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일지 (2024.06.04~06.25)*
-14일차 : 6월 24일 월요일
꿈과 여름, 그리고 책 읽는 남자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1》을 읽으며
1
-그의 아내가 아침을 차리기 위해 식탁 위에 있는 잡지를 치울 때, 사임은 현관문 밑으로 들어온 그날의 신문을 읽으며, 쓰여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니라 단어로 꾸며 놓은 꿈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다.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1》, 제7장 <카프산의 글자들> 중에서)
2
나와 가까운 가족 중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둘 다 여인이자 나의 아내다. 소설에서 흔히 풍기는 ‘신비스러움’은 대개 이런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가. 갑자기라고 하지만 떠난 흔적과 이별에 대한 편지가 남아 남자 주인공에게, 아니 독자에게 더욱 여운과 기대와 미련을 갖게 만든다. 이것이 아마 소설의 줄거리를 끌고 가는 힘이 되겠다.
일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주인공 ‘오카다’를 두고 어느 날 아침 출근한 이후 잠적해버린 그의 아내 ‘구미코’의 행적은 소설 속 일상을 온통 보랏빛 신비감으로 감싸버린다. 이제 결혼한 지 삼 년 안팎의 신혼과 다름없는 부부생활을 영위해가는 중이었던 오카다로서는 일상의 모든 시계가 아내가 가출한 순간부터 멈추어버린다.
지금 읽는 튀르키예의 대표적 작가 오르한 파묵이 이 작품으로 1990년 ‘프랑스 문화상’을 수상한 《검은 책·1·2》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갈립’과 어릴 적부터 친남매(엄밀한 의미에서는 사촌지간)처럼 자라 후일 부부가 된 ‘뤼야’(튀르키예 말로는 ‘꿈’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짧은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사라진다.
1권의 중반쯤 읽어나가며 둘의 관계(뒤로 갈수록 둘의 관계에 대해 더 세세하게 밝혀지겠지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갈립’이 ‘뤼야’를 무척이나 아끼고 끔찍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어릴 적 둘이 장난치며 놀던 장면을 드문드문 반추하는 ‘갈립’의 회상 말고는 아직 아무런 반응도 ‘뤼야’는 표명하지 않고 있다(작가는 보여주지 않고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버티고 있다). 그래서 ‘뤼야’는 이름이 주는 튀르키예식 뜻풀이대로 공중에 붕 뜬 미지의 환상적 여인에 아직 머물고 있다.
작품 속에서 전하는 일설에 의하면, ‘뤼야’는 전 남편(좌익활동가)을 찾아 갔을 지도 모른다고 해서 ‘갈립’이 그 남자가 있을만한 곳을 수소문하며, 친지들에게는 아내 ‘뤼야’가 감기에 걸려 방에 누워만 있다고 거짓말을 해놓고는 튀르키예의 눈 내리는 추운 겨울밤을 세워가며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3
-뤼야가 떠난 그 밤, 그의 눈앞에는 단지 삶의 일부, 어떤 기회나 놀이를 놓쳐버렸음을 깨닫게 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세계의 삶의 즐거움과 유희를 놓치는 데에 불만스러워하는 듯한 사람은 갈립이 아니라 항상 뤼야였다.
-뤼야의 기억 깊은 곳에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지역들처럼, 파악할 수 없는 이 비밀스러운 지역의 신비한 식물과 두려운 꽃으로 뒤덮인 정원이 자신에게는 완전히 닫혀있다.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1》, 제5장 <그건 어린애 같은 행동이다> 중에서)
아직 우리의 작품 속 아름다운 아내는 어쩌면 어리석은 작품 속 남편에게 마음의 정원을 열어 평화와 안식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발, 현실 속 아내 분들은 불쌍한 남편들에게 그러지 말기를……)
이 책에는 제9장 <누군가 나를 추적하고 있다> 부분을 읽어나가는 중에 자연스레 느끼게 되지만 중동의 이슬람교를 주축으로 한 ‘종교적 신비주의’가 많이 나타난다.
독자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점은 그 종교적 신비주의가 정치 세계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연대해서 교묘하게 그 조직을 확장시켜 나간다는 부분인데, 인간의 내면에 관한 다양한 실험적 요소중 일부가 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4
서구문화에 대한 반감이 유독 강한 중동의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발표되는 문학작품들이 거두는 성과는 기독교 역사만큼이나 깊고 다양하며 그래서 훌륭하다. 서구에 비해 덜 알려진 중동의 아랍과 회교권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은 찬란한 서구 문화의 일부 뿌리가 유서 깊은 중동에서 발원된 것도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산지 이집트에 가보면 과거에 있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대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지로서 중동의 이슬람 문명이 꽃피운 위대한 문화의 소산이자 자부심이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자신의 문학적 뿌리가 있는 과거 인류 문명의 중심지였던 메소포타미아, 그 중동의 땅에서 나오는 기름진 역사적 자양분-정치, 종교, 문화, 예술 등-을 잘 활용해서, 이 작품 《검은 책》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생》, 《고요한 집》, 《내 이름은 빨강》 등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5
매년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장대비와 비바람 몰아치는 장마가 올 것이다.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와 무시무시한 태풍이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긴 여름이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기온이 최고를 경신하기 시작하더니 잠 못 들게 하는 열대야도 그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상의 세계조차 꿈과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그 원인이 기후의 변화에서 오는 건지, 급격한 과학 문명의 발달에서 오는 건지, 높아진 인류 문화의식의 수준에서 오는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럴수록 더욱 분명한 건 나의 ‘책 읽는 남자’라는 사실이다.