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교통네트워크 논평]
‘짝퉁’ 정기권 도입에 반대한다:
불평등 해소와 교통전환 효과를 묻는다
- 대선정책제안 내용이 반영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졸속 추진은 곤란
- 공공교통네트워크 “왜 6만 2천원이고 무엇을 위해 하는가가 분명해야”
이재명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나왔다. 이번 예산안은 지난 정부의 정책 난맥상을 해소하는 한편, 지난 겨울 탄핵광장에서 제기된 다양한 사회개혁 요구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시금석으로 기대되었다. 특히 예산안이 공개된 초기에 기존의 K-패스를 전면 보완하는 정액 방식의 정기권으로 바꾼다는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 주목됐다. 이는 그만큼 해당 정책이 새 정부의 예산안에서 정부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되었기 때문이다.
정책제안을 통해서 만들어진 공약의 왜곡
해당 정책은 2017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월 정액제 광역 알뜰교통카드’라는 이름으로 제안되었으나,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재정부담 없는 교통카드를 만들겠다고 마일리지 방식으로 왜곡된 것을 회복하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공공교통네트워크는 2024년부터 시작된 K-패스 역시 기존 알뜰교통카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고, 무엇보다 1) 재정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함으로써 열악한 지역일수록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 2) 상대적으로 공공교통인프라가 높은 수도권이 전체 이용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교통격차가 심각하다는 점 3) 어떤 공공기관도 K-패스 가입을 지원하지 않아 개인의 접근성 차이가 해소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진짜 정기권’으로의 전환을 제안해왔다. 해당 제안은 독일의 독일티켓 사례를 참조하면서 정기권 정책이 단순히 요금을 할인한다는 수준에서 머물 경우 정책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단기적으로는 1) 할인의 폭을 대폭 늘리고 중앙정부가 재정부담을 하면서 정책전환 효과를 극대화하고 2) 이에 맞춰 발생하는 지역간 교통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인프라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에 발표된 정부의 정기권 계획은 2017년 정액 알뜰카드 도입이라는 대통령 공약을 마일리지 방식으로 왜곡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액 정기권으로 전환을 통해서 기후위기 문제와 교통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의 취지를 축소한 것을 넘어서는 왜곡이다.
기후동행카드가 대안인가
이재명 정부의 K-패스는 오세훈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전국화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미 시행한지 2년이 되어가는 기후동행카드는 명확하게 그 정책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적용범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적정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 서울시가 서울연구원에 의뢰하여 내놓은 ‘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 효과성 검토연구 학술용역’(2024. 9.)에 따르면, 승용차 이용빈도를 줄여서 1년 동안 약 5만 5천 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 총주행거리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연말 기준으로 오히려 자동차 주행거리는 0.3km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말은 수송부문 온실가스는 늘어났다는 뜻인데, 그나마 기후동행카드로 수송부문 온실가스가 감축되었다 하더라도 전국 평균과의 차이인 0.1km(전국 평균 0.4km/대/1일 증가) 정도가 기후동행카드 효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6만 2천원이라는 정액 기준 자체가 적어도 한 달에 40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상만을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승용차 이용자 중 대중교통 이용을 병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효과적인 가격유인이 되지 못한다.
덧붙여 실제 기후동행카드에 소요되는 비용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고이용자들의 이용횟수를 극단적으로 높였을 뿐인데, 기후동행카드 시행 이전에 12만원 이상 교통카드 이용자는 2만명 수준이었지만 기후동행카드 시행 이후인 2024년 3월에는 4만명으로 늘었다. 즉 다이용자 유인구조는 정액 정기권이 가지 정책적 효과를 제대로 보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정액 정기권은 6만 2천원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의 6만 2천원 정기권은 ‘짝퉁’ 정기권
통계청의 가계소비동향조사에 따르면 교통비는 지역 간 격차가 크다. 특히 대중교통비용의 차이는 더욱 크게 나타났는데 수도권 지역이 평균적으로 10만원 수준이라면, 비수도권 지역은 평균적으로 6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런 차이가 결국 지역의 공공교통 인프라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K-패스가 있어도 다니는 버스가 없어서 이용하지 못하는 지역 공공교통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한 바 있다. 서울시가 기후동행카드를 6만 2천원으로 설계한 것은 일일 2회를 기준으로 최소 40회 이상 이용하는 이들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공공교통인프라가 전국 최고인 서울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인데 대중교통수단분담률이 유일하게 50%가 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에는 기준액 자체가 지나치게 높아서 기존의 고이용자를 제외하고는 신규 유입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평균적으로 6만원 정도의 대중교통비를 사용하는 비수도권 지역의 수준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만약 국토교통부가 정액 정기권을 도입하고자 했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극단적인 교통인프라 격차를 고려했어야 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를 그대로 베껴오는 수준을 보인 것은 ‘재정지출은 최소화하면서 공약인 정액 정기권 도입의 생색은 내겠다’는 수준의 정책 태도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예산 규모는 2025년에 2,375억원에 비해 늘어난 5,274억원을 편성한다고 하지만, 애당초 2025년 편성액 자체도 가입자에 비해 낮게 잡아서 올해부터 1일 2회 환급으로 제한하는 퇴행을 보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효과적인 예산 증액이라 보기 힘들다.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전국 K-패스 가입자는 362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작년에 국토교통부가 관련 예산을 추계하면서 2025년 12월 기준으로 361명일 것이라는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등 떠밀려 정액 정기권은 해야 되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면 제대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짝퉁 정기권을 급하게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성과가 모호한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를 베껴오면서 말이다.
좋은 정책은 어떻게 쓰레기가 되는가
정부 입장에서는 우선 정액 정기권으로 전환하고 단계적으로 정책을 개선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계적이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구체적인 정책의 목표와 더불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시기별 과제들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업을 개량하면서 결국은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출발하면서 나중에 나침반을 보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정책도 구체적인 정책 효과를 전제로 시기별 사업을 추진해야 지지를 받고 확대될 수 있는 것이지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놓고 나중에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좋은 정책을 망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알뜰교통카드 정책을 마일리지 정책으로 왜곡하고 거리 비례방식으로 마일리지를 지급하기 위해 막대한 시스템 비용만 사용하지 않았던가? 시범사업 한다고 시간 보내고 점진적으로 확대한다고 시간 보내면서 2023년 말까지 알뜰교통카드가 가능한 지역이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173개에 불과했다.
공공교통네트워크가 지난 상반기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수도권 지역의 주민들은 현행 K-패스가 시행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곳이 수두룩했다. 홍보의 부족도 있지만 해당 정책이 실제 지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낙후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두고 ‘단계적 시행’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결국 국회의 시간이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결국 대선시기의 정책제안과 대통령의 공약 등의 취지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은 결국 국회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부의 정액 정기권제는 그대로 도입이 될 경우, 기후동행카드 독자 시행으로 재정부담이 큰 오세훈 서울시장만 환호할 뿐 실제 교통 격차만 실감나게 만들 뿐이다. 국회는 국토교통부의 정액 정기권 도입에 대해,
- 어떤 경로를 통해서 현재와 같은 정기권이 나오게 되었는가
- 6만 2천원이라는 기준액은 어떤 근거로 산출되었는가
- 도대체 정부는 왜 정액 정기권을 하고자 하고, 그 구체적인 정책 목표는 무엇인가
- 정기권 설계 과정에서 누가 참여했고 어떤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었는가
라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현재와 같은 ‘짝퉁’ 정책이 정책 제안의 취지와 공약의 방향성을 왜곡하는 것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국토교통부의 관료구조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적어도 정기권을 도입한다면 대중교통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난 겨울 광장에서 모인 이들의 목소리를 어디로 갔단 말인가?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번 정액 정기권 도입이 일견 정책수용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행 K-패스와 비교할 때 오히려 정액 정기권 제도의 혁신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잘못된 출발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끝]
2025년 9월 1일
공공교통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