서 벗어난 행복감이 묻어 있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할 자유가 생겼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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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대문을 드나들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해방된 나라에 왔으니 꿈인가 생시인가도 싶었을 게고
종종 옛시복들이 찾아오기라도 할 때엔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변함없이 버티어 선 낙산, 인왕산, 북악, 남산......
비추어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역모로 다친 실록속 주인공이 아님을 다행이라 여기셨으려나?
스러진 왕실의 추억은 유년의 기억뿐이겠지만
기둥하나 섬돌하나에 눈길을 줄 때마다 손길을 뻗을 때마다
하나 둘 찾아오는 그리움에 혹여 못견디게도 서러워하진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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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정의 화려함이 일제시대 덕혜옹주를 핍박하던
앞잡이 순사같이 위압적으로 솟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출입을 금해놓아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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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과 이방자여사 그리고 덕혜옹주는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을까요?
볕이 드는 날엔 투호라도 같이 하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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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전 어느 이른 봄날
천상에서 드리운 무지개 미끄럼틀 타고 내려 온
한줄기 바람이,
아버지 고종의 흰수염 몇가닥이 그윽하게 빛났고
어머니 양귀인의 복사꽃 뺨이 퍽 따뜻하더라는 이야기라도
전해주지는 않았을까?
창호문밖으로 무심히(물끄러미) 하늘을 보던 옹주의 눈에
구름 저너머
아버지 인자한 웃음이 보이고
깊은 들숨엔
어머니 체취가 곁에서 맡은 것처럼 향긋했으리라.
덕혜옹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h024
낙선재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5381
첫댓글 공지글이 너무 오래 되어서 최근의 궁궐탐방 후기 하나를 복사해놓았습니다.
영화와 달리 조선왕족은 일본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지냈다는 누군가의 글을
최근에 본 적이 있어서
김이 조금 빠지는 기분이었는데
옹주께서 심신이 피폐해지신 것 같고 일본인 전남편의 면회도
종친들이 막았다고 했으니
편하게 지내신 것만도 아니지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