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범 해를 맞이하여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그림자처럼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어제 종일 내린 눈은 외출하기에 버거울 만큼 많이 싸여..
오늘은 종일 집에 머물며 어재 다 치우지 못한 눈을 치우고
한가함 속에 오랜만에 열어본 책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첫 번째 스토리 "드레퓌스 사건(1894~ )"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이란 유태인 드레퓌스 대위가 간첩으로 지목되었고..
나중에 진범이 따로 있음이 밝혀져..
그가 무죄임이 분명함에도 군부와 반 유대적인 교회와 보수 언론 그리고 구 세력은
범죄 조작까지 시도하여 그를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이 사건은 프랑스 국민뿐 아니라 그 사건을 아는 유럽의 지식인은 하나가 되어 소위 적폐 세력과 극렬한 대립을 한다.
만일 그때 재판부만이라도 사실대로 판단만 해주면
일 년 안에 끝날 수 있던 사건을 오히려 드레퓌스를 매국자인 간첩으로 낙인을 찍어 악마섬이라 불린 지옥 같은 감옥에 가두었다..
10년이 넘도록..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노래 가사처럼 1906년에 무죄로 종결되기 까지..
드레퓌스 본인과 그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아내가 10년 동안 받아야 했던 고통.. 그리고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무죄를 주장하며 발로 뛴 주인공의 형과 아버지가 겪은 고초..
그리고 그가 무죄임을 입증하려는 이성적인 프랑스인과 그에 동조하는 유럽 지식인..
이런 엄청난 힘이 있음에도 우파라 불리는 기득권자는 어리석은 궁민을 꼬드겨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며
잘못된 정황을 반성은 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공격으로 대응해 나갔다.
아이러니는 진짜 간첩인 에스테라지는 어떻게 되었냐는 것..
그는 자기는 간첩이 아니라는 거짓 주장을 하고.. 그것을 법정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기에..
끝까지 거짓을 말하며 떵떵거리며 살다 이 세상을 떠났다고..
세계에는 70억이 넘는 인간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누구일 지 모르지만 한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의 10년이란 시간은
세계인이라는 입장의 눈으로 보면..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만큼은 값어치가 있을까..
그만한 가치가 있다한들.. 누가 그만큼이나마 대접해 줄까..
이 사건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사건의 결과가 그나마 해피에딩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에밀 졸라 라는 한번 이상 들어본 프랑스 지식인 작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태인이기 전에 한 인간의 진실을 우선하며 드레퓌스가 진범이 아님을 세상에 알리며 그의 무죄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이적행위로 본 적폐 세력은 그를 나라를 어지럽히는 범죄자로 몰아 법정에 세우니..
그는 영국으로 잠시 망명을 했다고..
드레퓌스는 진실이 밝혀질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감옥에서 자기가 무죄임을 외치다..
나중에는 불의와 타협도 했다.
에밀 졸라는 도망치듯 피해 가며 진실을 주장했다.
불의와 타협한 주인공이나 도망치듯 망명한 지식인..
설사 불의(不義) 세력에 손을 벌리고 거짓에 앞장선 자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린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사는 존재이기에..
어느 하루가 무너지면 그 이후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에..
우리는 성경에 나오듯.. 나를 도마 위에 오르지 않게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드레퓌스 사건의 핵심은
대립하던 두 세력이 있고.. 그 중 하나가 결집을 시도하면 덩달아 다른 쪽도 그리하여..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시화 되면 사회 이슈가 된다.
이 스토리를 읽으며..
나는 노무현 대통령, 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좌파로 몰려 제대로 자신을 변호도 하지 못하고 우리 시야에 사라진 이들..
윤미향 의원.. 그리고 특별히 조국 장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좌파와 우파로 표현하고
지금 한반도에서도 좌파와 우파의 대립으로 보도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좌파는 이북의 시각으로 보면 보수도 아닌 수꼴인 우파일 뿐이다.
한편 대립의 본질은
시대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이기적 탐욕자인 기득권자와 그런 세력에 대항하는
안티 기득권자와의 대립이요 갈등이다.
사건이 진행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은 강자인 기득권자의 행패가 주를 이루고..
어쩌다 드레퓌스 사건처럼 안티 기득권자가 극적으로 승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피해의 대부분은 안티 쪽에서 껴앉는다.
그 뿐인가, 사건 한복판에 있던 주인공의 삶은..
드레퓌스의 삶.. 노무현의 삶.. 조국의 삶..
그리고 그 반대쪽인 기득권자 쪽의 삶은?.. 그들은 떵떵거리며 살다 무덤에 묻히면 그것으로 끝인가..
이런 부조리를 보고 있는 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세상은..
시간이 흐르면 얼굴이 바뀐 탐욕적인 기득권자가 나와 그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또 그에 맞서는 안티 세력이 나와 대립하는..
변증법적인 반복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늘 새롭게 보는 까닭은 비슷하기는 하지만.. 한 번도 똑같은 모습으로 복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윤회하듯 반복되는 두 세력의 다툼에서 종교는 기득권자 쪽에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21세기 종교인인 보살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마음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나..
몸은 약자 편에 서서 앞장서야 한다.
명진 스님께 합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