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2번째 이야기 ..
1519년 서른네살의 김정국(金正國:1485~1541)은
기묘 사화로 선비들이 죽어나갈 때,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낙향을 해
고향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데,
녹봉도 끊긴 그가"팔여"라고 한 뜻을 몰라 친구가
새 호의 뜻을 묻자,
은퇴한 젊은 정객은 웃으며 말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편안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 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만족은 넘쳐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만족이 조금은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 줄
모르지만,
만족 속에서 여유가 잉태됩니다.
마음이 여유로우면 삶이 즐겁지만,
마음이 부족하면 언제나 근심과 걱정입니다.
즐거움은 복을 주고 근심과 걱정은 화를 불러옵니다.
마지막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 한자락..
모든 일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극락(極樂)에 있어도 그것을 모른 채
부족 하다는 푸념만을 할 것이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상황이라도
즐겁다는 생각에 늘 행복하다 할 것이라..
足(족)함 채워도 가져도 모자람이여
그 얼마나 가져야 足(족) 함을 알까
울음으로 옷 한 벌 얻어 입고 빈손으로 왔으면서 움켜쥐려고
세 치 혀로 다툼하는 愚昧(우매)함이여
주먹만 한 가슴에 담으려 하는
세상 것에 현혹된 마음 언제나 모자라다 소리치느니
족함에 이른 마음 어디쯤인지
求不得苦(구부득고) 煩惱(번뇌) 속을
헤매는 인생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 순간이요.
내 것이라 하여 본 들 바람인 것을 비우지 못한
마음 貪慾(탐욕)에 빠져
한 치 앞에 마음 動(동) 하니 어깨 위에 번뇌만을 지고 있으매
세상길이 험하고 힘들다 해도 깨우침에 이르는 길 멀다고 해도
비우고 버리고 길을 간다면 내 안으로 가는 길 볼 수 있으며
족함으로 그 마음이 평안할 것을...
壽爲五福之首 旣得稱老亦可云壽
수위오복지수 기득칭노 역가운수
更復食飽衣暖 優游杖履其獲福亦厚矣
경복식포의난 우유장리 기획복역후의
人世間境遇何常? 進一步想終無盡時
인세간경우하상?진일보상 종무진시
退一步想 自有余樂
퇴일보상 자유여락
道德經曰:知足不辱 知止不殆 可爲長久《老老恒言》
장수를 누리는 것은 오복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인데,
늙었다고 일컬어지기만 해도 또한 장수했다고 말할만 하다.
여기에 더하여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옷 입으며
지팡이 짚고 신을 신고 즐거이 노닌다면
그 복을 얻음이 또한 두텁다 할 것이다.
인간 세상의 일에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
한 걸음 나아가 생각해 보면 마침내 다할 때가 없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절로 남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도덕경》에서는 말했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도록 누릴 수가 있다.”
'조금만 더' 하고 바래기만 한다면 만족은 있을 수 없다.
'이만 하면' 하는 마음 속에는 절로 남는 즐거움이 있다.
족함을 알아 욕됨을 모르고, 그칠줄 알기에 위태롭지 않으니
이 삶이 가뜬하지 않은가.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